미래를 복되게 살자

미래를 복되게 설계하자(딤후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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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행객이 영국의 청정바다 해변에 갈매기들이 많이 죽어 있는 것을 보고는 죽은 갈매기들을 치우고 있는 사람에게 왜 갈매기들이 죽었는지를 물어 봤습니다. 그 사람은 여행객들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곳에는 해마다 여름철에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그 사람들이 갈매기들에게 과자 같은 것을 많이 던져 줍니다. 갈매기들은 그걸 맛있다고 자꾸 받아 먹어요. 그것은 갈매기들에게 아주 해로운 것입니다. 갈매기들이 사람이 던져주는 맛있는 것들을 받아 먹다가 나중에는 자연에서 얻는 먹이에 대한 식욕을 잃어버려요. 그래서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여행객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기다리다가 그만 저렇게 굶어 죽게 됩니다. 바닷 속에 그 좋은 먹이를 그대로 놔두고 말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좋은 것, 편한 것만 붙잡고 살다가 세상을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지도 못한 채 끝내버리는 패배의 자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바닷 속에 있는 좋은 것을 향해 도전해 보지도 못한 갈매기처럼 자신의 미래를 복되게 설계하기를 거부하는 세상으로 자꾸만 바뀌어가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성도에게 미래를 복되게 설계하는 삶의 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유는 성도는 미래를 복되게 설계하여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면서 성도를 세워 주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배려의 자리인 것입니다.

1. 미래를 품고 사는 성도가 됩시다(3, 5, 6).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세상을 세우는 자리에는 세가지 유형을 나타내는 자리가 있어야 됩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를 위한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 희생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째는 생산적인 후원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 유형을 본문은 군인과 운동선수와 농부의 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는 우리의 환경을 무너뜨리는 상황들이 항상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있는 날에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자리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의 자리입니다. 그곳에는 오직 군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군인은 평온한 때를 위해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전쟁의 순간을 위해 피와 같은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 군인이 아니면 미래를 지키지도 못하고 회복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을 바치는 희생의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무너지는 세상 속에 그 아픔을 종식시키는 지혜는 생명도 불사하는 군인 정신인 것입니다. 이렇게 회복하여 기초를 세웠을 때에 한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은 그 기초를 발판 삼아 더 좋은 세계를 열어 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즉 목표를 세워 자신의 꿈을 펼치는 사람이 있어야 희생의 자리가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값을 치룬 희생의 자리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고 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면 삶의 의욕을 상실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꿈의 사람이 운동선수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희생의 자리에서 꿈을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향해 후원자가 없으면 그 희생과 꿈은 허상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생산적인 후원자를 일컬어 본문에서는 농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가지 유형의 공통적인 현상은 한결같이 미래 속에 자신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미래는 일방통행이 아니며 외줄타기의 인생도 아니고, 서로가 복된 관계를 가지고 서로를 품으면서 함께할 때에 복되게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관계를 상실한고로 미래 속에 함께 하는 품는 세상 보다는 무너지는 자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향해 그 미래를 복되게 설계하여 세상을 세우는 자 곧 세상을 구원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자리가 이 세가지 유형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를 믿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복된 성도의 세계를 열어가도록 합시다.

2. 은혜의 자리에 자신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1).“은혜 속에서 강하고”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세워주는 강력한 기초석은 은혜의 자리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모두가 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땀을 흘리며 자신의 목표를 바라보고 연습하는 선수에게는 기쁨의 자리만 있는 것은 더 더욱 아닌 것입니다. 봄에 씨만 뿌리기만 하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농부의 자리에는 노래 부르는 즐거움으로 세워진 것이 아닌 것은 더욱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을 사람이 주관하지 못하므로 자연적 재해 속에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의 자리입니다. 표면적인 현상은 사람들에게 담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 내면 속에는 다스릴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심각한 갈등의 늪에 빠져 자신의 자리에서 뛰쳐 나가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닌 것입니다. 더욱 힘든 것은 자신이 수고한 자리가 너무나 초라하게 다가 올 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리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를 힘있게 붙들어서 세워줄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은혜의 물줄기가 흘러내릴 때입니다. 나에게 나라가 있고, 가정이 있으며 일터가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알때 군인의 자리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나 하나의 자리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헤아리기 어려운 혜택을 입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운동선수의 자리이며 농부의 자리에는 자연의 고마움 곧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자연의 섭리의 축복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이런 자리들이 있으므로 자기 자리를 떨쳐버리고 싶을때에 자신을 붙들어 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서 자신을 복되게 관리할 때에 사람은 강한 자가 되고 담대하게 미래를 향해 도전 하는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허약한 디모데라는 제자이며 아들 같은 목회자에게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이 “은혜 속에서 강한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계절마다 상황마다 동일하게 역사하지만 그 현상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봄의 기운 같은 은혜는 얼어붙은 땅을 녹여서 새로운 싹이 나게 하고, 여름철의 은혜는 따가운 햇볕에 시들어진 자리에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과 함께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조화로 늘 새롭게 해주며, 가을의 은혜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 하나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겨울의 은혜는 추위 속에서도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자리가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무시하거나 은혜 받지 않은 자처럼 자신을 세우지 말고 은혜의 삶속에 자신이 있음을 믿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하여 승리하는 강한 자로 살아 갑시다.

3. 미래를 연결하는 징검다리로 살아 갑시다(2).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세상에는 홀로 살아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가 인간의 존재 가치이며 이것을 알때에 인간의 참된 자존감을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방송 뉴스에서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 놓이게 된 돌고래를 동료 돌고래들이 끊임없이 물위로 치켜 올려서 숨을 쉬게 하여 살려 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막 그 돌고래가 죽어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을 때에는 더 많은 돌고래들이 떼를 지어 마지막 돌고래가 빠져들어 간 자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축복입니다. 그 자리를 알고 자신의 자리를 도움을 받지 않은 것처럼 세우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필요한 사람으로 세울 때에 자신이 받은 관계성의 축복 곧 도움의 자리는 더 큰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미물의 짐승은 본능의 자리에서 나타내는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이기에 선택된 자로 세워지는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의 자리에 일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어린아이가 자기 핏줄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먼저 믿는 자의 역할은 그런 사람들에게 미래 속에 하나님을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서 그 미래를 복되게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징검다리의 역할을 아는 성도에게는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도를 그런 자리에 세우시려고 나 같은 자를 찾아 주셔서 믿음의 자리에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말하기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때를 위해서 나를 불러서 세워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건너 올 수 없는 큰 골짜기가 놓여 있으므로 그 사이에는 중보자 곧 징검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이며 우리를 먼저 믿게 하셔서 그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처럼 자신의 미래를 축복되게 설계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사명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징검다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필요 없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축복된 존재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닫아 버리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나에게 주신 은혜를 깨닫고 그 설계도대로 세우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믿음의 말을 하며 열어가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