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절망과 하나님의꿈

인간의 절망과 하나님의 꿈(민17:1-11)
   : 2| VOTE : 0 |
  정호승씨의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의 시를 소개해 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는 어찌되었든지 나만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 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다가 죽어야 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너를 살리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여기에서 인간 삶속에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라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관계성을 상실하게 하고 관계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의 현상이 본문의 사건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큰 고통의 자리였습니다. 그것은 모세와 아론이 시키는대로 하기를 원치 않고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살아 남은 사람들이 돌아오기 보다는 원망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12지파 중에서 대표자의 이름으로 지팡이를 하나씩 하나님 앞으로 가져 오게 한 것입니다. 거기에 레위 지파를 대표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여 인간의 절망의 자리에 하나님의 세계와 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세워 주시기만 하면 어떤 절망적인 자리에도 꿈을 가질 수 있다는 약속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

1. 꿈에 도취한 사람은 쉽게 절망합니다(13).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도취한 자로 살아가는 자리요, 다른 하나는 자신을 세우며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도취한 자로 살아가는 자리는 맹목적인 자리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는 것에 삶의 목적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시간에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고 결과에만 무게 중심을 두는 목표 제일주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내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므로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쉽게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세상에서 자신을 세우며 살아가는 자리는 분명한 방향과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미래를 향한 꿈의 자리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하신 것입니다. 도취한 자리 곧 빠져버린 자리를 맹신 또는 광신 이라고 하지만 세우는 자리는 인격적이며 사람을 구원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이라는 꿈에만 도취 했을 뿐 광야에서도 세워야 되는 자신을 알지 못하므로 쉽게 절망하며 외치기를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죽는다”라고 한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노예의 자리에서 건져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지금의 광야를 포기 하려는데만 전력을 다하므로 가나안이라는 꿈마져도 접어버린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 곧 가나안이 있기에 광야와 같은 고난에서 자신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세우는 자로 살아 갑시다.

2. 성도에게 준 최고의 자리를 깨닫고 살아 갑시다(5,7).-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사람의 자리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자리를 알고 그 자리를 잃지 않을 때에 가장 명예롭게 됩니다. 특히 성도의 자리는 더욱 분명한 것입니다. 성도의 자랑과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이 최고의 자리를 아는 성도들이 세워진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그 인간의 자리를 잃었을 때에 찾아오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에덴 동산에서 절망하여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의 자리입니다. 저들의 자리는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누린 최고의 자리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아담과 하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인류를 위하여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최고의 자리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온 인류는 이 최고의 자리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를 믿기만 하면 택한 자의 자리에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축복을 깨달은 바울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엡1:4).”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그 택함의 자리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노예의 자리에서 자신들을 택해 주신 자리를 최고의 자리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즉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꿈을 포기하고 절망을 선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비젼 곧 하나님의 택한 자로 알고 그 복을 가지고 꿈의 백성으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우리에게 열어 주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인간의 절망적인 자리에 하나님의 꿈이 펼쳐지는 자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택해 주신 것을 믿을 때에 열리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택하심을 아는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질서 속에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며 그 자리는 세상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심을 믿을 때에 최고의 자리를 보게 되며 절망에서 새로운 꿈을 열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질서가 하나님 앞에 세워진 자신의 모습을 크게 보는 자리인 것입니다.

3. 버려진 인간의 자리에도 하나님의 꿈은 펼쳐짐을 믿고 살아 갑시다(8,10).

  이는 곧 패배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말고 세상을 감당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절망적인 자리에서 패배자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은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꿈을 열어 주심으로서 원망을 그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12지파에게서 죽은 지팡이들을 가져 오라고 하신 하나님의 자리에 함께 나아가 봅시다. 죽은 지팡이는 모든 것이 끝난 자리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기대 할 수가 없는 것으로써 사용하다가 버려져도 아깝지 않은 것이 죽은 지팡이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이 쉽게 닫아 버린 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 지팡이도 한때는 푸르름이 있었고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지팡이로 선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나무가 어느 날 사람에 의해 베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패배자의 자리라고 합니다. 이 패배자의 자리인 죽은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혀진 자리를 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자신을 패배자로 던져 버리지 말고 이 패배자의 삶을 잘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손에 잡힌 지팡이가 되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자리를 복된 것으로 세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하룻 밤 사이에도 얼마든지 죽은 나무에 뿌리가 내려서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간에는 일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인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에게 최상의 복을 주시려는 것 때문에 그 시간이 소요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룻 밤 사이에 애굽 전역에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를 죽인 자리는 사람이 행한 자리라면 수개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룻 밤사이에 홍해 바다 속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하신 것을 사람에게 맡겨서 하게 했으면 영원히 못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책장을 넘기는 소설책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 일을 행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인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건은 그 죽은 지팡이가 한때는 푸르름을 보여 준 살아있던 나무를 사람들은 죽은 것으로만 인정할찌라도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것으로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은 시체로만 인정하여 땅 속에 던져 버렸지만 하나님은 죽은 시체가 아니고 살아 있는 생명체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신 것입니다.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시체가 생명체가 되어 다시 사는 것을 믿으신다면 하나님의 자리를 향하여 기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지금의 자신의 상황이 소망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모든 것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가장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충분한 보상으로 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축복은 버려진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꿈은 여전히 펼쳐짐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축복된 성도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막연히 꿈에 도취한 자로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최고의 자리 곧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통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꿈을 붙잡고 자신의 세상을 복되게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복이요, 자신을 세우는 세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