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고속 도로의 하이페스

천국 고속도로의 하이패스(단1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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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항해할 때보다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가 더 안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항구에 있는 배가 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항구에는 배가 있어야 하지만 그 배가 항상 항구에만 있으면 그것은 배가 아니고 정물화된 하나의 폐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배만 폐선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폐선이 많으면 항구도 폐항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있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답다고 서정시를 짓게 하는 바다로만 존재 한다면 진정한 바다의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 바다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힘차게 항구를 떠나서 땀을 흘리는 노동의 바다가 되는 것을 볼 때에 진정한 바다를 노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안전한 항구보다 노동의 바다를 향해 고속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힘차게 항구를 떠나는 배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성도의 길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고통이 없고 비바람을 만나지 않는 온실속의 백합화의 자리가 아닙니다. 성도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비바람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의 길은 천국을 향한 고속 도로를 달려가는 것입니다. 고속 도로는 멈추지 않는 길이지만 반드시 톨케이트앞에서는 멈춰야만 합니다. 그 멈춰야 하는 자리에서도 고속 도로의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이패스입니다. 본문은 세상에서 막혀져 있어도 하늘의 고속 도로가 열려져 있는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 고속 도로의 하이패스를 소유한 자로 살아갑시다.

1. 큰 은총을 입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11, 19).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남보다 특혜를 더 받은 사람처럼 보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무섭지 않는 것처럼 승승 장구할 뿐 아니라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도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눈에 가리워져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특혜를 더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판단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 것입니까? 특혜를 받는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은 길이 막히지 않는 것처럼 보여지고, 자신의 자리에는 온통 가시덤불이 엉켜있는 것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남다른 특혜를 받는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사람은 정말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고 자신은 그곳에서 밀려난 무능력한 사람으로 판단되어 세상을 닫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혜를 받는 자리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가를 알아야 나 자신에게서도 그 특혜의 자리에서 제외되지 않는 존재임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특혜의 자리가 세상에서 보는 관점으로만 보면 특별한 것으로 보여지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사람이 된 것을 믿고 바라 볼때에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특혜의 자리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그 사람에게 내려진 큰 은총의 자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다가갈 수 없는 것이 특혜의 자리 곧 은총을 입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특혜의 자리에서 큰 은총을 입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특혜의 자리 곧 큰 은총의 자리를 성도에게 내려주신 것이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성도는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세움을 받게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이라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정말 다니엘은 세상에서 큰 특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특혜를 받은 사람이 다니엘의 자리입니다. 그 이유를 본문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은총을 크게 받은 자였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곧 하나님의 특혜를 남다르게 입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도 그렇게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리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천국 고속 도로의 하이패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자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자리이지만 자기 고집대로 사는 것이 사람의 자리이기에 스스로 굽어진 자리에 세워지게 됩니다. 다니엘처럼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아 세상 속에 천국 고속 도로의 하이패스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됩시다.

2. 하나님을 위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12)-“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사람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와 그 새로운 자리를 열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새로운 결심을 하여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부흥을 가져오게 한 말 한마디는 “잘 살아보세”라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자리에서 통용되는 생활적인 용어였습니다. 그 자리가 지금에 와서 똑같은 표현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 살리기”라는 학문적인 용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지구촌의 문제로 대두된 것입니다. 이 두 용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자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난이라는 저주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난 것이라면 후자는 저주의 굴레라기보다는 일어나서 잘 살아가게 된 자리에서 힘들게 되었기에 다시 회복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에게 나타난 현상은 민족적 결단의 자리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비판의 자세보다는 함께 짐을 지는 자세가 우리 민족을 살리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민족의 자리는 짐을 지는 결단 보다는 자신의 자리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신앙 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입히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거듭할수록 오직 믿음을 가지고 결단하여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경험의 바탕위에서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 생활의 자리로 다가가면서도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전적으로 맡기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리는 나 자신이 어떤 위치나 수준의 자리에 있을찌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이며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울 때에 아름답게 됩니다. 이런 신앙적 결단을 하게 될 때에 천국 고속 도로의 하이패스가 그 기능을 나타내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의 모습 속에 신앙적 결심을 하게 될 때에 천국의 고속 도로는 성도의 삶속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에게 내려진 하늘의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고속도로는 세상을 열어가는 통로이지 세상은 아닙니다. 그 자리는 믿음의 결심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자리입니다. 하이패스는 고속 도로에서만 그 축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속 도로는 하늘이 나에게로 열려지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3. 하이패스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13).

  고속 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려가다가도 톨게이트 앞에서는 모든 차량이 정지를 하지만 고속도로 하이패스를 소지한 차량은 그대로 통과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능이 전혀 통하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출퇴근 시간이나 특별한 날에는 고속도로 정체 현상 때문에 하이패스 차량도 멈출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삶의 현장이며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이 본문의 사건입니다. 본문을 보면 천국의 고속도로 하이패스가 통하지 않는 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자리가 인간의 자리에 임할 때에 무조건 일방통행하지 않으시고 가장 균형 있게 열어가게 하시려고 조정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하나님의 세계를 믿음으로 받아 들일 수가 있어야 합니다. 막혔다고, 일이 좀 늦어졌다고, 자신의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믿음의 자리가 닫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를 위해 인간 역사의 바퀴를 다시 돌리게 하시려고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셔서 도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천사는 누구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역사를 조정하시고 다스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향한 천국의 고속도로 하이패스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막혀진 상황이 왔을때 천사를 보내 주셔서 즉각적인 회복의 자리를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성도가 찾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 어떤 어려움이 찾아왔을때 천국의 고속도로 하이패스를 소유한 자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세우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의 모든 부족함도 받아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그 값으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세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고속도로 하이패스는 결코 할인도 할 수 없고, 공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세워 주시려고 치루신 값을 가장 값지게 하는 것은 기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망하며 돌아서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고속도로의 삶을 만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만 견디면서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을 위한 믿음의 결심을 하여 그 결심이 허무하게 느껴지도록 무너지는 일이 생길찌라도 믿음의 자리를 접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위해 일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속도로도 막히는 일이 있습니다. 그 막혀진 자리를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려고 성도의 자리에 천사를 보내 주셔서 열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고속도로 하이패스를 가진 자 곧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믿음으로 세우는 자가 되어 세상을 복되게 열어가는 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