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를 영웅으로 삼자

나사로를 영웅으로 삼자(요1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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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미래를 볼모로 잡지 못하게 할때 사람에게는 진정한 웃음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이는 곧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때문에 미래를 닫아 버리게 되고 자신의 미래를 기쁘게 열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과거의 자리 때문에 미래 속에서 웃음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쉽게 자리 매김을 하여 미래를 나의 삶 속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합니다. 이 자리가 그렇게도 지긋지긋한 애굽의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 해방의 기쁨도 잠시 금방 애굽으로 마음의 방향이 돌려져서 그 애굽을 흠모하므로 미래의 가나안이 자신들의 삶 속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의 자리로만 다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거의 자리는 항상 비교하는 자리에 자신을 세워서 자신의 선택을 우선하는 자리에 쉽게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선택은 대부분이 자신에게 유익되지 못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문둥병자였던 아람 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의 자리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래가 과거보다 좋아질 확률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 미래가 자신을 푸대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자리를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서 미래가 볼모 잡히지 않고 끊임없이 열어 갈 때에 희망적인 생활 곧 영웅적인 삶을 나타낼 수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입니다. 이 나사로의 삶을 영웅으로 세우신 하나님으로 세상을 살아 갑시다.

1. 무덤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나사로입니다(11:43).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의 모습은 다름 아닌 모든 세상이 닫혀진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닫혀진 세상이 아니고 나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모든 것을 내려 버린 자리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견디며 여기에 있었던 것은 그래도 내려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붙들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나 힘들어서 놓고 싶지는 않으나 내려 버릴 수 밖에 없도록 자신에게 있던 모든 힘이 소진 되어 버려서 자신의 약함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것은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붙들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더 이상을 기대할 수 없도록 완전히 닫혀진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죽은 나사로가 무덤 속에 들어 있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닫혀진 자리의 현상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전혀 들리는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들을 수가 없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는 자리의 세상이 바로 무덤이요 닫혀진 세상인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 곧 무덤 속에 들어간 나사로가 유대인들에게 어떤 존재로 세워진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요12:11)”고 했습니다. 즉 유대인 속에 죽은 나사로는 영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나사로는 유대인들에게 영웅이 되지를 못하고 뭇 사람들의 동정의 눈물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불쌍한 사람으로 찾아 주어야 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져 목숨만을 부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런 나사로가 유대인들에게 기쁨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영웅이 된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은 닫혀진 세상 속에서 사람의 말 만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인생을 열어간 것입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열어간 것이며 닫혀진 세상을 열려진 세상으로 다가 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자리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것입니다. 닫혀진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에게 이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가 열려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닫혀져 있습니까? 그 자리에 예수님의 음성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 갑시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세워질 때에 영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사로야 나오라”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영웅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 기간이 나흘이 지난 것입니다.

2. 수족을 동여 맨 채로 움직이는 나사로의 자리를 봅시다(11:44).
  
  우리는 나사로를 우리의 영웅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가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다면 우리도 과거의 실패로부터 다시 돌아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나의 미래를 볼모로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나사로의 자리를 확인해 봅시다. 무덤 속에서 수족이 동여 매인 채로 살아 난 나사로는 어떤 모습이었겠습니까? 그는 즉시 일어나 볼려고 몸을 꿈틀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수족이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힘든 시기는 영웅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실패는 성공이 잉태되는 틀이 된다.”고 했습니다. 힘든 자리에도 포기하지 않고, 되돌아가는 길을 서서히 되찾았기 때문에 영웅이 탄생하는 자리를 세상은 존경하는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믿고 살아야 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려오는 예수님의 음성 곧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들어도 나 자신은 여전히 수족이 묶여 있는 나사로처럼 이전 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지고 더 감당할 수 없는 세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찌라도 과거가 나를 볼모 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유는 나 자신이 죽은 자가 아니고 살아있는 존재이며 더 감사한 것은 예수님 앞에서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 묶여 있는 팔과 다리를 움직여 나를 지금까지 닫아 두었던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 생활이요, 나의 땀이 흘려지는 작은 봉사의 자리이며 자신을 영적인 존재로 세우는 기도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묶여 있는 것 같은 세상일찌라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사람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또 다시 들려오는 예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온 몸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멋진 반전」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사건들은 모두가 이 반전이 가능한 길을 열어 주신 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를 동여 맨 것들이 풀어지기 전에 포기하지 말고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라고 하신 것입니다. 과거의 자리가 나를 열어 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경험한 인간의 자리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반전으로 우리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 자리를 성경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세워진 사람이 영웅 나사로인 것입니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나에게도 열어 주시는 자리입니다.

3. 가족에게로 돌아온 나사로의 자리를 맞아 들입시다(요12:1).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데는 결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있는 것은 여전히 닫혀 있는 자리입니다. 신앙 생활과 인간 사회 생활의 차이는 사람으로 세워줄 수가 없고 물질적 가치로 계산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연약한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협력자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 신앙 생활 속에서 우리를 세워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바로 “나사로야 나오라”나는 것이요 “온 몸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협력자를 붙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한 협력자가 되심은 무엇 때문입니까? 여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때문에 슬퍼한 가족들에게로 돌아가서 축하의 자리를 열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회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웅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이 회복의 자리를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를 세상에 혼자 두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의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큰 나무를 조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큰 나무일 수록 아름답게 되는 것은 가지가 많이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가정의 자리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 찾아가셔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고, “온 몸을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신 것은 공동체 속에서 함께 기쁨을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자리가 성도를 세상에서 복되게 세우는 것이요 성도를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웅이 보여 주는 관계성의 축복인 것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영웅의 자리에 세워진 것은 사회적 명예가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므로 온 가족이 기뻐한 자리 때문입니다. 한 주간 동안 거센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와 같은 세상을 살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 속에서 기쁨의 사람으로 세워지고 그 성도가 가정으로 돌아가서 함께 하는 복으로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웅의 자리입니다. 거센 파도가 일어날수록 성도에게는 이 자리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있을 때에 재충전의 회복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집을 나간 탕자가 아버지 품에 안긴 것처럼 성도는 교회의 자리에서 항상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면서 나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할 수 있을 때에 모든 것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 앞에 세워진 나사로의 가정이었고 그 가정에 큰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세우는 영웅의 축복인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픈 과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은 과거가 자신의 세상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미래 속에 우리를 세워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것이 영웅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닫혀진 자리가 열려진 자리이며, 나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있음을 믿고 그 축복으로 공동체 곧 교회와 가정에서 함께 하는 복을 나누는 회복의 자리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영웅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영웅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