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한 성도로 세우자

성숙한 성도로 세우자(고전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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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어느 공동 묘지에 조그만 예배당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은 땅 속에 묻히기 전에 다시 한번 이별하는 처소로 불리우고 있는 곳입니다. 그 처소 입구에는 스웨덴 말의 문장으로 동판에 새겨진 짧은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 문구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이 짧은 문구 속에서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나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하늘의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정으로 자신의 일로 받아 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 자체를 잊어 버리고 사는 것이 인간의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자행 자지하며 생활하는 것이 인간의 무지함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이기에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리를 더 성실하게 살아 갈 뿐 아니라 보다 성숙한 자로 살아가는 자리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짧은 문구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성도가 세상에서 교회 생활을 성숙한 자로 지혜롭게 할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 삶이 매우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헤아리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자리에서 보여주는 신앙 생활이 삶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스런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세상 속에서 구원의 산성이 되게 합시다.

1. 세상에는 어린 아이와 장성한 사람의 자리가 있습니다(고전13:11).

  어린 아이와 어른의 자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차이가 여러 가지이겠으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차이는 어린 아이의 자리는 닫혀진 자리라고 한다면 어른의 자리는 더 넓게 열려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닫혀 있는 어린 아이의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전부 어그러지는 일이요 깨뜨리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런 어린 아이의 자리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가르치려고 하는 것 보다 더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의 자리를 일컬어 어른의 자리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닫혀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닫혀진 어린 아이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구원시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넓게 열려진 자로 세워 주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먼저 12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열려진 자로 세우려고 했지만 여전히 닫혀진 그들의 자리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13:7)”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보다 더 하나님의 나라를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도 기다림의 자리에서 제자들을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 곧 장성한 어른의 자리로 열려지는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성경 지식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율법에 완전하다고 자부하며 살았던 사람이 사도 바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세계 곧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 발견한 사실은 자신이 어린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자리는 영적인 자리이든 인간적인 자리이든 간에 모두가 열려지지 않으므로 생겨난 닫혀진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는 어린 아이의 자리와 장성한 어른의 자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인간의 자리를 복되게 하시려고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이며 하나님은 그 인간의 자리를 끊임없이 찾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자리에는 닫혀지는 어린 아이의 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도는 어린 아이의 자리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0).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어른이 되라고 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자리이며 세상을 더 보기 좋게 세우는 초석이 되는 자리입니다.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은 이것을 철저하게 가르칠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은 그 가르침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한번 하지 말라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면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닫혀져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 일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장성한 어른인데 그 어른을 향해 지혜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른의 자리에서 어린 아이의 자리를 바르게 보지 못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숙한 사회를 조성하기가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말은 어른 때 보다 어린 아이의 자리가 성숙함의 자리를 결정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의 자리가 지혜롭게 될 때에 어린 아이들이 열어가는 세상은 결코 그 이하가 될 수 없고 그 이상의 꿈을 열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고 하신 것입니다. 쉽게 닫혀져 버리는 어린 아이에게 악에 대하여는 열려져 버리고 선에 대한 것이 닫혀져 버리면 이것처럼 어두운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바로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통해서 만이 악에 대해서는 닫혀지고, 선한 역사를 이루는 지혜로운 인간의 자리를 세워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부요하게 세우는 것처럼 지혜로운 자리가 없으며 그 자리가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성숙한 어른의 자리임을 알아 어린 아이와 같은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서 무시를 당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장성한 사람으로 자신을 세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지체로써 살아가도록 합시다.

3. 하나님은 성숙함의 자리를 원하십니다(엡 4:15).

  어린 아이의 자리와 장성한 어른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세상을 더 보기 좋게 세우는 지혜의 자리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닫혀져야 하고 무엇을 열어가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의 자리에서 더 나쁘고 악한 모습으로 세상을 혼란 속에 빠뜨리는 일이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른이 자리를 복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성숙함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면서 그런 모습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성숙함의 자리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고 했습니다.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성숙함의 자리는 범사에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성숙함의 자리 곧 예수님에게서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자리는 끊임없이 자라나야 함을 알게 하고, 부족함을 채워야 함을 깨닫게 하는 자리입니다. 자라나야 하는 장성함의 자리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 분량을 알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 곧 공동체의 소속감을 자랑스럽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삶을 세우는 기초입니다. 그리고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 충만함의 자리는 관계성의 축복으로 함께 하는 자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성숙함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이 바로 성도의 성숙함을 가지고 세상을 세우고 그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의 자리 곧 쉽게 닫혀져 버리고 소극적으로 끌려가는 자리보다 성숙함의 축복을 가지고 세상을 구원하는 리더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3년이 넘도록 데리고 다녔어도 성숙함의 자리를 깨닫지 못할 때에 하신 말씀이 바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하셨습니다. 성숙한 성도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소원을 들어 드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그것은 장성함과 부족을 채우는 성숙함을 위해 예수님께로 늘 가까이 나아가서 그 예수님 앞에 자신을 복되게 세우는 자리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히우는 축복의 자리가 있으므로 세상을 능히 감당하게 해 줍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숙함으로 자신을 세워야 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여 감사하는 자리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예배가 살아 있을때 교회는 하나님의 사닥다리가 내려져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능력 있게 세워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게 되는 성숙한 성도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에 함께 나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