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응 이ㅉ는 복된 자리

하늘과 땅을 잇는 복된 자리(출40: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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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이치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린다면 직선과 곡선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직선과 곡선의 차이는 눈에 보이는 현상대로만 말한다면 시간을 단축시키는 거리로 보여집니다. 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모든 것이 직선으로만 만들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두가지의 큰 자리를 찾게 됩니다. 하나는 고요함 속에 나타나는 불안정의 상태요, 다른 하나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여유를 잃어버리는 자리입니다. 직선이 시간을 단축시킨다 해도 단축된 만큼 삶의 깊은 맛은 주지를 못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쫓기는 듯한 자리에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곡선으로 만들어진 직선입니다. 사랑도 곡선으로 만들어지는 직선입니다. 곡선은 느리고 멀리 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거기에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을 풍긴다는 것입니다. 그 맛이란 사람을 부드럽게 해주고 여유를 지니게 해 줍니다. 인생에게 여유와 부드러움이 없다면 끊임없이 갈등만 높이 쌓여 갈 뿐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우리에게 직선으로 보인다면 신약의 은혜의 복음은 곡선의 자리입니다. 이 복음이 비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꼬불꼬불한 곡선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받아 주시고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을 잇는 축복의 징검다리가 된 것입니다. 본문은 하늘과 땅을 잇는 그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신 자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신 자리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이 광야에서 만든 성막이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요 성도의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교회 창립 주일입니다. 교회를 세운 복된 자리에 있는 성도의 축복을 감사함으로 열어 갑시다.

  1.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믿는 자리입니다(34).-“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므로 인간 세상에 열어 주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세계가 열려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찬송하는 것을 보게 하였고,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의 위에 임하셨다고 했으며 그 사실을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요1:33)”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세계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두가지의 큰 자리를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 하여금 위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의 발자취입니다. 그 하늘의 문이 열리는 축복을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성전 곧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성전의 자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아브라함에게 사흘 길을 걸어서까지 모리아 산으로 인도하셨고, 다윗에게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대하3:1) 그 성전의 그림자인 성막을 광야 길의 험한 여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성막을 완공하여 모든 것을 제자리에 구비해 놓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늘의 문이 열려진 자리를 보여 주신 것이 본문의 사건의 현장입니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성막 위를 덮었는가 하면 사람의 것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성막 위에 가득찬 것을 보게 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캄캄한 밤중에는 성막 위에 있던 구름이 불빛으로 변하면서 그 뿌리가 성막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진영을 다 덮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영광스런 자리를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인 것입니다. 이 교회를 세우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피 흘려 죽게 하시고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실 뿐 아니라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성도의 마음의 자리까지 성전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자리에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의 신성함을 잃어버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리를 복되게 하여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세우는 성도가 됩시다. 그곳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2. 하늘의 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입니다(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세상에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고, 영혼의 자리와 육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가에 따라 그것에 나타나는 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인간을 향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다를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보여지는 모든 사실들은 광야라고 하는 자리에서 되어진 것임을 알아야 성도의 존재 인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광야라고 하는 것은 남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그야말로 전투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리를 말합니다. 그런 자리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나무와 천으로 천막인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 성막이 사람의 눈에 화려하게 보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광야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광야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목적을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광야의 수준일찌라도 그 자리가 하늘과 땅을 잇는 복된 자리가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막의 자리에 임재 하셔서 사람이 함부로 출입을 할 수 없는 영광스러움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즉 야수와 같은 심정으로 살아가는 광야의 자리에도 하늘의 것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광야의 수준을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모세가 노래하기를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라고 감격의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대접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라고 하여 확실하게 인을 쳐 주신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 곧 하늘의 것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복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하나님의 세계 곧 하늘의 능력으로 세상 속에서 승리자의 축복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늘 문이 열리는 자리 곧 나 자신이 늘 하나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을 잇는 복된 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뵈옵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의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는 복된 사람이 됩시다.

3. 하늘의 것에 순종할 때에 복된 자리는 세워지는 것입니다(36,38).

  하늘과 땅을 잇는 복된 자리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세상 속에 담대하게 세워지는 자리를 말합니다. 본문의 정황을 살펴보면 성막 위에 펼쳐진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온 이스라엘 민족을 덮고 있다가 그 구름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구름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질서 정연하게 따라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늘의 것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방적인 의지로 행하는 것 같으나 그렇지 않고 누구의 말을 듣고 그것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은 피조물 곧 사람은 수동적으로 세상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한탄하신 것입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1:3)”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집착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기로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 백성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우리까지도 그렇게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신 자리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이유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의 험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생 행로입니다. 하늘의 것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가자고 하실 때 거기에 순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 행로에 정말 알아야하는 것은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광야 길이기에 거기에는 나를 위한 진실한 멘토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생산적인 것이 없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진정으로 사람을 쉬게 해주며 삶을 재 생산시켜 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멘토로 맞아 들여 순종하면서 함께 가는 길은 우리의 행위의 자리가 아닙니다. 아무도 하나님과 함께 갈 만한 인격자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신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울 수 있을 때에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늘의 것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하기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요구할 것이 없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 그것은 나를 인도해 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것에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늘과 땅을 잇는 복된 자리를 세우는 성도가 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광야에서 천막으로 만든 성막의 자리에 하나님의 세계를 열어주신 자리가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늘과 땅을 잇는 복된 곳이며 그곳에 있는 성도의 삶은 그 복된 자리를 통해 세상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사명을 가진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 나라로 삼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믿음으로 세워 복된 자리를 넓혀가는 성도로 살아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