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법과 덕목

가장 큰 법과 덕목(마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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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인간을 존귀한 자로 세워 주시는 사건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존귀한 인간을 향한 최고의 절정의 자리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6:3)”고 했고,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라고 했습니다. 왜 성경은 인간을 천사보다 존귀한 자로, 천사를 판단하는 권위자로 세워 주신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어서 그 은혜를 받은 인간으로 세워 졌을 때에 그 인간이 받은 축복의 자리가 그렇게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인간만이 약함의 자리를 깨달을 수가 있으며 그 약함의 자리를 깨달을 때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약함을 불행의 도구로 삼지 않고 그 약함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기쁘게 세울 때에 하나님은 그곳에 은혜를 베푸시고 그 약함을 위해 모든 것도 주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천사 앞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고 한 자리입니다. 즉 자신의 약함을 사랑하게 하시는 부자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존귀한 자로 살아가는 성도가 자신을 최상의 자리에 세우는 가장 큰 법과 덕목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자신을 더 잘 살피는 자가 되는 성도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 가장 큰 법이 무엇입니까?
(1) 사랑의 법입니다(40).
  사람이 왜 사람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자리는 근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동물이 사람의 흉내를 내고 사람의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사람의 자리에 세울 수 없는 것은 근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근본은 신의 성품을 소유한 존재입니다. 그런 근본을 가진 인간이 그 근본을 묻어 버리고 다른 형상을 닮아 가려고 그것을 본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입니까? 수행의 자리가 아닙니다.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자리를 알게 하여 인간의 참 형상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의 수행을 강조하고 그것을 크게 세워 줍니다. 이 인간적 수행의 자리에서 실패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준 법을 지키는데 온 몸과 마음을 바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필요한 것이지 그 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신 목적은 온 인류를 하나님 앞에 가장 축복 받은 존재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법을 알게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근본이요 으뜸의 자리입니다. 성도가 가장 축복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은 이 사랑의 자리에 자신을 세울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법이란 인간의 자리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법을 세우는 가장 근본의 자리가 인간을 사랑함입니다. 그런 사랑의 자리도 인간의 자리에서만 행해지면 그 사랑도 법의 부속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의 속성은 그 법을 어기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법이 아닙니다. 사랑은 법 이전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곧 온 율법과 선지자들을 붙들고 있는 근본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사랑은 인간 삶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 해석이 가능하고, 해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 자리가 모든 사람을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자리에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은 너무나 크게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것마져도 인간의 자리에서 해석하려고 했고 인간의 자리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리에서 해석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인간의 자리에는 더욱 부족한 것 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쉽게 정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인간의 자리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인간의 자리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크게 새겨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이 찾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1-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아 주신 이스라엘 민족이 있던 자리는 한마디로 법의 통치도 받을 자격이 없어서 법이 존재하지 않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을 해방시켜 하나님 앞에 세우시고 대접 받을 사람으로 세우신 후에 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법이 우선 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나를 세워 주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노예의 자리를 찾아주셔서 자기 백성으로 세워 주신 하나님이 법을 어겼다고 잘라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이 무너진 자리가 크면 클수록 나를 받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그 사랑의 자리에 나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 하나님의 자리에 세워진 후에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려주신 자리는 그 어떤 계명도 나를 다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되신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의 자리에서 해석하면 법아래 놓이게 되지만 하나님의 자리에서 해답을 찾으면 법위에 놓이게 되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최고의 법인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사랑받은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서 승리자로 세우는 성도가 될 뿐 아니라 이 사랑의 법으로 사람을 세우는 자가 됩시다.  

2. 가장 큰 덕목은 무엇입니까?
(1) 온유함과 겸손입니다(37,39).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정말 멸망 받아야 할 사람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신 것을 알고 그 사랑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기만하면 모든 약한 것에서 복되게 회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성경은 말하기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고 했습니다. 오직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리의 축복을 업신여기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죄를 지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죄를 짓자(롬6:15)”라고 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받아 주시고 세워 주시는 것은 나 하나로 세상을 사는 것도 좋지만 온 세상 속에 영향력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세워 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성경은 말하기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을 일컬어 덕목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두가지 가장 큰 덕목을 입혀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덕목을 입혀 주신 것은 우리가 완전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나 자신이 덕목이 있으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앞에 나를 무조건 세워 주신 사랑 받은 자로 믿을 때에 나타나는 삶의 향취가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그 덕목을 성경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고 하는 자리에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자가 된 것처럼 자신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적인 자리가 나타나고 끊임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리가 무거운 짐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신앙생활이 오히려 얽어 매는 사슬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이 자리에 세워진 사람이 바로 실패한 이스라엘 민족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해 주신 자리를 크게 보면서 자신을 그 사랑의 자리 위에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무조건 받아 주신 자리를 크게 보고 그 앞에 자신을 자랑스럽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끝없는 온유함의 자리를 깨닫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리에서 나타내야 하는 덕목인 온유함을 가지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온유함은 나의 세상을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심 같이 받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온유함을 가진 성도가 인간과의 관계에서 자기 몸 같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덕목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자리는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자기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과 자리에 있더라도 자신을 위한다면 그곳에 까지 내려가서 그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겸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겸손한 자리에 자신을 세우지 못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심지어는 자식까지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살아가신 자리가 바로 이 두가지 덕목 곧 온유함과 겸손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자신을 늘 세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워 주신 자리가 너무나 큰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그 예수님이 죄 때문에 버림 받은 우리 인간의 자리에 까지 내려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담당해 주신 것이 바로 우리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해 주신 온유함과 겸손의 덕목을 나타내신 자리입니다. 내가 하면 율법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신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법을 깨닫고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는 성도로 살아 갑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법을 먼저 주셔서 살게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한 없이 사랑해 주신 자리에 세우시고 세상 속에 영향력을 나타내게 하려고 법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법을 세우는 지혜가 바로 온유와 겸손의 덕목입니다. 이 덕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어 제자로 세우는 성도의 사명을 다 하는 자로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