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서있는 복된 주소

성도가 서 있는 복된 주소(마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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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이며 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살게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한번 살아보게 하려고 무대로 주신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면 제대로 한번 살아보는 세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끝없이 어떤 것에 연연하면서 사는 것 보다 나의 자리에서 사랑하다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한 청년이 아름다운 한 아가씨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얼굴과는 다르게 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청년이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 가를 알기 위해 이 아가씨는 청년에게 자기를 사랑한다면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청년은 단번에 달려가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두 손에 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달음박질 쳐서 가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심장이 땅바닥에 툭 떨어져 버렸습니다. 청년은 놀란 얼굴로 땅에 떨어진 어머니의 심장을 쳐다보고 있는데 떨어진 어머니의 심장에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얘야, 어디 다치지 않았니? 조심하거라”」 이것이 살아있는 어머니의 심장 곧 자식을 사랑하다가 세상을 떠나가신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이 심장으로 살아보는 세상이 아름답고 그 자리가 세상을 세우는 힘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이 심장으로 사는 성도가 이 세상을 복되게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빌2:5)”고 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성도에게 세상을 세우는 지혜를 열어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태어난 성도의 자리요 성도를 위한 세상인 것입니다.

1. 자신의 존재 가치를 믿고 살아 갑시다(13A, 14). -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팔복의 자리를 펼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팔복의 자리에 세워 놓으시고는 세상을 열어가는 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 메시지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금과 빛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생동감 있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필요한 요소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금과 빛은 인간의 생활 공간 속에 가장 필요한 존재 가치를 나타내는 매개체라는 것입니다. 그 필요한 존재 가치를 나타내는 실체를 예수님은 「너희는」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칭하신 「너희는」이라고 하는 실체가 누구입니까? 그 실체가 바로 앞에서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팔복의 자리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인생들을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자녀로 삼으신 가치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바칠 그 어떤 것도 요구치 않으시고 오직 하나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 자리를 예수님께서 가장 큰 자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마22:37-38)”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도의 축복된 존재 가치는 자신의 마음의 자리를 바르게 세워 그 위에서 세상을 복되게 열어가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는 모든 성도의 마음의 자리는 복된 것입니다. 이유는 나 자신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믿음을 가질 때 곧 예수님을 내 마음에 진심으로 모셔 들일 때에 그 통로를 타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내 마음을 다듬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님이 다듬어 주시는 마음으로 세워 질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복인 팔복을 누리게 되고 그 팔복을 누리는 사람이 성도인「너희」라는 존재이며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존귀한 존재이며 세상을 세우게 되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존재 가치를 믿어야 세상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였고, 포로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운 에스더와 모르드개였던 것입니다. 이 성도가 서 있는 주소는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2. 필요한 곳에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세우며 살아 갑시다(13B,15).
  
  사람에게 있어서 최대의 약점은 상대적인 비교에서 생겨나는 편차 때문에 자신이 부끄럽게 보이고 자신을 담대하게 세우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은 잘하면서도 되는 게 없다고 공격하면 아무런 방어 대책을 찾을 수도 없어서 앞으로 가던 모습을 일순간에 멈춰 버리게 됩니다.  자기 혼자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군사 곧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마져도 멈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더 삶을 갈등 속에 몰아넣는 것은 인간적 기득권을 발동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여 인간적 퇴로를 차단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소중한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닫아 버리는가 하면 자신이 마음먹고 작정하며 열어 가려던 것을 중단시켜 버리므로 자신을 있으나 마나한 사람으로 세워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은 말하기를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는 자리라고 말하고 있으며,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큰 약점의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워 주셨다는 것을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속에서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인간적 편차 때문에 스스로 절망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주저하지 않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면서도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셔서 세워 주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세워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온 세상에 나타내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우리를 세상에서 필요한 자리에 세워진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성경은 말하기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도가 있어야 하는 필요한 곳이란 바로 소금으로 끝까지 맛을 내는 것이요 이무리 비바람이 몰아치는 험한 환경을 만날찌라도 등불을 켜서 등경 위 곧 외로울찌라도 말없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요셉이었고 우리의 구주되는 예수님의 자리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무덤의 문을 열고 부활의 축복으로 세워 주실 때까지 필요한 자리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열어가는 성도가 될 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가 있는 세상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3. 사람을 세워 줄 수 있는 자리가 자랑스런 성도의 주소입니다(16).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최고의 축복은 사람을 사람의 자리에 세우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그 인간의 자리를 분명하게 세워 주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1:28)”고 하신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워 주신 인간의 자리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복을 받을 자로 세워 주셨다는 것이요, 둘째는 세상 모든 만물의 관리자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가 큰 위기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의 자리보다는 재난과 재앙의 물결이 인간 삶을 파괴시켜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세상을 복되게 관리해야 하는 인간이 관리자의 축복을 던져 버리고 세상을 향한 침략자요 훼방꾼이 되어 환경을 파괴 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자기 하나 잘 살면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무서운 이기적 욕망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을 생각해야지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을 생각하게 되면 인간의 자리를 짓밟아 버리게 됩니다. 그 현상을 본문은 말하기를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처럼 인간의 자리가 무너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 버려지는 이유를 성경은 자기 고유한 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고유한 맛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진 인간의 자리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고유한 맛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려고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자녀가 되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부모님으로부터 내려지는 것으로서 나는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완전하게 세워 지는 것이 자녀의 자리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자리는 인간의 부모와 자녀의 자리보다 더 크고 놀라운 자리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어떤 부족함이 있어 버림을 받을찌라도 자녀로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받아주셔서 인정받는 자리가 아니고 그런 부족함의 자리에서도 세상을 비취는 빛의 존재로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 세움 받는 자리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온 세상의 사람들을 이 하나님의 자녀의 복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세우는 자리이며 이 자리가 세상을 복되게 세우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세워지는 주소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은 축복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여서 고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우리의 마음의 자리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나 자신이 다스리지 말고 예수님을 모셔 들이므로 성령님이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하며 자신이 있어야 하는 필요한 곳에다 자신을 세워 줄 뿐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축복으로 세상을 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세우는 지혜요 성도가 서 있는 복된 주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