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 있는 나무의 축복을 받자

주인이 있는 나무의 축복을 받자(요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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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한 삶의 자세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체면에 걸리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기본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나은 것과 더 좋은 것에 스스로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도 하고 뼈아픈 실패를 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끊임없이 기본에 충실한 훈련을 거듭하게 하는 것이 운동 선수들이요 군인의 자리입니다. 이 기본 훈련만을 집중하는 코치에게 누군가가 “이번 주 내내 기본 기술만 연습시키시던데 그것은 선수들이 몇년 전에 이미 숙달한 것이 아닙니까? 올해 새로 팀을 만드신 것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코치가 대답하기를 “아니요 그 선수들은 모두가 프로 선수, 그것도 일등급 선수들이예요” 그랬더니 더 궁금하여 묻기를 “그렇다면 기본 기술은 그렇게 많이 연습시킬 이유가 없지 않은가요?” 이 말을 들은 코치는 정중하게 “재능이  있는 선수일수록 이러한 기본 기술을 등한히 하기 쉬울 뿐 아니라 이런 기본 기술이 경기에서 승패의 관건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자리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활 환경을 다르게 접하게 됩니다. 그 모든 생활마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본적인 자리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본을 아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 와야지 나무꾼 하나님께 나아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주인은 풍성한 열매만을 바라보지만 나무꾼은 자기 목적만을 위해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열매를 바라는 주인이시지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시는 나무꾼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세상을 열어가야 합니다.

1. 나무의 주인과 나무꾼의 자리를 바로 압시다.

  한 나무를 놓고 그 나무의 주인과 나무꾼의 자리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자리를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것을 믿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향해 나무꾼의 모습으로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무의 주인 곧 농장의 주인은 더 좋은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나무를 돌보며 다듬어 주지만 나무꾼은 더 좋은 목적보다는 자신의 필요와 편리에 따라 나무를 베어 버리거나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나무의 주인은 좋지 못한 것을 골라서 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수정해 보려고 하지만 나무꾼은 자신에게 불편하며 좋지 못한 나무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만지기 쉬운 나무만을 골라서 다듬어 주기 보다는 기쁘게 베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결단코 나무꾼으로 다가 오시지 않고 나무 주인으로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는 나의 어떤 결점과 약점의 자리에서도 그것을 받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결점과 약점을 통해 나를 더 자랑스럽게 세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11:8-9)”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인의 사랑을 받는 나무인 것을 믿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최선의 것을 날마다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는 가장 자랑스런 최선의 것은 나 자신이 크신 하나님 앞에 있는 자 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고백할 수 있을 때입니다. 나무의 자랑은 나무 주인 앞에 있는 것 곧 나무 주인의 농장에 심겨져 있어야만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자리를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시50:4-5)”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자기 앞에 세우기를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이며 그 자리가 제사 곧 예배의 자리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나무 주인의 농장에 있는 나무처럼 하나님의 자리 곧 하나님 앞에 있는 성도로 세상을 살아 갑시다.

2. 나무에 붙은 가지의 축복을 누리며 삽시다(2-5).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나무의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나무는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자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존재 가치는 너무나 귀하다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축복된 원리는 특정한 부분에 적용되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 유익하게 자리를 잡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성경은 위대한 재목감이 되는 나무를 말하지 않고 포도나무라고 언급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나무 줄기에 있지 않고 가지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어떻게 세워 주시기를 원하시는가를 믿음의 눈으로 열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도나무의 가지의 축복으로 그 위상을 복되게 세워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육신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시어 나의 자리에서 포도나무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지인 우리를 향해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믿음을 가진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1)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농부를 얻는 축복을 가지게 됩니다(2).
  주인이 있는 나무와 주인이 없는 나무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에서는 더 좋은 과실을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다듬어 준다고 했습니다. 즉 주인이 있는 나무와 주인이 없는 나무의 차이는 목적이 있는 것과 목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목적이 있는 가지는 더 잘 다듬어 주지만 목적이 없는 가지는 잘라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가지를 대우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남다른 환경이 아니고 햇빛과 비를 내려 줄 때에 열심히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특별한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한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에게는 동일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있는 나무 곧 농부를 얻을 수 있는 가지는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먼저 깨닫고 그 은혜로 어떤 비바람이 불어 닥쳐도 나무에 붙어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을 먼저 하는 것은 열매가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는 가지가 될 때 주인의 목적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열매는 나의 삶 속에서 최상의 자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신 은혜를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세우는 성도가 될 때에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자리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다듬어 주시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 늘 곁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2)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내일이 있음을 보게 합니다(5).
  내일이라는 자리는 인간이 살아가는 자리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에 오늘을 결코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좌절의 늪 속에 던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고 던져 버린다는 것처럼 자신을 욕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내일이라는 세상은 버리고 싶은 나를 세울 수 있도록 찾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에 자신의 가능성을 폐기 처분하지 않고 그것을 키워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신 자리입니다. 이 부활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신 가능성의 축복을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하신 자리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삶속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인이 있는 나무의 축복 곧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반드시 열매를 맺으며 주인은 그 열매를 위해 끊임없이 가지를 찾아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찾아 주시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 복을 위해 나무가 되신 예수님께 끝까지 붙어 있는 가지의 복을 새롭게 하며 살아 갑시다. 그 자리에는 반드시 내일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3)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의 아름다움은 자기 세상을 품을 수가 있습니다(7).
  본문의 중심은 성도가 예수님과 연합한 삶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매를 많이 맺었어도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너무나 귀하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신 자리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세상입니다. 성도가 나무되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될 때에 자기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것처럼 가치 있는 자리는 없습니다. 이것이 주인이 있는 나무의 축복입니다.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며 살아 갑시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복되게 자리 잡게 하실려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 갑시다. 그것이 나의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나무 주인이 있는 축복된 나무의 복을 가진 자입니다. 그 나무는 바로 예수님이 십니다. 그리고 나무 주인 곧 농장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은 나무를 다듬어 주셔서 더 나은 목적을 위해 세워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자리에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듬어 주셔서 세상을 아름답게 품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성령님이 우리 연약함을 담당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을 세우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