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하는 세상

걱정하는 세상(요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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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참으로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 두 법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두개가 동시에 같은 공간을 점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개가 동시에 같은 공간을 점유한다면 아무 목적과 미래가 없는 존재들의 자리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리가 있기에 썩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만을 위해 사는 동물의 세계는 존재는 하지만 더 좋은 것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곧 인간에게만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며 살도록 허락하셨고 그 좋은 것을 위해 살아가라고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그 인간이 살아가는 자리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과 악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요 평안과 불안이 함께 할 수 없으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함께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자리에는 함께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걱정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걱정하는 세상이란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위에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풍랑을 만난 배가 걱정을 내려놓는 길은 빨리 육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걱정하는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에게 피안의 세상을 허락하시고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피안의 자리에서 우리의 세상을 복되게 열어가 봅시다.  

1.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믿음의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1A).

  사람이 살아 있는 복을 아는 것처럼 귀한 일이 없으며 이 자리가 분명할 때에 미래를 향한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더욱이 성도의 자리는 이 자리가 분명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를 찾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존재적 의미를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22:32)”고 하셨습니다. 이는 살아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가 있다는 것이며 살아 있을 때에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 좌절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을 붙잡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고 깨닫는 자리의 가치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 버린바 됨이라(전9:4-5)”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자신의 일을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잘 감당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상으로 찾아오는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 자신이 잘 살아 보려고만 몸부림치기 보다는 나 자신이 정말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 복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반드시 기회가 있다는 것이며 역사 속에 나를 위한 조그만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 삶의 현장 곧 역사의 조그만 자리를 다듬어 가는 자리에는 때로는 조심하며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역사의 자리는 오직 미래를 향하는 것이며 그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성도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자신을 산 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라(출14:15)”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걱정하는 자리에서 성도가 세워지는 길은 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걱정거리를 향해 도전해 가라는 것입니다. 걱정거리는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닫히게 하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나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로 세워집시다.

2. 우리의 짐을 담당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1B).

   세상의 속도가 과거보다 오늘이 현저히 빠르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사람이 살아 가는 자리에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삶속에 굉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세워야 하는 힘의 절정이 끝나고 어느새 내리막 길로 접어 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 쉽게 자신의 자리가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좌절하고 자신의 미래를 닫아 버리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꽃을 피워 보지 못한 채 꽃 봉우리가 떨어지는 자리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에 살고 있는 온 인류가 겪고 있는 혼란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시90:9-10)”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지나가는 속도가 한번의 신음소리와 함께 끝 마쳐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길에서 자신을 세우는 축복된 지혜는 그 한번의 신음소리를 줄여가는 것입니다. 아니 그 신음소리를 맡아 줄 분에게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은 신음소리와 함께 멈춰진 존재로 살지 않고 나 자신이 열어 가야 할 세상을 열어 가자는 것입니다. 나의 신음소리 곧 나의 짐을 맡아 주실 분은 나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고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 하시리로다(시55:22)”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신음소리 곧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실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도 싫어하는 나의 죄 된 자리를 받아 주시고 그것을 위해 피 흘려 죽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이렇게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나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 짐을 져 주시려고 나를 찾아 주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자리를 크게 보고 기쁘게 나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그것이 기쁨으로 예배하는 삶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가족의 자리에 자신을 기쁘게 세워야 합니다(3).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곳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세상을 주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복되게 세워 주신 자리가 바로 가족 관계입니다. 이 가족의 자리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웠으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족 관계에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매 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신32:6)라고 하셨습니다. 이 가족 관계를 실제로 엮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가족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내 마음속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고 하셨습니다. 이 가족 관계의 축복을 본문에서는 같은 처소 곧 같은 집에서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도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자리는 무엇으로 확인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로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의 자리가 가족 관계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자리에 둥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는 가족의 자리가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으며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할 때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님과의 가족 관계로 사랑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가족 관계가 분명할 때, 즉 나 자신이 하나님의 가족의 자리에 있음을 고백할 때에 걱정하는 세상에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의 축복은 기쁘게 받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신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일컬어 나를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가족 관계는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 가족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걱정하는 세상에는 우리로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너진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살아 있는 축복을 알게 하여 세상을 복되게 열어 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세워 주시는 자리입니다. 내 짐을 나 혼자 지지 마시고 짐을 맡아 주시는 예수님께 맡기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