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부르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부르기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고 자신이 부서지기 쉬움을 볼 때 우리는 자연히 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창세기 4장 26절은,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했다.

인류의 제 삼대인 에노스의 때에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과 깨지기 쉬움과 죽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히브리어로 「주」라는 단어는 여호와이다(창 4:26, 출 3:14 참조).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주로 창세기 1장에서 그분의 창조와 관련되어 사용된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주로 창세기 2장에서 사람과 관련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사람과 친근한 관계가 되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따라서 창세기 4장 26절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을 부르지 않고, 그들과 심히 친근하신 분, 그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분을 불렀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그분은 과거에도 계셨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영원토록 계신다.

그분은 영존하시는 분이다. 부서지기 쉽고 죽어야 할 운명임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영존하시는 분인 여호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름이다. 심지어 이 부름은 인류의 제 삼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분의 길 안에서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가 부서지기 쉬우며 죽어야 할 운명이고 우리의 인생이 공허할 뿐임을 깨달을 때,

자연히 우리는 깊은 속으로부터 기도할 뿐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가장 중요한 씨로 간주해야 한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일이다.

(1)주의 이름을 부름의 정의

먼저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름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나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단지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는 다름을 보여 주셨다. 그렇다. 부르는 것은 기도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도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부름은 단지 기도만이 아니다.

「부르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외치다」 또는 「호소하다」, 즉 「부르짖다」를 뜻한다. 헬라어로는 「사람을 불러 일으키다」,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를 뜻한다.

바꿔 말해서 부르는 것은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기도는 속으로 할 수 있지만 부르는 것은 들리게 해야 한다.

주님을 부르는 것은 그분께 부르짖는 것이며 영적인 호흡을 체험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호흡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애 3:55-56).

이 구절들은 부름이 또한 부르짖음과 호흡임을 나타낸다. 부르짖음은 가장 좋은 호흡이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부르짖음은 가장 좋은 실행이다. 부르짖을 때마다 당신은 자연스럽게, 깊이 호흡하게 된다.

부르짖고 호흡함으로써 우리는 내쉬고 들이마신다. 들이마심은 항상 내쉰 다음에 있다. 내쉼으로써 우리는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내뿜는다. 소극적인 것들을 내뿜을 때마다 주님의 적극적인 것들이 당신을 채울 것이다.

화내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화가 나오려고 할 때 당신은 억누르려고 노력하지 말고 다만, 『오, 주 예수여!』라고 부르라. 그런 다음, 『주 예수여, 나는 지금 화를 내겠습니다.』라고 짧게 기도하라.

이렇게 한 후에도 여전히 화를 낼 수 있는지를 보라.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당신은 화를 내쉬고 주 예수를 들이마신다. 당신은 화를 내쉬고 주님을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당신은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가? 거룩하게 되는 길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당신은 죄 있고 악하고 더러운 모든 것들을 내쉬고 적극적인 모든 것들-주님의 풍성-을 당신 안에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2) 주님을 부른 역사

주의 이름을 부른 역사는 성경 전체를 통해 계속되며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 있다.

그들은 아브라함(창 12:8), 이삭(창 26:25), 모세(신 4:7, 원문 참조). 욥(12:4, 원문 참조), 야베스(대상 4:10, 원문 참조), 삼손(삿 16:28), 사무엘(삼상 12:10), 다윗(삼하 22:4, 원문 참조), 요나(욘 1:6, 원문 참조), 엘리야(왕상 18:24), 엘리사(왕하 5:11), 예레미야(애 3:55)이다.

(3) 주님을 부르는 목적

(a)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가?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롬 10:13). 가령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기 시작한다 하자. 당신은 그가 아주 조용하게 주님께 기도함으로써 구원받도록 그를 도울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구원받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기도하도록 그를 도울 뿐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돕는다면 그의 구원의 체험은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조용하게 기도하도록 돕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지만 그렇게 풍성하지는 않다.

큰 소리로 부르는 길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풍성하고 더 철저하게 구원받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자신을 열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도록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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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근심, 환난, 슬픔, 아픔에서 구출받기 위해서
주님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근심에서 구출받고(시 18;6, 118:5) 환난에서 구출받고(시 50:15, 86:7, 81:7) 슬픔과 아픔에서 구출받기 위함이다(시 116:3-4).

주님을 부르는 것에 대해 논쟁하는 사람들도 어떤 환난이나 질병을 만날 때에는 자신이 주님을 부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생활에 환난이 없을 때 우리는 주님을 부르는 것에 대해 논쟁할 것이다. 그러나 환난이 닥칠 때 아무도 당신에게 주님을 부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자연히 부를 것이다.

주님을 부름은 우리를 구출하고 해방한다. 우리는 근심과 환난 중에 있을 때 주님을 불러야 한다. 더우기 시편 116편 3절-4절은, 주의 이름을 부름이 우리를 고통, 슬픔, 사망, 음부와 같은 소극적인 것들로부터 구출한다고 말한다.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 받기 원한다면 당신은 주님을 불러야 한다.

(c) 주님의 긍휼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편 86편 5절은, 주는 선하시고 사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분을 부르는 자에게 긍흘이 풍성하시다고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풍성한 긍휼에 참여하는 길은 그분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부를수록 긍휼을 더 누리게 된다.

(d) 주님의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

또한 시편 116편은, 우리가 주님을 부름으로써 그분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3절). 이 한 편의 시에서 주님을 부르는 것이 네 번 언급된다

(2,4,13,17절). 여기서 부르는 목적은 주님의 구원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전에 언급했듯이 우리가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사 12:2-4).

(e) 영을 받기 위해

주님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영을 받기 위한 것이다(행 2:17, 21), 성령으로 채워지는 가장 좋고 쉬운 길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영은 이미 부어졌다.

우리는 다만 주님을 부름으로써 그분을 영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렇게 할 수 있다. 대여섯 번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은 영으로 채워질 것이다.

(f) 만족함을 위해 영적인 물을 마시고 영적인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이사야서 55장 1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주님을 먹고 마시는 길은 무엇인가? 이사야는 6절에서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 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러므로 만족함을 위해 영적인 물을 마시고 영적인 음식을 먹는 길은 주님을 찾아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g) 주님의 풍성을 누리기 위해서

로마서 10장 12절은, 주님을 부르는 모든 자들 위에 그분이 부요하시다고 말한다. 주님의 풍성을 누리는 길은 그분을 부르는 것이다. 주님은 풍성할 뿐 아니라 생명 주는 영이기 때문에 가까이 계시며 유용하시다(8절).

영이신 그분은 무소부재하시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그분은 영으로 우리에게 오시며 우리는 그분의 풍성을 누린다. 당신이 예수를 부를 때 그 영이 온다.

고린도 전서는 그리스도의 누림에 관한 책이다. 12장에서 바울은 그분을 어떻게 누리는가에 대해 말한다. 주님을 누리는 길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12:3, 1:2).

「주 예수여」라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생명 주는 영이신 그분을 마신다(13절). 15장 45절은 주님이 지금 생명 주는 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주 예수여」라고 부를 때마다 그분은 영으로 오신다.

내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만일 그가 참되고 살아 있고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내게 올 것이다. 주 예수님은 참되고 살아 있고 존재하신다. 그분은 항상 유용하시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그분은 오신다. 심지어 구약 시대에도 모세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를 부를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가까이 함을 얻은 위대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히브리어 참조).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분은 가까이 하신다(시 145:18). 당신은 그분의 모든 풍성과 함께 주님의 임재를 누리기 원하는가?

그분의 모든 풍성과 함께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최상의 길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나 일을 할 때 그분을 부르라.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부를 때 그분은 당신을 가까이하시며 당신에게 부요하시다.


(h) 스스로 분발하기 위해서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분발할 수 있다. 이사야 64장 7절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우리는 실망하거나 침체되어 있을 때 주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향상되고 분발할 수 있다.

(4) 주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이제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먼저,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 분을 불러야 한다(딤후 2:22). 근원이 되는 우리의 마음은 주님 자신만을 추구하는 순수한 마음이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순수한 입술로 불러야 한다(습 3:9, 히브리어 참조). 느슨한 말보다 더 우리의 입술을 더럽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만일 느슨한 말로 인해 우리의 입술이 순수하지 않다면 주님을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입술에 더하여 우리에게는 열린 입이 필요하다(시 81:10, 7절 참조). 우리는 입을 크게 벌려서 주님을 불러야 한다. 더우기 우리는 단체적으로 주님을 불러야 한다.

디모데 후서 2장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순수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함께 모일 필요가 있다.

시편 88편 9절은,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매시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호흡을 멈추면 안 된다. 우리 모두는 호흡이 멈출 때 어떻게 되는지를 안다.

더우기 시편 116편 2절은, 『내가 평생에 그분을 부르리로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나는 더많은 주님의 백성들, 특히 새로운 사람들이 주님을 부르는 이 실행을 시작하기 바란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그것이 주님의 풍성을 누리는 최상의 길임을 보게 될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의 회복의 한 항목이 된 이후로 어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질책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왜 당신은 주님을 부를 때 주님이 당신에게 가깝다고 말합니까?』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다. 당신 안에 숨(호흡)이 없는가? 당신 안에 이미 숨이 있는데 왜 여전히 호흡하는가? 이 질문의 논리는 주님이 이미 우리 안에 계시는데 주님을 불러야 하는 것과 일치된다.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부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건전한 논리일지 모르나 그것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아무도 호흡에 대해서는 이렇게 실행하지 않는다.

숨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더이상 호흡할 필요가 없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계속 호흡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분을 불러야 하며 그분을 더욱더 들이마셔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왜 당신은 그렇게 큰 소리로 부릅니까? 우리 하나님이 귀머거리입니까? 그분이 우리의 조용한 기도를 들으실 수 없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들은, 주님이 귀머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분을 크게 불러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논쟁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5장 7절에서 주님이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를 보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이 구절에 있는 「심한 통곡」은 분명히 조용한 기도가 아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을 큰 소리로 부르는 자들에 대해 불평한다면 당신은 왜 주 예수님이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셨는지 그분께 물어 보아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이 귀머거리가 아닌데 왜 주님은 그렇게 기도하셨는가? 더우기 요한복음에서 최소한 두 번 그분은, 혼자 계시지 않고 항상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다(16:32, 8:29).

아버지께서 계속 그분과 함께 계셨는데 왜 그분은 아버지께 심한 통곡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었는가?

더우기 시편에서는 여러 번, 주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하라고 말한다(66:1, 81:1, 95:1,2, 98:4,6, 100:1). 즐거운 목소리가 아니라 즐거운 소리임을 주목하라. 우리 모두는 목소리와 소리의 차이점을 알고 있다. 주님이 그런 소리를 듣기 좋아하시므로 우리는 주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가 안 들으시는가가 아니다. 요점은 우리의 영과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해방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생명 주는 영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것은 들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누리는 문제이며 그분의 모든 풍성에 참여하는 문제이다.

이 메시지에서 내 부담과 의도는 주님을 부르는 것에 관한 성경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주님을 부름에 대한 성경 말씀을 연구해 본다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최근의 발명이 아님을 확신할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있는 거룩한 것들 중 하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창세기 4장 26절에서 보았듯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수천 년 전에, 심지어 인류의 제 삼대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