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의 전도

주일 설교
사도행전 8장, 빌립의 전도
 

사도행전 8장, 빌립의 전도    

 

합독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찬송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을 작사한 사람이 존 뉴톤 입니다.

이 사람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입니다.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청소년기를 불우하게 보냅니다

영국 해군에 징집되자 도망쳤는데, 노예 무역상에게 잡혀 노예가 됩니다.

22살에 바다에서 폭풍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노예 무역상을 운영합니다.

그러다가 40세에, 성공회 신부가 되어 성직자로 15년 봉사했습니다.

82세로 죽었을 때 그의 친구들은 묘비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불신자, 난봉꾼, 아프리카 노예 무역상이었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용서받아, 그 믿음을 전하는 자로 세움을 받았다.”

복음을 받으면 사람이 이렇게 변화합니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면서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이 나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행 1:4)고 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본격적으로 핍박하면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도들을 제외한 제자들은 유대인 핍박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들이 처음 간 곳이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사마리아입니다

이스라엘은 세 개 지역으로 나뉩니다.

북쪽의 갈릴리, 중앙의 사마리아, 남쪽의 유대 지역입니다.

사마리아는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싫어했습니다. 잡종이라고 멸시했습니다.

사마리아를 멸망시켰던 앗수르가 인구혼합정책을 사용했고, 그래서 유대인의 혈통이 다른 민족과 섞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에 대해 편견을 초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이 열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는데, 9명의 유대인은 다 가고,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 인사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대인 강도 당한 사람을 보고 같은유대인이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은 도와줍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에 대해 배려하시고 가까이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약하고 소외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마리아인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간 첫 선교사는 빌립입니다.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팔레스틴이 아닌 지역에서 태어난 유대인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로 하고, 구제와 봉사를 위하여 헬라파 유대인 일곱 집사를 선발한 바 있습니다.

일곱 집사는 원래 전도하라고 뽑힌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곱 집사 중의 한명인 스데반은 설교하고 전도하다가 죽었습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일곱 집사 중의 한명인 빌립이 활약을 하게 됩니다.

 

5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사마리아 어느 지역에 갔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땅에 들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6절에 보면, 말씀 듣고, 표적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릅니다.

 

이런 반응이 나오면 예사롭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7-8절,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이 행한 기적은 예수님의 사역을 연상하게 합니다.

귀신축출(눅 4:41), 중풍병자 고침(눅 5:18), 앉은뱅이 고침(눅 7:22).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시던 일입니다.

 

빌립은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빌립의 전도에 구원과 치유가 함께 일어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전해주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신앙이 불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만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이기고 살아가려면, 죄 용서 만으로는 부족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잠시 들르게 됩니다.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됩니다.

두 사도는 빌립이 전도한 것에 대해, 준공검사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바울이나 베드로 같이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아니라, 빌립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에 보면, 바울이 “내가 전에는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였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다” (딤전 1:12-16) 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습니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바울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돌로 치는 사람들이 옷을 벗어서 바울 앞에 두었습니다(행 7:58).

바울이 주도자라는 것입니다.

 

8:3절에는,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잔멸한다는 것은 멧돼지가 밭을 쑥밭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쑥밭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회심하여 이방인 전도에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간 것은 핍박이 심해서 도망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빌립이 할 일을 하고 나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명령을 합니다.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는 성령입니다.

가사는 예루살렘 왼쪽 남단의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80Km 됩니다.

애굽이나 아프리카로 가는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음식과 물을 준비합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주의 사자가 “일어나 가라” 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어떻게 합니까?  

 

27-28절,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이 즉각 순종하여 “일어나” 갑니다. 환송회 할 시간도 없습니다.

“보니”는 예상 밖의 인물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흑인입니다.

 

에디오피아는 애굽의 남쪽,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간다게는 에디오피아 말로 여왕입니다.

국고담당이니 중요 보직입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성전에 예배하고 돌아가는 것이니, 유대교를 믿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빌립에게 다시 명령합니다.

 

29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가서 보니 이 사람이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빌립이 묻습니다. “당신은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합니까?”(30절)

이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이해합니까?”(31절) 라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처음 본 빌립에게 병거에 올라와서 설명하라고 합니다.

 

32절,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 내시가 읽고 있는 것은 이사야 53장 7절입니다.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을 선지자 이사야 자신의 고난이나, 이스라엘 국가 전체의 고난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헤롯, 안나스 앞에서 고소나 질문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어린 양과 같이 잠잠했습니다(눅 23:9).

십자가 현장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로마군대 백부장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녕 의인이었도다”.

 

에디오피아인이 이런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

에디오피아인은 이사야 구절이 누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이사야 자신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34-35절,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이 일사천리로 설명합니다. .

이사야서를 필두로 예수님에 관한 것을 일일이 증거합니다.

 

사도들이 일관되게 증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예수님이 주” 이고

-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며

-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천상의 왕으로 통치하신다” 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전도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겠습니다.

 

26절,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가사로 가라”

29절,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31절, “병거에 올라 앉으라”

34절, “청컨대 묻노니”

35절, “보라 물이 있으니”

38절, “둘 다 물에 내려가”

39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모든 것을 성령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빌립을 강권적으로 붙드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와 선교를 지휘하는 분은 성령입니다.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에디오피아 왕족은 솔로몬의 후예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에디오피아 스바여왕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고국에 가서 솔로몬의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에디오피아 왕족은 솔로몬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고, 히브리 종교를 믿고 히브리 문화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고 있습니다.

 

36절,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에디오피아인이 세례를 받습니다. 구원과 성령이 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이 직접 기적과 이적을 보이시고, 설교를 하셨어도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도자의 설명만으로 믿습니다.

 

교회사 전승에 의하면 이 일로 인해,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에 가서 교회를 세웠으며, 그 교회가 오랫동안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의 빌립의 전도는 모든 것을 성령이 주도하였습니다.

빌립은 성령이 명령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지만, 어떻게 빌립이 이렇게 할수 있었습니까?

빌립은 사마리아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차별했지만, 빌립은 사마리아 땅을 기쁨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광야에서 만난 에디오피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내시는 주의 말씀을 듣고 큰 감격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5:10절에 이렇게 설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사 55:10)

 

비가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집니다.

그리고 비가 땅을 적시고,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나무가 자라고 곡식이 열매를 맺습니다.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지만, 헛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동안에 많은 생명이 자라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켜 보면 뚜렷하게 한 일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먹고 살기에 바쁘고, 나중에는 누구나 죽습니다.

누가 조금 빨리 죽느냐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헛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건축물의 모퉁이 돌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출세도 못하고, 권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또 출세를 했다고 한들, 그게 그것 입니다.

세상 속에서 늘 깨지고 실패를 거듭합니다.

신나는 기간은 거의 생각이 안 납니다.

 

여러분, 혹시 사업이 망했습니까? 사업이 잘될 때 무슨 일을 했습니까? 

혹시 건강이 약해졌습니까? 건강할 때 무슨 일을 했습니까?

혹시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때 무슨 일을 했습니까?

 

우리 삶은 잠시 사는 나그네 인생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고, 주님께 바칠 열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불러주시고, 찾아오셨으며,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맙고 놀라우신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은,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됩니다.

우리로 인하여, 만민이 구원을 얻고, 죽어가는 심령이 빛을 얻고, 잠자는 영혼이 깨어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소년이 해변을 거닐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가사리를 주워 다시 물에 던져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년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썰물 때 불가사리가 해변에 남아있다가 말라 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년은 의아했습니다. 바다에 무수히 많은 불가사리가 있는데, 한 마리가 더 산다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 사람이 말합니다. “이 불가사리에게는 의미가 있단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바다에 있는 불가사리가 아니라, 해변가에서 물이 없어서 말라 죽는 불가사리입니다.

우리가 주유소 점원이나 공장 근로자에게 복음의 소책자를 전해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해변가에서 물이 없어서 말라 죽는 불가사리를 물로 옮겨 주는 것입니다.

 

존 뉴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나는 세가지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첫째,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내가 볼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천국에서 예수님은 목사가 들어오면 가장 반가워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두 오래간만에 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셋째, 가장 놀라운 것은 뉴톤이 그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복음은 구원받지 못한 한 명의 새 신자에게 듣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집단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2세기와 3세기의 방법입니다.

현대인에게는 바다에 던지는 불가사리처럼 한 명씩 복음을 들음으로써 생명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우리를 통해서 그분의 할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겠다는 믿음과 순종이 있으면, 빌립과 같은 쓰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힘으로 교회가 다시 부흥을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전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빌립이 성령의 힘으로 사마리아와 에디오피아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을 받은 자로서, 빚진 자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로서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