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끊을수 없는 사랑

주일 설교
로마서 8:31-39, 하나님의 끊어질 수 없는 사랑
 

로마서 8:31-39, 하나님의 끊어질 수 없는 사랑

 

 

로마제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으로 평가 받습니다.

제국이 존속한 기간이나 영토, 문화적 영향 등 세계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영토는 북쪽으로 영국과 독일, 동쪽으로 이스라엘 등 소아시아 전체, 남쪽으로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에 미쳤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30년 동안 로마정부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간주하여,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의 수가 증가하고 영향력이 확대되자,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기독교에 반대하게 됩니다.

 

주후 64년에 유명한 로마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이 화재는 7일 동안 계속됩니다. 도시에 14개의 구간이 있었는데, 그중 10개의 구간이 화재로 잿더미가 됩니다.

 

로마시민의 민심이 흉흉 했습니다. 범인으로 네로 황제를 의심합니다.

네로 황제의 과격파들은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인이 범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영화에도 많이 나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기둥에 묶여 횃불로 사용됩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이때 순교하게 됩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대화재가 나기 7년 전인 주후 57년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복자 처럼 이기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앞으로 해야 할 준비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신자들은 바울의 로마서가 그들 앞에 도착하여 낭독되었을 때,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다가오는 박해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했을까요?

 

지금 이 순간 돌이켜 보면, 이 같은 비극적인 박해의 시기에 누가 누구를 정복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둘러보십시오.

로마제국은 이름만 남아 있지만, 그리스인들은 전세계에서 활동합니다.

 

이 제국의 심장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당하는 자’에서 ‘정복자’가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바울은 이 서신을 신자의 신학적 훈련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시험이 오더라도 그 환난을 벗어나기 위한 삶을 위한 지침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어떤 심정으로 이 서신을 작성했는지 보겠습니다.

 

31절 전단,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 말은 극도로 기쁜 심정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8장 29-3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우리를  미리 정하셨고,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고 합니다.

“이렇게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 최종적인 승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5가지 수사적인 질문을 이어 갑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31절 후단,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리스도인의 대적자는 세가지 입니다. 세상, 육신, 마귀.

세상은 기독교인들의 삶과 다릅니다. 기독교가 세상의 삶의 원칙을 거슬리기 때문에, 세상은 기독교의 반대에 서게 됩니다.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은 그 속에 죄의 씨앗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육신의 해로운 영향력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대적자는 마귀입니다.

베드로는 마귀를 ‘삼킬 자를 두루 찾아 우는 사자’(벧전 5:8)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질문하고,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니 우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한 사람의 유력한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루터보다 15살 아래인 멜랑흐톤입니다

두 사람은 아주 절친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었을 때 유언에 따라 한 무덤 안에 묻힐 정도입니다.

루터는 카톨릭 신부였습니다. 종교개혁을 추진할 때, 카톨릭 조직의 거대한 힘에 좌절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멜랑흐톤이 루터를 격려하면서 이 31절을 적어 보냈습니다.

루터는 31절에서 하나님 진리에 대한 확신과 힘을 얻고, 종교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라했습니다.

 

여기서 ‘아끼다’ 라는 단어는 창세기 22:12절 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때의 “아끼다”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달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분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하나님이니, 우리를 위해 모든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아낌없이 주신 분인데, 왜 다른 것을 안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33절,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택하셨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뽑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뽑아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송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송사는 고소입니다.

누구입니까? 사단입니다(계 20:10).

 

사단이 신자에게 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사단이 ‘너는 죄인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사단이 이 약점을 고소하는 것인데, 맞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단의 송사를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스가랴서를 보면, 여호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백성들의 희생을 드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단이 여호수아가 죄인이므로 그 직무를 담당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사단을 꾸짖습니다.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스가랴 3:2)

그리고 천사가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결한 관을 씌웁니다.

이와 같이 사단의 송사를 하나님이 물리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 바뀔 수 있는지 묻고,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그 뜻이 변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변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변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성도에게 가장 불안한 것이 만약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만, “만약 하나님이 끝까지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염려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야이로라는 회당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딸이 병이 들었고, 예수님을 찾아와 발 앞에 엎드리어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혈루증 앓는 여인이 나타나서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했고, 예수님은 이 여인을 고치는 바람에 늦어져 야이로의 딸이 죽어 버렸습니다.

회당장의 마음에는 이렇게 될 바에는 예수님을 기다리지 말고 다른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더 나았을 뻔 했다는 후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여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셔서 아이의 손을 잡고는 “달리다굼”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러나라”(막 5:41) 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우리에게는 “만약”이지만, 하나님에게는 “반드시” 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분이고, 그분이 하실 일을 반드시 하십니다.

 

네 번째 질문입니다.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 세가지를 설명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정죄받지 않도록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보혈의 피로 죄를 사하셨으니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우리가 구하는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선을 위해 일하실 때, 우리에게 허락하실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들어주십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조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 일생을 뒤돌아 보면서 쓴 기도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아니한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었더라면,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입니까?

환난(Trouble)은 시련입니다. 원어로 보면 환난은 타작기를 가리킵니다.

땅에 곡식을 깔아 놓고 타작기로 내리치면 곡식 알들이 떨어집니다.

환난은 신자를 땅에 눕혀 놓고 타작기로 내리치듯이 호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곤고(hardship)는 터질 것 같은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핍박(Persecution)은 노골적인 박해입니다.

기근(Famine)은 굶주림입니다.

적신(Nakedness)은 헐벗음입니다.

위험(Danger)과 칼(Sword)은, 죽음이고, 순교입니다.

 

이 말들은 무시무시한 예언적인 표현입니다.

로마 교회가 바울의 로마서를 받고, 7년 후에 당하게 될 일입니다.

 

그리스도 사랑이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런 무서운 상황에 있을 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하게 이기느니라”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이깁니다.

영어 성경에는 ‘정복자 처럼 이기느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무서운 환난 등을 정복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무슨 힘으로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기게 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 할 때 이야기입니다.

교황은 루터를 어떻게 하든지 카톨릭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황이 추기경에게 금을 주면서 루터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추기경이 얼마 후에 이렇게 회신했습니다.

“이 루터 라는 바보는 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추기경이 루터에게 이렇게 협박합니다.

“당신의 조국 독일은 당신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오. 교황의 손가락 하나가 독일의 힘보다 강하다오. 이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루터가 대답합니다.

“나는 지금 있는 이곳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손안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그대로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루터를 사용하셨으며, 루터는 하나님 손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장애를 설명합니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내가 확신하노니’는 마음에 깊은 확신입니다.

무엇을 확신합니까? 9가지입니다.

 

-      사망은 육체적 죽음입니다.

-      생명은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      천사는 선한 천사나 악한 천사를 포함합니다. 영적인 세력도 구원의 길에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      권세자는 통치자입니다.

-      현재일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말합니다.

-      장래일은 미래에 오게 될 환난과 고통입니다

-      능력은 권세자가 가지고 있는 우주적인 힘입니다.

-      높음은 높은 자리에 올라 갔을 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      깊음은 가난 멸시 낮은 지위입니다.

 

아무리 힘든 것일지라도,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A.D. 4세기 크리스소톰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의로운 일을 했고, 부정을 타파하려 했습니다.

 

그러한 설교도 하니,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로마의 지배층으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마침내 로마 황제 앞에 끌려왔습니다.

 

황제가 협박합니다. “계속 그리스도인으로 남는다면 추방 당할 것이다”

크리스소톰 “이세상은 내 아버지의 집이니 쫓아낼 수 없다”

 

황제       “너를 죽일 것이다” 하니

크리스소톰 “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죽일 수 없다”

 

황제       “네 모든 보화를 빼앗을 것이다” 하니

크리스소톰 “내 보화는 하늘에 있기 때문에 빼앗을 수 없다”

 

황제       “네 주위의 모든 사람을 떠나게 할 것이다” 하니

크리스소톰 “내 친구는 하늘에 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크리스소톰의 답변을 보면, 바울이 로마 성도가 이해하기를 원했던 로마서의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원의 찬가입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셨으며, 우리의 절망과 좌절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참된 구원을 얻고, 또한 세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사랑”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사랑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심히 연약하오니, 크고 작은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우리들이 한 마음으로, 일심으로, 주님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의 앞길을 가르쳐 주옵시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인도하옵소서

세상 속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