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주일 설교
사도행전 2:1-13,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행전 2:1-13,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1941.12월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했습니다. 일본 공군은 미국 배 18척과 비행기 180대를 파괴하였습니다. 미국은 3,700여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2차대전 내내 “진주만을 기억하라”라는 슬로건을 걸었습니다.

이때 영국의 윈스톤 처칠은 진주만의 소식을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제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사에서, 우리는 이와같이 역사가 바뀌는 순간들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시간과 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또한 인간을 구속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존재해 계십니다.

하지만, 존재하시는 것이 구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을 목적으로 오실때가 있는데, 그때는 특별한 일을 행하시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신 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는 사건이, 하나님 자기 계시의 절정의 순간입니다.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는, 기다리던 그 역사적인 중요한 날이 드디어 오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유월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올때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고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일주일 내내 쓴나물만 먹습니다.

장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동안 방황하면서 고생하던 때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 나가서 천막을 치고 지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되는 날입니다. 유월절로부터 7주 지나야 있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보리에 이어 밀농사 수확이 마무리되는 시기로서 이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먹고 마시게 됩니다. 3대절기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신후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본문의 오순절은 예수님이 승천하신후 10일이 지난 시점입니다. 주후 33년 5월 25일의 아침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남서쪽 부근의 큰 다락방입니다. 이곳에 그리스도인 핵심 인물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5에는 모인 무리가 120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날 사도행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령이 임하는 모습입니다.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하는데, 두 단어 모두 바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바람이라고 할까요?

보이지 않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첫장을 열면 하나님의 신, The spirit of God, 성령이 소개됩니다.

 

창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태초부터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이 그만 사람을 떠났습니다.

 

창 6: 1~3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이 성령을 완전히 거두어 가 버리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나서, 하나님과 분리되고, 죄악에 묻혀 있게 되었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이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자, 하나님께서 처음 하신 일은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인간에게서 떠나셨던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시어, 하나 가 되는 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7에서 “성령이 네 안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이 약속이 이루진 것입니다.

 

그럼, 오순절날 성령은 어떤 현상으로 임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청각적인 현상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사도들이 피해 다녔으니 창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밖에서 부는 바람이 아닙니다. 환청도 아니고, 분명히 어떤 소리가 귓전을 때린 것입니다.

120명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람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소리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을 마른 뼈들이 있는 골짜기에 데려가시고, 에스겔이 마른 뼈에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뼈들이 움직이고, 서로 짝을 맞추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생기고, 핏줄이 생기고, 가죽이 입혀집니다.

그리고, “생기야 저 뼈속에 들어가라” 하니, 하나님의 생기가 뼈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뼈들이 살아나서 서더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의 호흡이고, 하나님의 생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오순절 다락방에 기도하고 있던 무리 속에 바람처럼 불어 온 것입니다.

 

2절에 “온 집에 가득하며” 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120명에게 임했다고 하지 않고, 온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4절에는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했는데, 왜 2절에서는 “온 집에 가득했다”고 기록한 것일까요?

 

이것은 구약에서 성령이 구름으로 구현되어,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임한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출 40:34).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집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120문도가 모인 다락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이 거대한 성전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로 대전환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할 때 시각적으로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은, 하나의 불이 갈라지면서 모든 사람 위에 안수하듯이 임한 것입니다.

헬리어에는, 이 불이 각 사람의 머리에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머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는

하나님의 택함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개별적으로 권능이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불에 대해서는 구약에서 설명이 됩니다.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이 불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살인을 하고 미디안으로 도망가서, 40년동안 살인자의 모습을 한채, 좌절과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이 불이 또 나타났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영적인 대결을 하였습니다

누가 먼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가 하는 시합입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은 제단을 쌓고, 우상과 동물을 갖다 놓고 춤을 추고 소리지르고, 몸에 자학을 하면서, 불을 내리기 위해서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도 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제사법에 따라 제단을 만들고 도랑을 파고 물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딱 한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응답하소서”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자, 그럼 성령이 임하셨을 때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받은 자들에게 새로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인격과 감정이 성령으로 가득차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충만이라는 용어는 누가복음 1장과 2장의 예수님의 출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건에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몸에 그리스도가 잉태되어 있음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일들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입니다.

 

둘째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는데, 성령받은 순간에 생각이 나게 됩니다.

그때 그 말씀이 이런 의미였구나!

 

셋째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은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신령한 언어입니다. 엑스타시 상태에서 통제할 수 없는 말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언어는 외국어입니다.

5절~8절에 보면, 이 방언을 모두가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민족의 장애를 극복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도 방언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방언은 사도행전에서 말씀하는 방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다른 사람이 못알아 듣는 방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이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통역하지 않으면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는 예언하는 자만 못하다고 했습니다(고전 14장).

그러나 사도행전의 방언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모두가 알아듣게 됐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생긴 이 방언은 하나님의 은혜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쓰임을 받는다는 은사적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필요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시말하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할 일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럼, 왜 은사적 특권으로 외국어를 주셨을까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이 복음은 유대인만의 것이 아니고, 모든 족속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그  표징으로 성령이 임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외국어 방언을 주신 것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아 아버지의 뜻을 이룬 것 같이,

주님께서도 우리들을 보내어 주의 일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왜 힘들게, 고집세고, 말도 안듣고, 능력도 안되고, 둔한 자들을 택하시어 일을 하도록 만드실까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리까지 임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이 가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에게 각 민족에게 가서 말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만일 이들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들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이들의 가는 길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 입니다.

 

오순절 방언은 은사이고 특권입니다.

땅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이 제자들을 기뻐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2~4절을 보면,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저희가 다”, “온 집”, “그들 중의 각 사람”

오순절에 120명 모두에게 임한 성령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든 신자를 위한 것입니다.

 

자 이제 이 제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겠습니다.

 

9~11절,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는 인도, 이라크, 이란지역입니다.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는 터키지역입니다.

“애굽,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는 북아프리카 지역입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로마가 나옵니다.

이들 나라의 배열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언급됩니다.

15개 나라로서, 당시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헬라어로 디아스포라, 즉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의 조상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타국에 가서 살았으며,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자기들이 태어났던 나라의 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20명이 쏟아대는 방언이 자기나라 말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7~8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쩜이뇨”

 

오순절 방언으로 인해 언어의 일시적인 통일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바벨탑 사건의 반전으로 볼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왜 쌓았습니까?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것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이로 인해 이들은 천하 각국으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창 11;8-9).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흩어졌던 열방이 하나님의 한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에서 사람들이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언어로 말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시 120명은 한번도 배우지 못했던 외국어로 말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으니 이 외국어가 모두 동일했다는 것입니다(11절).

 

성령은 마태복음 3장에서 “하나님의 영”,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의 영”, 빌립보서 1장에서 “예수의 영”으로 불리웁니다.

명칭이야 어찌했든, “예수의 영”은 우리 마음 속에 살아 계십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신은 삼손, 사무엘, 사울, 솔로몬, 이사야에게 일정한 기간 동안 선택된 시간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이 도래하면서,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게 부어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영광의 도구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 모두에게 성령이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불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 성령의 불이 계속적으로 타올라야 합니다.

말씀과 전도, 사역이 성령으로 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성령으로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면,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나는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죄를 보게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불이 강렬하게 임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는 영광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역사를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이 오순절의 기적을 허락해 주옵소서.

계속해서 오르는 성령의 불이 임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가 해야 할일을 오직 성령의 힘으로 하게 하옵시고,

우리를 성령의 힘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