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포도나무

주일 설교
요한복음 15 : 1-16, 나는 참 포도나무
 

요한복음 15 : 1-16, 나는 참 포도나무

 

 

포도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아무런 볼품이 없습니다.

마디가 울통불퉁하고 줄기가 꼬여있습니다. 기둥이나 송판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불쏘시개로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는 기가 막힙니다.

하지만 열매 외에는 다른 목적으로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심고 나서 3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데, 가지는 겨울에 말라 죽고 봄에 다시 살아납니다.

포도나무에 가지와 잎이 무성하면 열매를 충실하게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가지를 쳐서 좋은 열매를 얻도록 합니다.

이 포도나무는 유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1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무엇이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ego eimi), 영어로 “I am~ “ 입니다.

구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고, 요한복음에 7번 나옵니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니(6:35)

-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

- 나는 문이니(10:7,9)

- 나는 선한 목자라(10:11,14)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 나는 참 포도나무요(15:1,5)

 

출애굽기 3;13~14에서,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뵙고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뉘시라고 설명해야 되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나는~”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적 선언입니다.

 

포도나무 앞에 “참”이 붙습니다.

왜 그럴까요?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문에 황금의 포도나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이 풍성하게 열매 맺는 일 보다는 이스라엘의 쇠퇴를 상징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포도나무에 ‘들포도’를 맺었다고 했습니다(사 5:4).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쇠하는 포도나무’, ‘이방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렘 2장)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빈”, 쓸모없이 버려진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10: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전부 멸종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망했습니다. 단순히 군사적인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진정한 의미의 포도나무가 나타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 참된 소망을 주고, 인간의 가치와 기쁨을 회복시켜주는,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참’은 완전하고 유일하다는 의미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의 절정은 16절입니다.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택하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여 이자리에 오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실을 맺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인 업적을 남기는 것을 열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오랫동안 쫓겨났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과실은 무엇일까요?

 

포도나무의 과실은 인격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인격의 변화입니다.

과실이 복음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본문에서는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갈 5:22-23절에 9가지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그러면, 이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는 가지는 잘라냅니다.

그대로 두면 병균이 득실거리고, 쓸데없이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이고, 포도나무를 손질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2절.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제해버리시고’와 ‘깨끗케 하시느니라’ 입니다.

 

첫째, “제한다”는 것은, 헬라어 원어 해석으로 보면 잘라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 세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무조건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지를 일으켜 세워서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열매 맺는 것을 전도라고 하고,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도나무에서 자른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둘째,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뭇가지를 깨끗케 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병충해입니다.

병충해가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요즘 병충해는 내성이 생겨서 웬만하면 죽지도 않습니다.

이 병충해는 우리의 죄입니다. 잘못된 습관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도 나날이 새로운 형태로 발전합니다

 

우리가 이런 죄로부터 깨끗해 지는 방법은 단 한가지 입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는 인격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말씀 외에도,징계를 사용하십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징계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다는 관심의 증거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많았는데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면 심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사생아가 아닌가?”

“나는 하나님이 전혀 신경을 안 쓰시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이와같이 말씀과 징계를 통해서, 열매 맺지 않는 가지들을 추려내고, 포도송이를 맺을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남은 자’ 사상입니다.

‘남은 자’ 사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부만 남겨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신약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자들만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실을 원하시면서도 우리에게 ‘과실을 맺으라’고 명령하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5장 어디에도 없습니다.

과실은 자연스럽게 절로 맺는다고 하십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 안에 거하라’ 주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만약 이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명령을 하셨겠습니까?

 

가지는 스스로 과실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나무가 영양분과 수분을 끌어올려 가지에 공급해 줍니다.

 

우리가 과실을 맺으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과실을 많이 맺으라’고 하지 않고, ‘내 안에 거하라’는 명령만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거한다”라는 표현이 11번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 말’과 ‘구하라’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머리나 입술이 아닌 마음에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 욕심대로 달라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과 교제를 하고 주님의 뜻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아뢸 수 있는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 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주의 가르침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5장에 보면, 레갑 족속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갑 족속은 유목민인데,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으로 생각됩니다.

이들 조상 중에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집도 짓지 말고, 유목 생활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후손들이 수백년이 지나서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들 앞에 포도주를 대접에 가득 담아서 갖다 주어도, 아무도 마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실을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셨는데, 유다의 죄악과 비교하여 레갑족속의 신실함을 설명한 것입니다.

말씀에 거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

 

8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첫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내 삶이 변하고, 내 삶에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을 지배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입니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예수 닮은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닮은 사람이 되면 과실을 많이 맺게 됩니다.

내가 주님 닮은 것이 많다면, 포도송이 많은 포도나무를 보며 즐거워하는 농부처럼,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잎만 무성한 포도나무 같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용을 보면 열매가 없습니다.

이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실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니,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합니다.

“주님, 제게 만족하실 만한 열매가 있습니까?”

 

런던에 있는 어느 왕궁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2천 송이가 넘는 포도송이를 맺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조사를 해 봤는데,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 템즈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포도나무 뿌리가 강에까지 뻗어서 강바닥에 있는 영양분을 가지에 공급하니, 가지마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던 것입니다.

노력은 포도나무가 했지만, 열매는 가지에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위대한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인 목요일 밤에 주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고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저녁 무렵에 예루살렘의 포도원 곁을 지나면서 이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분에게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능력이 적게 나타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믿음의 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지로 붙어 있으면,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과 난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과실이 열리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이런 시를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죽음이,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생명이 가득 찬 과일을 내 그릇에 담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할 일을 하고 마지막에 주님이 허락 하신 삶을 내려 놓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심장의 고동이 멈춘 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 때문에 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열심을 다했으니 받아주옵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주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습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붙들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