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정젝한 영 을 새롭게 하소서

주일 설교
시편 51:1-15,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51:1-15,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여러분,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마태복음 1장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 까지 다윗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 “우리야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다”

 

다윗이 평생 하나님께 정직하게 행하고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야의 일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보통 인물들의 자서전이나 영웅전을 읽게 되면 주인공의 삶이 미화되어 있습니다. 추한 점이나 오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추악했던 인간성을 감추지 않고 여지없이 폭로합니다.

다윗에게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 우리의 인생이 그처럼 역겨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경의 궁극적 관심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다윗이 어떻게 했을까요?

사무엘하 11장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그의 군대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있었는데, 어느 날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었을때, 목욕하는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여인은 적과 싸우고 있는 장군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부하를 시켜 그녀를 궁궐로 불러들였고,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윗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소환했습니다. 다윗은 왕궁에 들어온 우리아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데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다윗은 우리아에게 술을 먹여서 어떻게든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우리아는 그날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아는 전쟁터로 가야 했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수단을 사용합니다. 편지를 써서 우리아 편에 요압 장군에게 보냈습니다.

“우리야를 제거해야겠소. 장군은 그를 최전방에 배치하시오.”

요압은 명령에 따라 우리아를 최전방에 배치했고, 결국 우리아는 죽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후처로 삼았습니다.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땠습니까?

사무엘하 11장 27절,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다윗이 꿈 같은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와서 말합니다(삼하 12장)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는데 한 사람은 부유했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나그네에게 대접해야 했는데 자기의 양과 소는 한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나그네에게 대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나서 다윗은 의분을 참지 못해 소리쳤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은 그 치사한 놈을 당장 엄벌에 처하라!”

그러자 나단이 말합니다. “폐하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나단이 이 비유를 든 것은 다윗이 우리아에게 한 짓이 그 부자의 행위와 다를 바 없음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간음사건(B.C 991년)에 대하여,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듣고 자기 죄를 참회하며 지은 시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삶이 불확실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사후 세계가 두렵구나. 그곳의 개울을 찾았다가 돌아온 여행객이 하나도 없다니.”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겁쟁이가 됩니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아는 일입니다.

시편 51편이, 그 비결을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심자들의 간증을 읽으면 회개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영적 거인들의 이야기에서도 회심을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최초로 말한 메시지는 “회개하라”입니다(마 3:1)

주님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하면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어떤 이들이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울부짖자 “회개하십시오”(행 2:38)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성경학자가 말했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골리앗을 무너뜨린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아 사건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즉시 회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그러면 다윗이 어떻게 회개를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다윗은 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다윗은 처음에 죄를 감추려 했습니다. 한번 지은 죄를 감추려 하면 계속 죄를 낳게 됩니다. 다윗도 결국 충성스런 우리아 장군을 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 죄를 지적했을 때, 왕이라는 신분과 체면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합니다.

 

3절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죄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경계선을 넘어선다’라는 뜻입니다.

죄의식이 다윗을 계속 쫓아 다닙니다.

이것은 억눌린 양심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던 비통함이, 나단의 지적에 의해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4절 전단,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다윗은 우리야에게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범한 죄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그 죄로 인하여 피해를 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입니다.

다윗은 범죄할 때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4절 후단,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이제 다윗은 ‘주님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시든 나는 이의가 없습니다. 주의 판단은 옳습니다.’ 라고 하면서,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죄는 인간의 존재의 시작에서부터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다윗은 죄를 범했으니 죄인이 되었지만, 사실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의 성품이, 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놀란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제가 범죄했습니다.”

이것이 참회의 시작입니다.

 

둘째, 다윗은 죄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1절에 “도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채의 청산을 말합니다. 다윗은 죄를 반드시 갚아야 하는 도덕적인 부채로 생각한 것입니다.

 

2절, “씻기시며”, “제하소서”, 오염되었으니 세탁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떻게 감히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있었을 까요?

이런 엄청난 죄인이 무엇을 근거로 염치없이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까요?

 

그것은 두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대속의 은총입니다.

 

1절에, ‘인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치않는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변치않는 사랑으로 죄인을 궁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가지셨으므로, 이에 근거해서 죄에 대해 용서를 탄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7절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속의 은총을 근거로 용서를 구합니다.

여기에서 ‘우슬초’라는 것은 시리아에 있는 스펀지와 비슷한 식물입니다. 속죄의 제물을 잡아 피를 뿌리고자 할 때 - 제단이나 지성소 안의 언약궤 위에 뿌릴 때 - 항상 이 우슬초를 사용합니다. 피를 뿌리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지만 우슬초를 대면 깨끗이 씻어집니다.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이 죄를 짓고 나단 선지자가 방문할 때까지는 1년이 흘렀습니다. 간음으로 태어난 갓난아이가 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이때 다윗의 양심은 지옥에 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때 다윗이 죽었더라면 그는 지옥에 갈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찾아가서 죄를 토하게 하시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회개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할 수 있지 혼자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음이 더 강퍅해지고 더 완악해져서 자기 죄를 절대로 시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고 회개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닭이 울 때에 주님을 부인하는 악행을 했지만, 이를 회개하면서 통곡했습니다.

중품병자가 회개하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마리아가 회개하고 나서 옥합을 깨고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었습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회개를 하는 자는, 주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자복하도록 이끌어 내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하나님께 회개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가 가지는 이 비통한 성격을 하나님께 눈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비통하면 비통할수록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있었던 은혜와 사랑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죄가 마음을 딱딱하게 굳게 만든 후에는 울어야 할 때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애통해야 할 때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을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함으로써 느끼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실 때까지 빌었습니다.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자 그럼, 이런 다윗의 회개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참회가 완성되는 순간에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참회한다’라는 이 단어의 뉘앙스는 어떤 분위기를 던져줍니까?

슬픔, 고통이 다가옵니다. 육체적으로 괴롭고 심리적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지금 다윗은 그런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32편 3절,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다윗은 지은 죄로 인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마침내 견딜 수 없어 그 죄를 토해 내기 시작합니다. 

 

시편 32편 5절,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은 죄를 토해내는 순간에 주께서 용서하신다는 선언을 듣습니다.

용서의 확신이 속에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 순간 잃어버렸던 기쁨과 즐거움이 다시 솟아납니다. 이른바 죄사함의 기쁨입니다.

 

본문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이제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이 구원의 즐거움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구원받은 것이,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때, 이것이 새로운 삶을 살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여러분, 죄책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자원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우리 지금, 그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회복하였습니다.

 

15절,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다윗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였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서 새로운 삶을 주었고, 왕의 직분을 다시 주셨습니다.

죄를 범한 후에 다윗은 자기 죄를 계속해서 참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다윗은 죄악 속에서 거짓된 삶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회개함으로써 범죄에서 벗어나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보호하심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다윗처럼 탄식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중국의 어떤 왕이 자기 나라의 중요한 재산은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궁궐에 오는 사람들이 나이팅게일의 새 소리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고 갔습니다. 임금은 나이팅게일을 가져오라고 했고, 이 새는 아주 작았습니다. 임금은 다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황금새를 진상했습니다. 기계로 만든 것이고 겉에 황금으로 도금했습니다. 임금은 이 기계 소리에 관심이 더 있었고 나이팅게일은 멀어져 갔습니다.

어느 날 기계가 고장이 나자 임금은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왕은 침상에서 나이팅게일을 그리워하면서 죽어갑니다. 이때 나이팅게일이 창문에서 노래부르기 시작했고 임금은 다시 소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황금에 어두워지는 병들어가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범죄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병들어갑니다.

그러나 다시, 우리의 삶이 회복되는 순간에, 우리 안에 찬양의 샘이 다시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주님이 우리의 찬양을 받아주십니다.

그때, 내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으로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참회의 은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인생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갈보리 언덕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 때, 십자가를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마음이 답답하고, 감옥처럼 어두운 분이 계십니까?

 

죄지은 사람만 회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죄가 세상에 계속되는 한 회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먼지가 쌓여가듯이, 내가 나를 성찰을 게을리 할 때 내 마음에도 먼지가 쌓여갑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둡고 찬송을 잃고, 기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회개는 내 영혼을 빛내고,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게 할 것입니다. 회개, 참회만이 우리를 회복시킬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내 모든 죄과에서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다윗이 그러했듯이 이러한 탄식이 즉시 터져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그러면, 놀라운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기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을 통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슬초로 정결케 해 주옵소서.

우리를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내게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시고, 찬양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기도를 받아 주옵시고, 내 삶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