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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8~17, 믿음의 결단
나무를 보면 여러 가지 오묘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오래된 높이가 수십 m 나 자란 은행나무를 보면,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해서 저렇게 높이 자랄 수 있는가?
나무는 땅속의 물과 영양분을 먹어야 살수 있습니다. 과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삼투압에 의해 나무가 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무는 수십 m 높이까지 물을 끌어 올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바람 때문입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기 때문에 나무는 뿌리를 깊이 대지에 박게 되고, 바람이 나무의 성장점을 자극하기 때문에 나무는 줄기를 하늘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주기 때문에, 나무가 뿌리에 있는 물을 하늘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람은 나무에게는 힘든 시련입니다. 하지만, 바람은 나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고난입니다.
다니엘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남왕국 유대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멸망당하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시기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으로 믿고 있던 유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불에 탔고, 제사장은 직업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을 하면 이기는 전사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무릎을 끓었습니다.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에 자부심을 제공했던 모든 것이 혼란에 빠졌던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다니엘이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시기에 기록된 에스겔서에 보면, 다니엘의 이름이 노아, 욥과 함께 의인으로 소개됩니다. 노아는 창세기, 욥은 부족시대의 인물인데, 다니엘이 이들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삶과 사역은 바벨론에 끌려온 유다 포로들에게 커다란 격려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련을 극복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다니엘이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었다고 하는 것일까요?
고난의 길을 택함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다니엘은 히스기야 왕의 후손이었다고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선별된 이스라엘의 소년들에게 의식주를 공급하고, 3년 동안 바벨론의 문화와 언어에 대하여 훈련을 받도록 했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란 바벨론의 이름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재판관’이라고 하는 것이고, 벨드사살은 “바벨론의 신 벨이 생명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을 생각나게 합니다. 단순히 일본이름으로 바꾸는 창씨 개명을 거절하다가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고문을 당했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바벨론 이름을 받았습니다. 신을 바꾸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바벨론 교육, 문화와 풍습도 수용했습니다.
다니엘이 부득이하게 개명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벨드사살이라고 부르면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바벨론의 이름을 받은 것에 대해서 저항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이름을 이방신의 이름이 들어 있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니, 종교적 타협의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당해야 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자 그럼, 다니엘은 왜 이런 개명을 받아들인 것일까요?
다니엘은 개명이 비록 참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생명을 걸고 투쟁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해악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8장을 보면, 1절과 15절에, “나 다니엘”입니다. 9장 2절에도 “나 다니엘” 입니다.
끊임없이 다니엘은 자기 자신의 이름을 다니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다니엘이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자기에게 가해진 압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견한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생명을 걸고 투쟁해야 했던 사안은 별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생명을 걸고 투쟁해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뜻을 정하여”는 결심이고 도전입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구하는 유일한 목적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 함이었습니다. 다른 동기나 목적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문화와 풍습을 수용하였고, 개명까지도 수용하였지만,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먹는 음식에는 물러서지를 않다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가지 측면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로, 왕이 주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왕에게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뉘앙스를 지녔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느부갓네살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만, 모든 음식을 거부한 것은 아니고 채소를 받았으니, 왕이 내린 음식을 선별해서 먹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을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런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내린 음식을 거절하고 나서, 얼굴빛이 좋고 건강해 보이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국에 포로 신분으로서 적국의 왕이 내린 음식을 선별해서 먹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왕을 모욕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훈련을 받고 있는 포로 된 다른 소년들의 압력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남들은 다 먹고 있지 않는가? ‘
‘바벨론이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들이 아닌가?’
포로생활은 도덕적, 예식적 기준을 낮추도록 압력을 가해 왔을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바벨론까지 끌려오게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께 신실해야 하는가? 하는 자포자기의 의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음식만은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8절에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더럽혀지는 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더렵혀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로는 이러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신앙의 결단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결단을 했으면 실행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이 결단을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포로인데 어떻게 이를 진행할 수 있습니까?
겸허한 제안
8절에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겸허한 사람이었습니다. 환관장에게 동조를 구했습니다
구한말 일본의 통치가 시작될 때 단발령 등이 내리자, 최익현은 정부 요직을 사직하고 항일운동을 하다가 쓰시마 섬에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감옥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 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니엘이 선택한 방법은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12절 “청하오니”
원문에 씌어진 말로 보면, 이 말은 최고의 존경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겸손하고 온유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환관장은 일단 다니엘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왕이 정해 두었는데 다니엘이 다른 소년들보다 초췌하면 자신의 목이 위태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 거절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환관장의 부하에게 창조적인 제안을 시도합니다(1:10-11). 다니엘은 감독에게 10일 동안 채소만 먹게 허락해 달라고 하고, 만약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왕이 하사하는 음식을 먹겠다고 했습니다(1:12).
판단과 결정을 감독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감독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다니엘의 제안은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입니다.
시험의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10일 후에 감독이 보니 다니엘은 왕의 음식을 먹던 자들보다 더 건강한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감독은 다니엘이 원하는 대로 채식을 허락합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먹게 되었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된 것입니다.
도우시는 손길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정복당했을 때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 벨 보다 힘이 약하단 말인가?
1: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감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패하고 성전 기물이 바벨론으로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8장에, 히스기야가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15년의 수한을 연장시켜준 사건이 나옵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낳자 바벨론의 왕이 예물을 보내어 문병을 합니다. 히스기야는 문병 온 사자를 보자 너무 좋아서 무기고와 보물고를 다 열어 보여주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모든 소유를 바벨론으로 옮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사 39:6)
그리고, 100년이 지난 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예루살렘성전이파괴되고, 그 예언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다니엘은 3년 동안 훈련을 마치고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섰습니다. 즉시 왕의 환심을 사게 되었습니다. 왕이 그의 능력을 인정한 것입니다.
자 그럼, 다니엘이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9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궁휼을 얻게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무엇인가요?
1: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다니엘과 친구들의 지혜, 지식, 총명은 바벨론에서 학문하는 박수(종교적인 학문에 숙달된 제사장들)와 술객(점술사)보다 십 배나 더 나았다고 했습니다(1;20).
바벨론 사람들은 점술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들은 별자리, 꿈을 통해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소유하게 된 지혜는 이들과 전적으로 질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품은 자였습니다.
다니엘의 삶은 여러 면에서 요셉의 삶과 비슷한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요셉은 17세에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갔고, 다니엘은 15세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 해석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고 풍년과 가뭄을 극복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고, 느부갓네살 왕의 후임자인 벨사살왕이 잔치할 때 손가락이 쓰는 글씨도 해석하고 또한 치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사람 다리오가 집권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다니엘이 총리가 됩니다.
다니엘은 정권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나라가 바뀌어도 총리입니다.
이런 능력은 다니엘의 꿈과 그 꿈의 해석 능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꿈들을 해몽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예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에서 결단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공동체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라는 문제로 인해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억압당하는 자리에서도 높이신 것을 알고,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비호의적인 환경과 혼합주의적 상황에서 살아갈 때, 이를 수용해야 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선택이 주어질 것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영적 타락이 극심할 때는 다니엘 같이 분명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 문화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이 늘 배타적으로 처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개명을 받아들이고, 문화도 공부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생활하고 사역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음식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다니엘이 타협하는 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산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이 택한 방식은 사소하고 율법적이며 무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하나님 존전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의 결단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신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무리
죽음의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던 빅터 프랭클이 말했습니다.
“절망,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마주할 때, 그 순간 인간의 잠재력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그 잠재력은 인간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쇠를 두둘겨 모양을 만들려고 할 때는 그 쇠가 벌것게 달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이 깊은 영성과 강한 영혼을 탄생시킵니다.
천재화가 고흐가 말했습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서 나온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작품은 절실한 의지와 집념에 의해 나옵니다.
다니엘이 싸운 싸움처럼 현대 성도의 싸움은 어떻게 보면 전략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같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혈관 속에 더러운 것이 들어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더러운 바벨론의 진미입니다.
그러면, 유혹의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전략은 무엇일까요?
시편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이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가장 무력해 보이는 이 전략은 가장 강력한 전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략만이 세상의 악한 전략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자기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에 고치기가 힘들게 됩니다.
결단하고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해야 되는 것은 알지만, 하려고 해도 우리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결심을 한 자들을 도와주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의 틀 안에 두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일하셨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서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여러분, 세상 속에서 선택이 필요할 때, 세상과 타협하여 신앙적으로 더렵혀진다고 생각이 되면, 다니엘 같은 믿음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다니엘 같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니엘의 믿음과 결단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속에서 죄와 타협하지 않도록 하옵시고, 다니엘 같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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