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이르렀 사오니

주일 설교
요한복음 17:1, 때가 이르렀사오니
 

요한복음 17:1, 때가 이르렀사오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   들어가면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가난한 농부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도움을 구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일손을 멈추고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에는 한 소년이 수렁 오물 속에 몸이 허리까지 빠져 있었습니다. 농부는 그 소년을 구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마차가 농부의 집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신사가 마차에서 내리더니 어제 농부가 구해준 소년의 아버지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아들을 구해주신 것에 대해 사례를 하고 싶습니다” 농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었다고 하면서 사례 받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때 마침 농부의 아들이 집 밖으로 나왔으며, 그 신사가 그 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신사가 물었습니다 “당신 아들입니까?” 농부가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데리고 가서 훌륭한 교육을 받게 해 주겠소. 만일 이 아이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해줄 만한 청년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농부의 아들은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런던에 있는 성마리아 병원 의대를 졸업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페니실린을 발명해 낸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신사의 아들이 심한 폐렴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난치성 폐렴이었습니다. 의사들이 페니실린을 사용해서 신사의 아들의 생명을 건져냈습니다. 그 신사의 이름은 랜돌프 처칠이었으며, 농부에 의해 목숨을 구출 받았던 소년은 다름 아닌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건에는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으며, 결과가 있습니다. 결과가 나타난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진행된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 그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2.   때에 대한 진행

 

요한복음 17장은 13장부터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별 강해의 결론부에 해당됩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물로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기도이고, 제자들과 모든 세대의 성도를 위한 중보 기도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로서 대표적인 것이 2가지 있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와 요한복음 17장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보여줍니다. 이 기도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이 겟세마네의 기도가 아닌17장의 기도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를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드리는 기도를 기록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은 어땠을까요?

-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는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라 했습니다. 고뇌와 갈등을 보여 주셨습니다.

-         요한복음 17장에서는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라 했습니다. 하늘을 향한 소망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 이제 본문의 “때가 이르렀사오니” 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불행한 패배감에 빠져들고 있다면, 그 원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진리로 돌아가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셔서, 바로 그 때에 맞추기 위해, 앞서 그 모든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      “이 때”는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라고 주신 일을 완수하는 시점입니다. 

-      “이 때”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완성 되는 순간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 때”에 대해서 직접 말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모친이 포도주가 떨어진 일을 예수님께 말하면서 무슨 조치를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모친을 돌아보시면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세상에 나타내시라고 간청할 때도, 예수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요 7:6) 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원수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예수님은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요 7:30)’ 라고 했습니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할때, 예수님은 안드레와 빌립에게,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6장에서는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벌써 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때의 의미

 

이렇게 계속 설명되고 있는 “이 때”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

 

첫째로, “때”는 확실히 미리 정해진 시간을 말합니다.

 

“때” 는 헬라어로 호라(hora) 입니다. 요한복음에서 26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빈번하게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것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나 자신에 관한 특별한 때가 있다. 너희들은 내가 나 자신을 만민에게 선언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할 수 없다” 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고, 이러한 기다림의 주제는 성경 전체에서 계속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과정이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일이 어떤 특정한 시점에 일어나도록 지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매이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영역 속에서 일이 일어나도록 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분초까지 정해 두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6:3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정해진 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수가 일어나기 120년 전에 노아를 부르셔서 그 홍수를 대비해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4 에서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행하신다는 사상은 우리를 이 세상 삶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여러분이 오늘의 삶을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살펴본다면,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때”의 교훈에 비추어서 살펴보기 시작하는 순간, 대번에 주님께서 통치하고 계시고,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겹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읽어 보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제멋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열국들의 쇠망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됨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점에서는 세상을 구속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임하시고, 그러면 온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다시 부합하게 됩니다.

 

-      비록 현대 교회가 역할을 못해서 쇠퇴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이 때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확실해 졌습니다.  

-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 모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      “이 때”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계획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 때” 는, 역사적인 중추점 이었습니다.

 

“이 때”에 발생한 사건은 인류역사상 가장 의미 심장한 사건입니다. 절정의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든 것이 바로 이 시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이 특별한 시점에서 하고자 했던 일이 실패했다면,

-      다른 모든 것은 아무 쓸모가 없었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행하려고 애를 쓴다 하더라도, 도저히 이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실패했다면,

- 예수님은 모세 율법보다 더 지키기 불가능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끝까지 견뎌내지 못하셨다면,

-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일이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4.   사단의 준비

 

복음서를 죽 읽어 나가면서, 때를 언급하는 구절에 시선을 집중시켜 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초지일관 이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이때를 준비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 때를 준비하고 있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또 이 때를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

 

예수님을 반대하는 세력도, 이 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습니다. 모종의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는 “이제는 너희 때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반대 세력을 지칭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사들 중에서 가장 큰 천사 중 하나가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이름이 마귀이고 사단입니다. 이 사단은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 아들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사단은 헤롯 왕을 시켜서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악의와 증오심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한때 예수님에게 노골적으로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 4;34)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단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과 싸워야 한다는 운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단은 광야에서도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으로 하셨을까요 ?

 

오직 한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만일 어두움의 권세가 아니었다면, 이 때는 결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단이 죄와 악을 통해서 만들어 낸 것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때에 있어야 할 역사를 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때’를 통해서 죄와 악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사랑과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 악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무서운 것입니다.

 

사단은 오직 ‘이 때’에 만 그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 상황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를 ‘ 사단의 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때’는, 성자이신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5.   민망하니

 

자, 요한복음 12:27 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때가 임박하였음을 알고 계셨던 것이고, 언제나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이제 누군가는 물어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때에 대해 알고 계셨으며, 이 때를 위해 오셨으며,

부활하여 하늘로 돌아가실 것을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죽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에는 반드시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어째서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예수님이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움츠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영혼을 고민에 빠뜨린 것은, 바로 그때에 일어날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셨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자기의 몸과 영혼에 쏟아질 것을 아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움추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야만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성부와 성자간에 계속 되어 왔던 그 사랑과 신뢰와 하나됨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괴로웠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얼굴 속에서, 죄에 대한 거룩한 진노가 나타나, 자기를 향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는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들의 운명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위대한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의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은 것을 믿지 않는다면

-      그 길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직접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복음의 본질입니다.

 

이제 우리는

-      예수 그리스도가 그 때에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믿든지

-      아니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저주받고 심판 받아야 하는 세상에 속해 있음을 알든지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책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어린 양의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책에 속해 있으면 이미 구원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심판은 십자가에서 선언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누구든지 세상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미 심판을 명령 받았습니다. 사단이 지금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지만, 사단은 이미 패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단은 언제 패배했을까요 ?

 

사단은 부활의 진리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모든 악이 멸하게 되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사단은 십자가가 일생 일대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었으므로 승리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이 오히려 예수님의 최종적 승리로 판명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사단은 패배한 것입니다.

 

사단은 이미 패배하였으므로 아무런 권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결국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5. 마무리

 

오 하나님이여. 우리로 하여금 죄가 진실로 무엇인가를 보게 하옵소서 !

 

우리는 죄가 진실로 무엇인가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진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십자가의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가 죄에 대해서 어떻게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나를 위해서 이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신 예수님은

-      내 생활, 내 목숨, 내 모든 것을 주장하기에 합당하시고

-      나의 주님이시며, 또한 나의 상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실패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      ‘이 때’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      죄의 의미를 모르고 있으며

-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를 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      또한,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영국 등의 북유럽을 지배했던 민족이 있었으니 켈트족입니다. 이 켈트 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걱정을 합니다. \"이렇게 함께 가자고 하니 따라가기는 합니다만 나같이 죄 많은 영혼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이 영혼은 ‘죄가 많은데, 죄가 많은데’ 하면서 어느덧 천국 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천국 문으로 들어가기를 그토록 송구스러워하던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 허물도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 영혼이 묻습니다. \"내가 죄 많은 사람인데 어이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

 

천사가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가리워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혼은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입니다.

-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으며.

-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이 때”를 향해 가셨던 것이며

-      마침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흘린 보혈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것입니다

-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의 왕인 사단이 굴복 당한 것입니다.  

 

이제, 이 ‘놀라운, 의미심장한, 절정의 때’ 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 때에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가공할 만한 고뇌와 고난을 참아내심으로 인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 입니다.

“다 이루었다 ! ”

 

얼마나 거룩하신 말씀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보좌를 버려두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인류의 죄악을 씻으려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받으셨습니다.

그 고난과 고통 속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죄를 회개하오니 거룩한 보혈로써 씻어 주시옵소서.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까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