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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니라 하시니라”
쿼바디스를 보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믿는 자들을 밀고하는 늙은 정탐군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밀고로 인해 로마병정들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늙은 정탐군은 원형경기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자에 찢기고 화형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날 그는 순교자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대담하게 네로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제 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은 그가 “오 예수님, 예수님”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회개한 강도의 이야기는 복음서의 서술 중에서 가장 놀랍고 시사적이며, 교훈적인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갈보리의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두 행악자 사이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들은 두 행악자를 나란히 세워둘 수도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공범으로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 병사들은 중 예수님을 도 행악자 사이에 세워둠으로써 놀라운 상황을 연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왜 그토록 놀랍다는 말인가?
예수님이 두 행악자 사이에 달리심으로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사야53:12, 에 예수님이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다고”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가도 복음서에서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못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그래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다”라는 성경의 말씀을 이루었다(막 15:27-28)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못박힌 “해골”(골고다)이라는 곳에는 사악한 인간의 손도 있었지만강력한 하나님의 손도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한 셈이 되었습니다(행 2:23). 하나님은 “내가 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겠다(렘 1:12)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두사람이 모두 일치하여 주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강도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외경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디스마와 게다스라고 불리워졌으며, 이 두 강도가 형제였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두 강도 모두 주님을 모욕했습니다. 마태복음 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그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기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주님을 비난하는 한편, 자신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는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강도가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극적인 장면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누가복음 23:35~43,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두 행악자는 예수님의 좌우편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붙인 패를 볼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그 패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러라”고 씌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가지 언어로 씌어 있었으니 두 행악자도 읽었을 것입니다. 두 행악자가 서로 말을 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분명합니다.
두 행악자는 예수님이 비록 십자가에 달리긴 했지만, 죄가 없는 분임을 알 있었을 것입니다. 그 패를 통해서 그들은 복음을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 또는 죄인들을 위한 구세주였습니다
두 행악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박으면서 했던 말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눅 23:37)”고 빈정거렸습니다. 군중들과 민족의 종교 지도자들도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 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눅 23:35)라면 조롱하였습니다. 이 말은 두 행악자에게 복음의 소식이었으며, 그들은 이 말을 믿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구원했다면, 두 행악자들도 구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빌라도는 단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그런 패를 달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병사들과 군중들은 주 예수를 조롱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조롱을 사용하셔서 행악자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가 얼마나 놀라운가? 두 행악자들은 모두 예수님께 다가갈수 있는 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42,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이것은 길고 장황한 기도는 아니지만, 오늘날까지 성경에서 기록된 가장 놀랄만한 기도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죽어가는 이 강도는 짧은 기도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강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그 동료가 법을 어겼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범죄자는 극히 드뭅니다.
어느 날 프레드릭 대왕이 감옥을 방문했을때, 그곳의 죄수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석방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이 겸손하게 자신은 죄인이며, 감옥에 있는 거시 마땅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대왕은 이 사람을 석방시키라고 명령하면서, 결백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에 이런 사람을 함께 있게 하면,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죄인들은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주님께 비난받고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사후에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과 그 생명을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그러고도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라고 자신의 동료를 끄짖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라(눅 23:40-41)고 덧붙였습니다.
그 강도는 자신이 죽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아무리 핑계를 대도 소용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죄인이며 구세주가 없이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예수님을 의지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은 사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가? 자신이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믿는가? 거룩하고 정의로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언젠가는 여러분이 그분에게 응답해야 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믿는가? 죽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사후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또 다른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심판입니다(히 9:27).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는가? 죽어가는 강도는 에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준비를 다 끝 마칠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강도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은 버림받고 약해 보이는 그리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무력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버림받은 채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강도는 그를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활하여 영화롭게 된 구세주, 우주의 보좌에 앉아있는 구세주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모습의 구세주를 믿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 도둑은 지식이 많지도 않고, 또한 그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예수님을 보았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도둑은 예수님을 믿었고, 그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위대한 신앙들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43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진실로” 라는 말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 말뜻은 아멘입니다. 그것은 확언이며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는 그 죄인에게 청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본문을 헬라어 원문으로 그대로 번역해 봅시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멘! 내가 네게 말하노라!”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그렇게 될지어다!”
아멘은 확약이며, 확증이고, 보증입니다.
진실로를 두번 반복 사용하면서 두 배의 확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뉘우치는 죄인을 즉시 받으셨습니다. 이는 회개하는 자에게는 금방 그 응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회개가 질질 끄는 과정이라면 십자가의 죄인에게나 우리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뉘우치고 구하는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신속하고 또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로 어두워진 마음을 치료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지하라. 이 견딜수 없는 고통의 몇시간 동안 바로 온 세대의 인간들의 악함으로 인한 영원한 고통을 인내할 것이다. 낮이 가기 전에 너에게 천국을 가져다 주겠노라. 나는 육체적 고통을 피하려는 자의 기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인정하는 너의 기도에 편을 들었다. 그가 아닌 바로 너에게 아멘!”
여기서 희망은 살아납니다. 천국은 기뻐합니다. 영웅들이 천국에서 무릎을 끓었습니다. 회개한 범죄자는 새 생명의 큰 파도가 그의 전 존재를 사로잡는 것을 느낍니다. 최종 승리가 획득되어졌습니다. 사단은 죽은 자체의 바로 그 영역안에서 끝까지 싸우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거부한 그 예수님께 분을 내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안 남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아멘은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된 것입니다. 바깥에서 그를 찾으며 그에게 대항하며, 그를 소멸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영혼을 멸망케 하는 마지막 권세를 속박에서 풀어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오늘”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세례받고 난 후가 아니라 바로 오늘입니다. 여러분이 참회 절차나 어떤 다른 신앙의 절차를 거치고 난 다음이 아니라 바로 오늘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께로 가면 그는 그 자리에게 용서를 받고 깨끗해 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집에 이르렀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털어놓고 주님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유예기간이 없습니다. 죄인이 구주를 받아들일 때, 즉시 거기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어느 설교자가 설교하는데, 한 남자가 외쳤습니다.
죽음 직전에 구원받은 십자가의 강도는 어떻습니까?
그 설교자는 재빨리 물었습니다. “어느 강도 말입니까?”
이는 구원받지 못한 강도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강도는 마지막 기회에 구원을 받은 것이아니라 첫 기회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강도와 오늘날의 죄인들 사이에 다른 점이 한가지 있다면, 이 강도는 기회를 잡았고, 그들은 아직 기회를 잡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지만, 내일은 심판주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강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직후에 바로 어둠이 밀려와서 십자가와온 땅을 뒤덮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5~34)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 세번 나옵니다. 이 귀한 말씀이 강도에게 임한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 잠시동안도 아니고 내가 영원히 존재하는 동안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원히 !
크리스찬이 천국에 마음을 두는 것이 지나친 일일까? 아닙니다. 앞으로 올 생에 있어 크리스찬이 영원한 집을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목표요, 궁극적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게 그리스도께서 하신 두번째 말씀에 함축적인 큰 진리는 뉘우치는 강도에게 부여된 확신과 희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모든 이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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