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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미국에서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신중하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먼저 좋은 소식을 말합니다. 기다리던 성전 건축 자금이 준비되었습니다.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그 자금이 아직도 여러분의 주머니에 있다는 것입니다.
웃자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씁쓸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습니다..
다윗이 40년 통치 하고, 이어서 솔로몬이 40년 통치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습니다.
이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스바(에디오피아)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 옵니다(왕상 10:1).
솔로몬이 “여왕의 요구대로 다 해 주었다”(왕상 10:13)는 표현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여왕이 아들을 원했고, 솔로몬의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들이 나중에 에디오피아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디오피아에서는 아비시니아 왕조가 솔로몬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스바여왕이 1500km를 여행했다면, 그 깊은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스바 여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노력해야 하는가의 모델로 언급하셨습니다(마 12:42).
이렇게 지혜롭던 솔로몬이 몰락하게 됩니다.
왕상 11장부터 솔로몬의 몰락이 가속화 됩니다.
우상숭배, 분열, 부패 등 비관적인 것뿐입니다.
솔로몬은 이집트, 모암, 암몬, 에돔, 시돈 등에서 부인을 맞이합니다(11;1).
부인 700명, 첩 300명(11:3). 하지만 의자왕이 한 수 위입니다. 3천 궁녀!
솔로몬이 젊었을 때는 지혜로 잘 컨트롤하였지만, 나이가 드니 영이 흐려지고 판단력은 꽝이 됩니다.
우상숭배가 성행합니다.
시돈 사람은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 모압 사람은 그모스, 암몬 사람은 밀곰과 몰렉 등을 섬깁니다.
솔로몬이 노년에 죄를 짓게 되는데, 그의 타락의 동기는 나이 탓이 아니라“그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났기 때문” 입니다(왕상 11:9).
나이를 먹으면 대개 영이 흐려지기는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노년에도 완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11:4,6)
다윗은 밧세바 사건으로 매일 아침 회개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11:9).
하나님은 나라를 둘로 나누어, 신하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울에게 진노하시고, 나라를 다윗에게 주셨습니다(삼상 13:14, 15:28)
솔로몬은 제2의 사울이 된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셔서 솔로몬이 살아있는 한 이런 일이 없게 하고 아들 대에서 하겠다고 하셨습니다(11:12).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백성들이 부담을 덜어달라고 청원했고, 경륜 있는 노인들은 이를 받아들이라고 했으나 젊은 야망가들은 르호보암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솔로몬 보다 더 심한 멍에를 씌울 것이다”
르호보암 반대파들에게 명분이 생겼습니다.
여로보암이 10개 지파를 모아 북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다윗의 후손을 지지합니다(12:23).
여로보암에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남쪽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 북쪽 단과 남쪽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세웁니다.
금송아지는 다산을 상징하는 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알이 다산과 관련있고, 비와 연관이 됩니다.
금송아지는 출애굽의 아론의 죄를 반복한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210년 만에 앗수르에 멸망합니다.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망합니다.
남왕국도 북왕국이 망한지 130년 만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망합니다.
북왕국은 BC 927년 ~ BC 722년까지 왕이 20명입니다.
전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더라”
5대왕 시므리는 7일간 왕을 했는데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더라” 무슨 뜻인가요? 지옥에 갔다는 것입니다.
남왕국은 BC 927년 ~ BC 586년까지 왕이 20명입니다.
두명만 칭찬받습니다. 13대 히스기야, 16대 요시야 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는 기적이 많았습니다.
성경에서 기적이 많았던 시대는 3번입니다.
모세시대, 엘리야/엘리사 시대, 예수님 시대입니다.
공통점은 하나님의 백성이 변화나 위기를 맞이한 시기입니다.
불안하고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발자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모래밭에 새겨진 발자국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생 중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는 발자국이 한 쌍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어려울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고 내 발자국이란다. 그때 너는 걸을 수도 없어서 내가 너를 업고 다녔단다”
힘들때는 기적을 바랄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서 바빌론 까지 끌려오게 되었는가 라는 이슈와 씨름했습니다.
결론은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바빌론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는 400년을 기록한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가 40년 의 이야기이니 1/10 분량으로 기록하면 되는데, 1/3의 분량을 기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므리 왕조의 바알 숭배와 선지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스타가 3명입니다.
아합왕, 그의 아내 이세벨, 그리고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열왕기상 17:1 ~ 열왕기하 1:18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엘리야는 누구인가 ?
구약성경 마지막에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엘리야를 대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기다림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4-5)
신약에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주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 엘리야의 등장 !
이스라엘에서 가장 어두운 왕조는 넷째 왕조를 개척한 오므리 왕의 아들 아합 시대입니다.
16:29절 부터 아합 시대가 소개됩니다. 22년간(BC 874-853) 통치합니다.
아합은 시돈왕 옛바알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합니다.
이세벨은 “바알은 살아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시돈은 지중해 연안 작은 무역 국가입니다.
17:1, “길르앗 출신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엘리야는 갑자기 등장합니다. 나타나서 심판을 선포하고 떠납니다.
다른 설명은 없고 “길르앗 출신” 만 나옵니다.
지형적으로 갓 지파나 므낫세 지파의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기서 수년은 삼년 이라고 뒤에 나옵니다(왕상 18:1).
우로는 비와 이슬을 가리킵니다. 극심한 가뭄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고향에서 설교하실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큰 흉년이 들었다”(눅 4:25).
왜 6개월의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가뭄이 들고 6개월이 지나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간 것입니다.
18: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때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어느 장님 성악가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앞에 장애물이 있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100m 앞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인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목적지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먼 5년, 10년, 20년 후를 말씀하시지 않지만, 내 생애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17:4,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왜 하필 까마귀일까요? 레위기에는 까마귀를 부정한 새로 취급합니다.
까마귀를 사용하면 음식조달이 쉽지 않겠습니까?
바로의 공주를 모세의 양육자로 선택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고정관념을 벗어납시다.
3. 사르밧 성의 사역
17:9,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면 한 과부가 너를 공궤케 할 것이라”
시돈의 사르밧은 이스라엘의 땅이 아닙니다.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과부에게 가서 피하라고 합니다.
이왕이면 풍족하게 피해 있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곳에 가니, 한 여인이 어린 아들과 같이 마지막 떡 한조각을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자신을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면 나중에 너희들이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인이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판사판!!
여인은 엘리야가 시키는대로 하고, 떡은 계속 공급이 됩니다.
4. 갈멜산 영적 대결
엘리야가 아합에게 기근을 선포한지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합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18:1절,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소개됩니다.
오바냐가 선지자 100명을 숨겼다고 했습니다(18:4).
오바냐가 기근에서 100명을 먹여 살릴 정도면 재력가입니다.
아합이 그동안 엘리야를 찾기 위해 모든 나라를 뒤졌다고 합니다.
이윽고 아합이 엘리야 있는 곳으로 찾아옵니다.
이때 엘리야가 아합에게 선지자 대결을 신청합니다.
18:19절,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아세라는 생산을 담당하는 여신입니다(일명 아스다롯).
갈멜산은 해발 546m 고지대입니다. 지중해를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으나 이세벨이 파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판가름내야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아합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갈멜산에 집합시켰습니다(18:20).
엘리야가 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양다리리 걸치지 마라. 한쪽으로 가라.”(18:21).
백성들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입니다.
18:24, 엘리야가 제안합니다. 각자 소 한 마리를 제물 삼아 각을 떠서 자기의 신에게 바치되 불을 지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알이든 여호와든 불로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 신이라는 것을 입증하자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백성들이 그렇게 하자고 동의합니다.
18:25,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에게 먼저 시작하라고 합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소 한 마리를 제단 위에 놓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은 응답하소서” 기도하고 부르짖습니다.
18:26, 계속 대답이 없자, 바알 선지자들이 제단을 돌며 춤을 춥니다.
민망했던 것입니다. 뭔가 하는 척 합니다.
18:27, 엘리야가 조롱합니다. 바알이 묵상 중인가? 잠시 나갔는가? 화장실에 갔는가?, 잠이 들었으면 깨우라! 말합니다.
18:28, 바알 선지자들이 열 받습니다. 그래서 소리 지르고,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자학합니다. 저녁 때까지 이 짓을 했으나 응답이 없습니다.
왜 대답이 없을까요?
바알은 사람이 만들어낸 신입니다. 그러니 대답이 없습니다.
18:30, 엘리야가 점잖게 등장합니다.
백성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여유도 있습니다
18:31, 12지파를 상징하는 12돌을 골라 제단을 쌓았습니다.
18:32, 제단 주변에 두 세아의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도랑을 팝니다. 한 세아는 7.3 ℓ 입니다.
네 개의 통에 물을 세 번씩 채워 부으라고 합니다. 12통입니다.
18:33, 송아지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 놓습니다. 각을 뜨는 것은 조각내는 것입니다 그 위에 물을 뿌리니 이 물이 도랑으로 흘러 가득찹니다.
18:36, 엘리야가 기도합니다. 흠뻑 젖은 제물을 태워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18:37,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물을 핥아냅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하려고 하던 것이 안되었는데, 엘리야의 한번의 기도가 불을 내렸습니다.
18:39,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백성이 엎드려 말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
18:40,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으라 했고 이들을 기손 강에 가서 모두 죽였습니다. 기손 강은 지중해로 흘러 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반대에 서는 우상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처단하십니다.
한가지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아세라 선지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는 아합에게 아세라 선지자 400명도 나오라고 했는데, 이들은 갈멜산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세벨이 아세라 선지자들의 대장으로서, 갈멜산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합니다.
18:41, 아합이 멍하지 있으니, 엘리야가 아합에게 빗소리가 들리니 안심하고 가서 음식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합이 순한 양이 되어 따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엘리야의 기도하는 모습은 독특합니다.
18:42, 땅에 끓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번 확인하면서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합니다. 그리고 비가 옵니다.
5. 엘리야의 영적 침체와 치유
갈멜산 영적 전투가 끝난 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19:1, “아합이 엘리야의 행한 일을 이세벨에 고하니”
아합이 궁에 돌아오자 마자, 이세벨에게 경과 보고합니다.
실권자가 이세벨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공처가 대회가 열렸답니다.
누가 진정한 공처가인가?
응모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심판관이 빨간 깃발과 노란 깃발을 세우고 자신이 공처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빨간 깃발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전부 빨간 깃발에 모였는데, 한 사람만 노란 깃발에 모였습니다.
심판관이 궁금해서 “왜 노란 깃발로 갔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 응모자가 대답했습니다.
“내 아내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로 1등입니다.
18: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겠다고 통보합니다.
18:3, 엘리야가 이 말을 듣고 두려워 합니다. 이세벨은 과거에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학살한 전적을 가지고 있습니다(18:3-4).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을 내리고, 여세를 몰아 바알선지자 450명을 학살한 사람인데, 이세벨의 말을 두려워하다니…
사람은 무언가 이루었을 때 영적 공허가 온다고 합니다.
큰 일을 이루고 나서 목표가 성취되었다는 허탈감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런 영적인 공허를 느끼는 단계에 있었으며, 적시에 이세벨의 경고가 통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문이 듭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는 것이 목표라면 비밀리에 진행하면 되지, 미리 통보하여 도망가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이세벨이 원했던 것이 엘리야의 목숨이 아니라 엘리야가 그 도시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미 백성들에게 놀라운 이적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엘리야가 그 도시를 떠나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바알 종교의 신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19: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을 보고 하나님의 힘은 잊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졌습니다.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는 유다 땅으로 갔으니 아합의 영토를 완전히 떠났다는 것입니다.
19:4,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구합니다. “내 생명을 취하소서”
불을 내리고 비를 기도하여 내리게 한 사람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일부 목사님들은 엘리야가 호렙산을 향해 도망가는 것이, 선지 소명을 재충전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가 종을 두고 혼자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청하는 것은, 다시 뭔가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 소명을 포기하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엘리야의 한심함을 보셨지만, 징계와 책망보다는 치료와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19:5-7절, 천사를 통해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한번 먹고 자니깐, 깨워서 더 먹으라고 합니다.
19:8, 40일을 주야로 걸어서 호렙산에 도착했습니다.
19:9,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19:10,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첫째,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를 버렸습니다.
둘째, 주의 선지자들이 죽고 나만 남았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생명을 찾아 죽이려 합니다.
엘리야가 과장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장해서 말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현현하시겠으니 산으로 올라 가라고 하셨습니다.
19:11-12,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무슨 의미인가요?
“크고 강한 바람이 하나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하나님은 그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다.
그리고 지진이 일었지만, 하나님은 지진에도 계시지 않았다.
그리고 불이 났지만, 하나님은 그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이 광경이 지나고, 하나님은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첫째,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라
둘째,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셋째,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 무릎을 끊지 않는 7천인을 남겼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했고, 오바냐는 100명을 숨겼다고 했는데,하나님은 7천명을 남겼다고 하셨습니다.
6.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남
19:19, 엘리야가 호렙산을 내려가자마자 후계자 엘리사를 만납니다.
엘리사가 밭은 갈고 있었는데 12쟁기를 동원했다고 합니다.
상당한 부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이것을 포기합니다.
엘리야가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집니다.
이것은 선지자적인 능력을 전수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이를 알아채고,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시치미를 떼고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고 말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뭔가를 보입니다. 그 자리에서 소를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7. 이세벨과 나봇 이야기
21:1-16, 이세벨과 나봇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봇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물질적 이익을 탐하지도 않습니다.
작은 포도원을 조상에게서 받았으며 이를 지키고 삽니다.
아합은 공급 궁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명 탐욕스런 두꺼비!
고고학자들은 오므리 왕조 시대의 사마리아 궁에서 많은 상아 유물도 발굴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에 대해 소개합니다.
별명은 이스라엘의 독사, 두꺼비 옆에 앉은 예쁜 독사!
나봇이란 사람이 아합의 궁 근처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1:1).
아합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넘기라고 했습니다.
나물 밭(개역)/정원(표준)을 꾸미겠다고 합니다(21:2).
나봇이 값을 잘 치르겠다고 했지만, 나봇이 조상대대로 했으니 안된다고 거절합니다.
아합이 거절당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습니다(21:4).
아합이 생각보다 소심한 사람입니다.
이세벨이 듣고, 나봇의 포도원을 줄테니 일어나서 식사하라고 합니다.
이세벨이 곧장 음모를 꾸밉니다.
이세벨이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옥쇄로 봉인하고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내용은 두 건달을 고용해서 나봇이 하나님과 아합을 저주했다고 위증해서 돌로 쳐죽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와 귀족들은 이 편지를 이세벨이 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4절에서 나봇을 죽인후에 이세벨에게 보고하는 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사람을 처형할 수 없습니다(신 17:6).
그래서 증인이 두명이 된 것입니다.
8. 엘리야의 아합 비난(21:17-29)
하나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합니다(21:17).
아합과 이세벨의 나봇에게 한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21:18, 아합이 포도원을 취하러 내려 갔나니
엘리야는 아합에게 그와 이세벨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님이 그의 집안을 개판으로 만드시겠다고 하셨음을 선포합니다.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을 것이요,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성벽 옆에서 찢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시체까지 찢어 먹을 것이다”
꿈찍한 선언입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선포한 심판의 말씀을 듣고 근신했던 것입니다(21:27).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대에서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21:29)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입니다(21:25-26)
여기서 회개한 것은 아합의 업적 중에서 가장 잘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3년후, 아합은 아람 즉 시리아 전투에서 죽게 됩니다(22:34-35).
아람왕이 부하장군 32명에게 아합만 죽이라고 합니다( 22:31).
그러니 결국 여기서 아합이 죽습니다.
아합의 두 아들이 두번 연이어 왕위를 계승합니다.
엘리야의 예언은 20년후의 실현됩니다(열왕기 20장)
예후는 누구입니까?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기 위해 사마리아에서 이스르엘로 내려 갔을때 아합의 마차를 몰던 자입니다.
예후는 그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했던 질책과 무시무시한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예후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죽이고 이세벨에게 오고 있습니다(왕하 9:30).
이세벨이 화장을 하고 기다립니다.
이세벨이 예후에게 “제 주인을 죽인 시므리 같은 자”라고 욕을 합니다.
시므리는 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던 자입니다(왕상 16:8-20).
예후는 이세벨을 성벽 밖으로 던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개들이 먹어 치웠습니다(9:34-35).
엘리야가 예언한 것이 실현된 것입니다.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 말씀이 성취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아합 자손들이 예후의 손에 의해 살해됩니다(왕하 10:1-11)
예후는 사마리아와 이스르엘의 유지들과 아합의 자손들을 보호하고 있는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합의 자손들 중의 하나를 왕으로 택하여 나와 한판 싸우자”
그들이 예후와 싸울 뜻이 없다고 회신을 보내옵니다.
예후가 그러면 아합의 자손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예후와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합의 자손 70명을 죽입니다.
이세벨이 유지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나봇을 돌로 살해했듯이, 예후는 유지들에게 편지를 보내 아합의 자손들을 죽이게 합니다.
여기서 예후는 이것은 엘리야가 예언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왕하 10:10).
자신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합의 잔당을 전부 죽입니다(왕하 10:11).
“갚음의 날”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명이 높았던 이세벨은 이렇게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결코 잠자고 있지 않습니다.
9. 엘리야의 승천
왕하 2:1-2,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에게 계승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엘리사를 세차례나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세번의 반복되는 권유를 통해 엘리사에게 원하면 선지자 길을 접고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사를 후계자로 지명하셨지만, 결국 엘리사의 의지가 그를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왕권은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계승 받을수 있지만, 선지자 직은 소명받은자들의 강력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엘리사에게 스스로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갈-벧엘-여리고-요단” 으로 갑니다(왕하 2:1-6).
이 길은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 정복을 나섰을 때 순서대로 지나갔던 길입니다(수 1:8).
요단 강물이 갈라지는 것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엘리야는 모세만큼 위대한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모세시대나 엘리야 시대나 이스라엘이 범죄하지만 하나님은 똑같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계속 따라오자 함께 요단강으로 갑니다.
겉옷을 벗어서 강물을 치니 물이 갈려져서 마른 땅을 건너서 요단강 동편으로 갑니다.
이것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던 일,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가르던 일을 연상시키는 일입니다.
강을 건너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 엘리사는 서슴없이 “스승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갑절로 받게 해주세요”라고 합니다(2:9).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2:10).
이때 돌연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왕하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회리 바람이라고 번역했으나 폭풍을 의미합니다.
엘리사가 작별인사를 할 틈도 없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엘리사가 슬퍼서 옷을 찢고 괴로워합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2:12)
엘리야의 선지자적 영적 깊이가 이스라엘 국가의 능력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엘리사가 죽었을때도 이스라엘왕이 똑같이 애도합니다(왕하 13;14).
성경에서 승천한 사람은 두명입니다. 창세기 에녹, 왕상 2장 엘리야.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남긴 것은 낡은 겉옷뿐입니다(2;12).
엘리사가 이 옷으로 요단강을 내리치니, 요단강물이 둘로 갈라집니다.
성경에서 요단 강물이 몇번 갈라질까요 세번!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와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엘리사가 승천한다는 계시의 말씀을 미리 전해 들은 생도들이, 이 광경을지켜보고 엘리사가 최고 선지자가 된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2:15).
엘리사가 강을 건너 돌아오자, 생도들 50명이 엘리야의 시체를 찾겠다고 하길래 엘리사가 이를 허락합니다. 3일간 찾더니 못 찾습니다.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한 것은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했습니다.
<시사점>
1. 엘리야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에게 가서 기근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합니다.
2. 엘리야는 자신만이 바알과 싸우는 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라 !
3.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용하시고, 다음에 엘리사를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과 관련없이 지속됩니다.
4. 아합과 이세벨의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악한 자에게 심판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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