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하나님은 어디로 가셖는가?

역사서
열왕기상 17:1-24,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
 

 

집을 짓는 건축회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경영하는 건축회사 이름은 공짜 건축회사라고 불렀습니다. 이 회사는 자기들이 매우 좋은 집들을 짓는다는 것을 선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매우 독창적이고도 유별난 광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즉 이 회사가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선전하는 내용은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회사의 경영자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찾아왔습니다. 아름다운 호숫가에 지어진 집으로 방은 여러 개가 있고, 전경이 기가 막히게 좋을 뿐만 아니라 직장도 가깝고 자녀들의 학교도 매우 가까울 뿐만 아이라 좋은 크리스천 학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가 말합니다. 이집은 당신의 집이 될수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전적으로 당신의 것입니다. 여기 집 열쇠가 있습니다. 받으십시오. 그런데 한가지 매우 간단한 조건이 있습니다. 매우 좋은 집이군요 라고 말하거든 당신은 ‘이 집은 공짜 건축회사가 지었습니다’라고 만 말하면 됩니다

 

이러한 제안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정신병자나 바보가 아니고서야어찌 이러한 엄청난 제안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야! 이게 꿈이야 생시야. 아니 내가 무엇을 했기에 이 집을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한일이 없는데!” “이 집은 우리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공짜입니다.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 집을 누가 지어주었는가 만을 말하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사에 들어갔습니다. 이사한지 첫 반년 동안은 당신은 오는 손님들에게 부지런히 이 집은 공짜 건축회사가 지어 공짜로 준 집이라고 말합니다. 아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신나고 즐겁겠습니까. 너무 너무 좋아서 잠 속에서도 놀라 깰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당신은 별로 이 집에 대해 감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누가 이 집을 지어주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제는 점점 지겨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짜 건축회사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습니다. “만일 처음에 약속한 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당신 대신에 다른 사람을 대신 넣겠다는 경고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기분이 몹씨 나빴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냅니다. 당신들 마음대로 하시오. 나도 이제 살만큼 살았소!

 

아마 나는 여러분이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행동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를 위해서 여러분이 그렇게 했다고 합시다. 즉 여러분은 이 약속과 계약을 지키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시다.

 

공짜 건축회사가 어떻게 나오리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시오. 당신을 그대로내버려두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즉시 다른 사람을 대치해 넣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즐겼던 특별한 위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생각하기를, 미친 놈이 아니고서는 누가 그러한 행운을 쉽게흘려 보낼 것인가?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특권을 받은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특권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내시어 특별한 축복을 주고 선물을 주었던 이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갈수록,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좀더 감사하고 감격하는 사람들로 대치시키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그는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왕상 1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받았던 경고장이었습니다. 주께서 언약의 축복들을 거두어들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밖으로 떠나간 것입니다 .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이 떠나가시게 되었던, 하나님을 모욕하는 상황들을 조사해 볼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특별한 목적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받았던 능력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우리도 이 말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셨는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가게 되었던 상황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었습니다. 우리가 열왕기서를 읽어보면 어떤 중요한 주제들이 크게 울릴 것입니다. 주의 언약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여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위에 있는 다른 민족들에게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왕은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얼굴과 같았습니다.그래서 왕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각 왕들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왕들에 대하여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혹은 그는 여호와의 목전에 선을 행하였더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북쪽 왕국 왕인 아합에 관계된 구절입니다. 본문은 북쪽 왕국을 어떻게 아합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까? “아합이 그전의 모든 왕들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더라(왕상 16:30)” 정말로 이 사람은 나쁜 자였구나! 정말 그러했습니다. 사실상 그는 매우 나쁜 왕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이 행한 일들 중에 하나가 자기 백성들이 남쪽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일을 박기 위하여 자기의 영토에 금송아지 두 마리를 세워 거기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우상과 다른 신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하였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로보암 보다도 더욱 나쁜 왕이 아합이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경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시돈 출신의 이세벨과 결혼하였습니다. 이세벨은 대부분의 시돈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열광적인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바알 경배를 심히 모욕하는 이 신, 즉 여호와에 대하여 아합은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그가 실제로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지 아십니까?  아합은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건립하였고 바알 성전을 건립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욕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죄 위에 죄를 더 쌓기라도 하듯이 아합은 아세라라는 여신을 경배하고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세라 경배 역시 시돈 로부터 수입한 것입니다

 

둘째로, 아합이 주의 말씀을 무시하고 경멸하였다는 정도가 얼마나 큰가를 열왕기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아합은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리고를 재건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아합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경멸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행동입니다. 파괴된 도시, 여리고성을 그대로 남겨두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힘이시요 방패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대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요새를 이스라엘 국경에다 건축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리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언약의 축복들을 거두어 가시게하였던 상황들이었습니다. 이제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아합에게로 갔습니다. 내가 말할때까지 비도 없으며 이슬도 없을 것이라.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왔습니다. 그리고 갔습니다

 

그 결과는 한발, 가뭄, 작렬하는 더위, 먼지, 기근뿐이었습니다. 바싹 마른 대지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하였습니다. 18장에서 말하듯이 이 땅에 심한 기근이 찾아 온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약의 저주가 언약의 축복 대신에 찾아왔습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바알신만 섬긴 아합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가뭄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들을 계속해서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요단강을 건너 그릿 지방에 숨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으로 까마귀들이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그릿 시냇가의 물이 바싹 마르게 됩니다. 심한 가뭄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른 장소로 옯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방법으로 쉽게 엘리야에게 물을 공급하실수 있었지만 그는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엘리야를 다른 곳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요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목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떠나 셨는가, 이방의 땅으로

 

엘리야는 시돈 땅 사르밧이라는 지방으로 옮겨갑니다. 시돈이라 하면 악녀 이세벨의 출신지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세벨은 그녀의 불경건한 바알 숭배를 가지고 시돈을 떠나서 이스라엘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떠나 정반대로 시돈 땅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교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세벨과 하나님의 말씀이 교환된 것입니다. 시돈으로부터 이스라엘 땅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시돈 땅으로 교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합과 이스라엘은 이 메시지를 알아들을수 있겠습니까?

 

엘리야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 밖에 있던 한 과부에게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낼만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과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에게로 보내셨습니까. 왜 엘리야는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시돈 땅 가까이 있는 작은 마을로 보냄을 받았을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바깥에 있는 한 여인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굴욕을 당하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벌이 얼마나 심한가를 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부터 격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그들을 건너서 다른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당연히 자기에게도 오리라고 생각했던 생명의 선물이 다른 곳으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앞에서 다른 곳으로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찾을 것이라는 경고장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외부인, 사르밧의 한 과부의 생명 속에서 약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외부인이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누리려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시돈이 가까운 사르밧으로 왔습니다. 이곳은 엘리야에게 있어서는 적진의 영토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세벨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영토 안에 엘리야를 위하여 한 장소를 준비하셨습니다. 바알 숭배자들로 가득찬 곳에 엘리야,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한 장소를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이 지구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사그리 씻어 버리려 했던 총본부, 시돈 땅이 이제는 바로 그 말씀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졌던 한발과 가뭄은 시돈 땅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신선한 물, 생수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과부를 만나서 무엇을 요청했습니까? 그는 너무나도 귀한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 하는데 엘리야가 부릅니다. ‘먹을 떡도 가져오시오!’ 아니 이 사람이 돌았단 말인가? 한 움큼의 밀가루가 전부인 이 불쌍한 여인에게 떡을 달라고 하다니. 이제 이 밀가루로 빵을 구워서 자기와 그의 외아들이 먹고 죽을 낢만을 기다리는 이 비참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빵 한조각마저 포기하라니요?! 온 땅이 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하고 있고, 과부와 그의 아들은 죽음의 문 앞에서 서 있었던 것입니다.

 

과부가 가진 최후의 떡 한 조각마저 요구하는 엘리야는 정신있는 사람입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엘리야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음식을 구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과부의 천 생명과 생활을 달라고 요구하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당신의 생명이 유지될 것이라고확신시켜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시오. 언약의 축복은 언약의 요구와 함께 오는 것입니다. 단순한 요구입니다.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하였을때에 그 과부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신뢰 안에서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은 그 여자와 그의 식구들에게 생명을 새롭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4절)”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셨는가, 그 목적은 ?

 

이러한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셋째 요점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이 과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취해야 할 반응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올바르게 반응하지 않았으나 오늘 우리의 교회는 해야 할 것입니다.

 

사르밧 땅에서 이스라엘 땅에서는 쉽게 잊어버렸던 일이 실현되었습니다. 즉하나님의 말씀과 떡의 관계, 주를 섬기는 일과 생명을 유지하는 일과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사르밧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했던 생명의 원리, 삶이 보존되는 원리를, 과부는 이해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찾으라 그리하면 당신의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라” 그녀는 모든 인류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법을 포착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이 말은 이 세상 사람에게는 난센스처럼 들리나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는 삶의 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경건하지 못한 세상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요 이방인었던 과부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을 떠나자 이스라엘은 심한 기근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 여인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많은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들이여! 보지 못합니까? 바알이 생명을 지켜주는 자가 아님을 여호와,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신뢰하고 믿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게는 들어야 할 메시지가 주어졌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만일 너희가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오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언약의 축복들을 누리도록 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은 이방인의 삶속에 외인의 인생 속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도 열리게된다는 전주곡과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이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갔도다. 이방인에게 구원이 감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질투나게 하려 함이로다”

 

예수께서 자기의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자 그는 사르밧의 과부와 같은 사람들로 대치시키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라. 선지자가 제 고향에서 영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년 육개월 동안 닫히어 온 땅에 흉년이 들었을때에 이스라엘 땅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엘리야가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고 시돈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눅 4:26)”

 

예수님의 말씀도 동일한 진리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불신앙으로 그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서 있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은 기꺼이 자기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길을 먼저 내어 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이 거절한 초청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합 당시 하나님의 말씀은 엘리야라는 사람을 통하여 왔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통하여 왔습니다. 그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라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자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안에서만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를 주님이라고 인정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생명을 주는 축복들을 얻고 즐길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즐기는 것을 할 때에 우리는 소리지릅니다. “ 야 이것이 진짜 삶이로다” 가을의 진한 단풍 길을 거닐 때에 우리가 정말로 즐기는 일들을 할때, 우리는 이것이 사는 것이지 이것이 생명이지 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흠뻑 받고 그 안에 있을, 여보시오 이것이 생명입니다. 정말로 사는 것 같군요. 라고 말하는 문자적 의미인 것입니다

 

자녀들이여.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 생명이 어떤 종류의 생명인지를 아십니까. 소년 소녀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머니가 얼마동안 깜박 잊고 물을 주지 않아서 시들고 말라가고 있는 화초들을 본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어머니가 물 조리개로 물을 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요? 물을 준지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잎새들과 줄기들이 불쑥 일어납니다. 온 식물이 참 생명력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의 삶은 가물고 시들고 메말라 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다시 생기를 얻고 일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환희로 흥분하게 됩니다.

 

온 회중들이여! 언약의 축복들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과 삶은 언약의 요구를 지킬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전체를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온갖 바알신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과 삶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서만 유지 된다는 것을 정말로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물질을 경매하든지, 자기들의 권세를 경배하든지, 자기들의 과학을 경배하든지 간에 오늘날의 바알에게 많은 주식을 쌍아 놓음으로써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 세상의 원리들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원천이요 근원임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신선한 봄날의 잔잔한 미풍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의 바람이 여러분의 모든 활동과 여러분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젊은이들이여 이 생명을 여러분의 친구가 있다면 이 생명을 그 관계 속으로 가져가십시오. 내일 다시 일터로 가시는 여러분들이여 !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생명이 여러분의 일터로 들어오게 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거짓 신들과 거짓 안전은 생명을 삶을 부패시키며 파괴시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삶과 생명을 창조하며 양육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신중하게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인도하도록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하되 장차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들을 충만히 누리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공짜 건축회사로부터 집 한 채를 거저 받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값없이 공짜로 받았습니다. 이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유지하며 자라갑니다. 이 말씀을 경히 여기거나 무관심하게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위험 천만한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