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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8-16
동화나 요정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떤 소년이 나중에 부자가 되는 이야기
- 흉물스런 상자가 갑자기 값진 보석함으로 변한다는 이야기
- 미운 오리가 변하여 백조가 된다는 이야기
복음서는 동화나 요정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 바리새인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나중에는 나쁜 사람들이 됩니다.
- 창녀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지만 나중에 그들은 모든 좋은 사람들이 됩니다
예수님은 좋은 사람이었다가 나쁜 사람이 된 바리새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에는 패배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동화나 요정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실제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옛적에 머나먼 어떤 나라에 한 위대한 예언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커다란 궁전에 못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이 위대한 예언자가 이 악한 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살아계신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앞으로 몇 년간 이슬도 내리지 않고 비도 오지 않을 것이다(왕상 17:1)”
그리고 이 예언자는 왕을 떠나 사막의 한 시냇가에 숨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요정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까마귀가 사람이 먹을 떡과 고기를 가져다 줍니다
-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없어지지 않고 항상 남아 있습니다
- 기름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고 항상 남아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한 위대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 까마귀가 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 그는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시기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 그는 심지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수도 있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엘리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 그는 악한 왕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 그는 자기 나라에 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 그는 자기 나라의 상점에서 빵을 살수도 없습니다
- 그는 까마귀에 의해 음식을 조달받았습니다
- 그는 내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마실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
그러나 왕의 모든 신하들과 왕궁의 모든 여인들은 위의 질문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언자가 아합 왕의 경제 체제를 붕괴로 몰고 갈 한발과 가뭄이 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렇게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늘의 까마귀를 보았습니다.그리고 그 까마귀들을 보내신 그분을 생각하였습니다
시내의 물들이 다 말랐을 때 개울의 물들이 더 이상 흐르는 소리를 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돈의 작은 마을 사렙다로 가서 그것에서 머물러라 내가 그곳에 사는 한 과부를 시켜 너에게 먹을 것을 공궤하도록 하겠다
엘리야가 이 불쌍한 한 이방 과부로부터 먹을 것을 공급받아 생존한다는 것은 마치 그가 까마귀에 의해 음식을 얻어 먹고 생존한 것만큼이나 위대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치 까마귀처럼 과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람이 아닙니다. 과부는 삶의 자원이 없는 자라고 사회가 규정한 사람이 아닙니까. ?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연약한 여인을 통하여 엘리야의 목숨이 유지된다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며 믿어지지 않는 동화 속의 이야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엘리야는 남자이며 이스라엘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예수님과 사마리아의 한 여인의 이야기 안에서 발견할수 있습니다
태양이 중천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어느 날 정오였습니다. 예수님이 한 우물곁에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 사마리아의 한 여인, 동네에서 소외된 한 여자가 우물로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하고 힘있는 분인 예수님이 연약한 이 여인에게 부탁합니다. “나에게 물 한 그릇을 다오”
그러나 이 이야기 끝에는 예수님은 구원자로 능력있는 돕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에 한 여인에게 그들 자신을 의존하고, 연약하고 힘이 없는 한 여인에게 그들 자신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이와 같은 동화나 요정의 이야기들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보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이야기의 비밀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야기의 세계 속에 들어가 그곳에 있어 보지 못하면 그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오직 그 세계 속에 들어가 봄으로써 역할들이 뒤바뀌고 상황이 역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좋은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어떤 상황도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떠한 일이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이 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여러분은 90살 먹은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하였습니까. 사라도 그 말을 듣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웃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불륜의 관계를 맺어 솔로몬이 태어나고 솔로몬 이후 악왕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과 같은 왕으로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였습니까. 이런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오지 여러분이 요정 이야기로서 복음을 들을때입니다. 진정한 동화로서 참된 요정 이야기로서 복음을 들을 때 여러분은 진정한 복음, 좋은 소식, 현란한 소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 아들과 같은 태도를 갖고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협상하는 분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목숨이 사렙다의 한 과부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였습니까. 엘리야가 마을 입구에 이르렀을 때,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던 한 과부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물 한그릇을 어떻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가 물을 가질러 가자 다시금 그녀에게 부탁합니다. 빵 한조각도 함께 얻어 먹을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밀가루 한웅큼과 병의 기름 조금뿐입니다. 지금 나못가지 두어 개를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해 남은 밀가루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이다
그때 엘리야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서 지금 당신이 말한 대로 하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통의 가루는 바닥나지 않을 것이며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먼저 내게 먹을 빵을 주시오, 그리고 나서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만드시오
엘리야가 그녀에게 요구한 것은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을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과부의 신앙적 행동은 기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의 밀가룰 통이바닥나지 않았고 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한동안 그러대로 잘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얼마후에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습니까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의 아들을 받아서 다락방에 올라가 침대에 뉘이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엘리야는 과부를 위해 변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바라건대 이 아이의 영혼이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소년의 생명이 다시 돌아와 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소년을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 주사 그녀가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이제야 내가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을 압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행동하십니다
-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전달하십니다
엘리야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나르셨습니다.
이런 부활 생명에 대한 좋은 소식은 세상 속 ? 들리는 소식마다 비관적인 세상 속으로 들어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쁜 소식들만으로 가득찬 세상 속으로 파고듭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비관적인 소식들만 있었기에 정작 이런 좋은 부활의 소식에는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세상 속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겠는지요? 몇몇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놀라운 부활 생명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될 뿐일 것입니다.
그 좋은 소식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누가 그 좋은 소식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인가요
- 그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입니다
-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는 과부입니다
- 정신적 영적 침체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빛은 모름지기 그런 사람들에게 비출 것입니다
부활의 빛은 소망이 없는 세상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의 빛은 공허를 절감하지 않는 세상에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그 좋은 소식을 귀담아 들을 소수의 사람인가요
- 복음의 좋은 소식에 열려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 가슴을 활짝 열고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진실한 요정 이야기 “하나”가 있다는 것을 기꺼이 믿는 사람들입니다
- 그들은 진짜 동화 “하나”가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미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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