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하 5장, 나아만의 믿음
오래 전 한때 하나님은 홍수를 땅에 보내 온 땅을 뒤덮으신바 있고, 오직 의로운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구원함을 얻은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셨고 그럴듯한 왕국을 건설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방의 열국들을 물밀듯이 보내서 그의 백성들을 삼키도록 하셨습니다.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이방의 열국들에게 늘 위기를 당하면서 겨우겨우 버티어 갑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이처럼 하셨을 까요 ?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전통과 유산을 거부했고, 그들의 하나님을 잃어 버렸으며 자신들의 소명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기적하면 우선 생각나게 하는 선지자 엘리사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무대이며주변 적대국으로는 지금의 시리아인 아람의 왕과 그의 큰 용사이면서 아람을 구원한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옵니다.
본문에서 한가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물들이 등장할 때 한 사람이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다른 사람이 문둥병자가 됩니다.
나아만의 문둥병 치료이야기는 실제 역사 내의 의미심장한 영역 속의 사건으로서, 왕들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의 삶의 이야기의 일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아만은 시리아의 장수입니다. 나아만을 통해서 시리아가 다시 힘의 자리를 되찾은바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아만에게 무엇이 행해질 수 있겠습니까.
나아만의 집 뒤켠에 숨겨져 있는 중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침략자 시리아인들에 의해 포도되어 이스라엘의 대적자의 집에 여종으로 끌려왔던 한 어린 유대 소녀였습니다.
이 소녀는 하나님의 구원의 임재를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호와의 종 엘리사를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노예로 끌고 온 자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동정어린 눈으로 보았고, 하나님의 치료의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아만에 의해 자신에게 가해진 불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치료의 임재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감추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나아만과 어떠한 흥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여주인에게 말합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라면 좋겠나이다. 저가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여기 진실로 한 “이스라엘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치료의 임재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에대 해 굶주린 열방에 대해 그 임재를 중거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사명을 성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와 여호와 선지자 고향땅인 바로 그 사마리아를 다스리고 있는 이스라엘의 왕과 비교해 보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해 듣자 마자 시리아의 왕은 이스라엘의 모든 보고를 훤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이스라엘의 왕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을 함께 나누자는 시리아왕의 요청을 듣자, 이스라엘 왕은 당혹해 합니다. 황망한 중에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계책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그는 열국이 행하는 방식들에 있어서는 지혜로웠을지 몰라도 엘리사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임재에 관해서는 무지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습니까.
왕의 무기력은 왕이 망연자실 중에 자신의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엘리사가들은 후에 왕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생생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내게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그러나 만약 이스라엘 중에 치료가 있다 해도, 어떻게 이 치료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시리아인들은 그들이 생각해 낼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했습니다.
시리아왕은 순전히 세상적인 무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차원에서 이 치료를 명령하고 지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다구 생각해 이스라엘을 자신에게 공물로 바치게 하듯이 그렇게 나아만의 치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것도 이스라엘 왕의 반응을 얻지 못할지도 몰라 엄청난 재물을 하께 딸려 보냅니다. 상당한 값을 치루더라도 나아만의 치료를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흥정과 거래에 추가로 군사적인 힘을 과시합니다.
나아만은 그의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문에 나타납니다. 허나 이 모든 것이 쓸모가 없었습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찾고자 했던 치료는 자신의 세속적인 명성의 힘을 통해서도 또한 그가 기대했던 종교적인 절차나 의식 등을 통해서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아만의 치료는 오직 요단 강의 물을 통해서만 주어질수 있는데, 이 강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 때에 이 강을 건너게 하사 이스라엘을 구별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식의 강이었습니다. 오직 나아만이 겸손히 이 강에서 자시 몸을 씻을 때 만이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해 있는 하나님의 치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 강물에 씻었을 때 그는 깨끗이 된 살이 나올수 있었습니다. 그는 요단강에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나아만의 치료는 단지 육체의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치료의 참된 원천임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가장 감동적인 회심의 한 좋은 예를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나아만의 고백은 절대적이요 확신에 찬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감사의 예물을 취할 것을 간청합니다.
그리고, 노새 두마리에게 실을 거룩한 흙을 자기에게 주어 자기 고향 다마스커스에서 여호와에게 드릴 제단을 쌓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또한 아람왕에 대한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는 중 어쩔수 없이 이방 신당의 제사에 참여케 될 경우, 이에 대한 죄의 용서를 간구하는 겸손한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서 있는 공적인 위치와 새로 찾은 신앙 사이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관계에 대해 자신이 처신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선지자에게 감동적으로 호소하는 소리였습니다. 이에대해 엘리사는 대답합니다. “평안히 가거라” 이 말에서 엘리사는 나아만의 믿음의 진실성을 승인해 주는 것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상의 진행을 통해 본문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네 병이 치료받을 수 있는 진정한 원천이 어디에 있으며, 누구로부터 나오는지를 알지 아니하였던가. 불행하게도 너는 이 사실을 망각하였구나”
자 이제 이 울부짖음의 속편입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이방인 나아만에 대해 여호와의 값없는 은혜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했던 치료를 열방과 함께 나누는 일에 대해 열방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게하시는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그는 엘리사 가운데 있었던 여호와 구원의 임재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세상적인 이익을 위해 착취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아람인들과 한가지가 되었고, 나아만의 문둥병이 그에게 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이 전하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게 됩니까. 이 이야기의 거울을 잘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포로된 소녀 → 나아만 → 게하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