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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4:13-17, 룻의 이야기
룻의 이야기는 가치 체계를 뒤집어엎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자녀가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일에 대해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스 10:6-44). 특히 모압 사람일 때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신명기에는 “모압인은 하나라도 여호와의 회중의 일원으로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십대 자손에 이르기까지라도 여호와의 회중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신 23:3)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왜, 모압 사람들을 그렇게 심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모압인들은 비정하게도 그들에게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주지 않았었습니다.
- 더욱이 모압인들은 발람이란 예언자를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했었습니다(신 23:4-5)
만일 우리라면 그런 박대와 멸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막의 뜨거운 용광로를 지나면서 배고프고 목말라 기진맥진할 때, 오히려 비난하고 방해를 하고 있다면 그것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자기 잘못으로 생명을 잃게 한 자들이 거짓말로 속이고, 궤변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면, 오히려 방해하고 피눈물을 내게 하고 있다면, 잊을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속여서 잊게 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율법서에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기억에 남도록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후, 그들에게 있어 이방인들과의 결혼은 모두 금지되었으며 특히 모압인들과의 결혼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압 여자인 룻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룻의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우리는 이 모압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녀의 성품을 기억해 봅시다
- 유대인 시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극진한 신실함
-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지극한 헌신
룻기를 보면, 인간의 최악의 상황으로 시작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과 함께 유다 베들레헴에서 기근을 피하여 모압지방에 우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압지방에 가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은 모압여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나오미의 며느리가 오르바와 룻입니다. 모압지방에 거한지 10년 즈음에 두 아들 마론과 기룐 두사람이 죽게 됩니다.
기근, 가난, 이주, 한집안 남자 셋의 죽음, 남겨진 세 명의 과부들.. 그야말로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의 연속입니다. 룻기에 들어선지 겨우 다섯 절 만에 세명의 여인들은 이미 각자의 남편들을 이국 땅에 묻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정황으로 볼 때 그것은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비애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자신은 고향 베들레헴으로 갈 것이니 모압에서 남아 살라고 하는 것을 거절하고 시어머니를 따라 나섭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와서 보아스를 만났고 그와 결혼하여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조상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당당히 그리스도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됩니다.
룻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총에 대해 말해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불가능을 관장하시는 주인이십니다
- 하나님은 불가능을 통제하시는 주인이십니다
- 하나님은 모압여인 룻을 구원 계획에 포함시키고 예수님 족보에 오르게 하실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룻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다. 나 자신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중요하지 않고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각 사람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룻을 관찰해 보십시요. 모압여인으로서 그녀는 하나님의 계획과 디자인 밖에 내버려져 있는 것으로 끝날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떠나면서 룻에게 모압에 머물라고 했을때, 룻이 작은 책임이나 의무를 외면하고 자신의 일가 친척을 쫒아 모압지방에 남았다면 하나님의 구원 밖의 사람으로 버려졌을 것입니다.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떡일 것입니다.
- 출애굽 이야기
-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과 부활의 이야기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야, 그것은 진짜 이야기야 라고\". 그러나 그들이 궁금해 하는 점이 있다면, 그 이야기가 나에게도 사실일까. 이며, 그들이 알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이야기 어느 곳에 맞는 것인가 일 것입니다.
룻의 이야기는 커다란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바깥에서, 즉 모압땅에서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오미와 룻의 고난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아름다운 천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 부분에 이르게 되면 그 고난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개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거룩한 역사를 모두 포괄하는 긴 이야기(Grand story)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짧은 이야기들(short story)들이 필요합니다. 즉 좌우지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우리도 그 긴 이야기 속에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전 세계적 구원 드라마의 한 막에 나오는 중요 등장인물들로 바라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놀라운 일들을 합니다. 별볼일 없는 사람들의 삶을 의미 가득 찬 삶이 되도록 관을 씌웁니다. 이야기들은 무명의 사람들의 삶을 의미로 채웁니다.
룻기 2;2-3을 보십시요
룻은 보아스의 밭으로 가라는 하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보아스의 밭으로 가 보라는 환상을 본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우연히 그 밭에 가본 것 뿐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자신의 곡식을 위해 일하러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우연히 간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롯이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나오미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길들을 찾아주십니다. 어느 길도 동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예기치 않은 각도에서 하나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 갈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평생동안 가슴에 묻고 죽으면서 살아야 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나를 더 이상 즐거움(나오미)”이라 부르지 마십시오. 나를 괴로운 여자(마라)라 불러 주십시요. 전능자가 나를 심하게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압땅에서 병으로 병사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연히 믿고 의지했던 자들이 잘못하여 생으로 생명을 잃게 하였는데, 그들이 거짓말하고 속이고 오히려 목을 세우고 그들이 죄지은 현장에 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오미의 고통과 쓰라림, 괴로움을 모아 그분의 이야기로 뜨개질을 하고 계십니다. 어두운 배경을 만들어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잘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룻은 어떻게 하나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습니까? 전통과 인습에 과감히 도전하고 저항하였습니다.
룻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신약성경의 첫번째 장에 그것도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그녀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유별나게도 그녀의 이름이 호적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 자신을 창녀로 변장하여 자신의 시아버지 유다를 속였던 가나안 여인 다말과 함께
- 이스라엘 첩자들을 숨겨 준 가나안의 창녀 라합과 함께
- 다윗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던 밧세바와 함께 말입니다.
룻, 다말, 라합, 그리고 밧세바. 이 네 여인들에 대한 성경의 언급과 기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은 끊어진 끈들과 버려진 실들을 주워서 자신의 구원 이야기 속으로,아름다운 직조물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소식,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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