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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장, 오르난의 타작 마당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를 계수하였다((대상 21:5~6) ). 그런데 이것이 사단의 시험을 받은 것이라고 했고(대상 21 :1~4),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자기 백성중 7만명을 온역으로 잃게 되었다(대상 21:7~17).
다윗의 인구조사의 목적은 세금 징수와 병역대상자의 점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복 전쟁의 승리로 자만에 빠진 다윗이 이방 국가의 왕들처럼 자신의 위세를 인본주의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심각한 범죄에 빠졌을때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다. 하나님이 진노를 중단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다윗은 선지자 갓의 지시에 따라 오르단의 타작 마당으로 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으시고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으며 징계도 그쳤다. 하나님은 약속했던 대로(삼하 7:14~16) 징계는 하되 다윗과의 언약은 보존하는 섭리를 보여 주신 것이다.
특히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1천년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에 있던 장소(대하 22 ;1)로서 나중에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세워지는 거룩한 장소(대하 3:1)가 되었다. 이로써 처음 징계가 시작된 장소(삼하 24:6)가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사랑과 화목의 장소로 변하였고 성전 부지로 선택된 것이다.
솔론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 3:1)
아들이 지난 1.13(화)에 태국 메콩강 쌍아우마을에서 순교한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인지 인간이 찾으려 한다는 것이 무모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하나님 뜻 운운하면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덮어 씌우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민망한 일은 아이들을 생으로 그 강에 넣어 죽임당하게 만든 당사자가 하나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죄를 졌으면 그 죄를 사해 달라고 간구하고 행함으로 자신의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신앙이고 믿음이다. 더욱이 목사들이 아닌가. 거짓말로 속여서 일순간 그 죄를 피하려 한 것은 살인자의 행위를 끝까지 마음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 라면 아니 성경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울면서 죄를 빌어야 하는 것이다. 죄를.. 태국 쌍아우마을은 다윗의 오르단과 같은 곳이니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자고 해야 하는 것이다. 설혹 암이 걸리거나 다리가 부러져서 못가는 지경에 있다 하더라도, 가야 하는데 아파서 갈수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행위를 보시고 평가를 하신다. 잘한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못한 자에게는 징계를 주시고 있다.
이중표 목사가 2004.3월경 강단에서 죽은 자를 잊으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이다. 이후 이 분은 참으로 안좋은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정승회선교사가 자신이 선교팀을 그 강으로 인도하여 배를 태우게 되었고 사고가 나자 이를 피하려고 거짓말을 했고 덮으려 애썼으며 지금까지도 그 지경에 머물고 있다. 이미 다 들어난 일을.. 그런데, 더 참을수 없는 것은 박훈목사이다. 이사람은 인솔자이다. 그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난다면, 차라리 기독교 신앙을 접어야 할 수준에 이를수 있다. 너무 절망스런 수준이다.
그러나, 다행스런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볼수 있다는 점이다
태국 쌍아오마을에 선교관이 세워졌다. 2년이상 추진하다가 난관이 있어서 안되던 것이 박훈이 태국을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진행이 된 것이다. 힘은 들었지만 서울에서 의지를 가지고 직접 추진하니 오히려 진행이 된 것이다.
김완주 목사님이 가족과 함께 순교지역 부근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사고와 관련 없는 분이 소명 받았다고 했다. 서울에서 아주 편하게 목사할 만한 역량을 갖춘 분이 태국 오지에 가서 선교사를 자청한 것이다. 뼈를 묻겠다고 하고, 언더우드 집안같이 대를 이어 선교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성도들이 목사를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은 이런 역활이 기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룩한 숭고한 마음을 가지기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 만 안해도 훨씬 낳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아이들을 생으로 죽임 당하게 만들고는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는 그런 지경 까지는 안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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