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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어린 아이들에게 마귀를 그리라고 하면, 대개 뿔이 달리고 눈이 사납고 못생기고 흉측한 모습을 그립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마귀가 아주 멋있고 우아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6일간의 창조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은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고통, 질병, 생존경쟁,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심히 좋지가 않습니다.’ 고통이 있고 질병이 있고,누구나 죽음을 겪게 됩니다. 범죄와 전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에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창세기 3장에서 발견됩니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기 시작했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설명하는 내용이 여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대해 ‘역사(실화)인가, 신화인가, 우화인가’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뱀을 우화적인 존재로 해석하려 합니다.
창세기 3장의 인간 타락의 사건의 역사성을 부인하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타락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가 우리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구속 사건도 그 역사성이 부인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뱀이 말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사탄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탄의 존재를 믿는다면, 사탄이 뱀에게 말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호세아 6:7을 보면,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 11:3에서 사도 바울은 “뱀이 그 간계로 이화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가 쓴 것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14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이같이 창세기 3장의 역사성을 받아들였으니, 본문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유혹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혹이 있는 곳에 죄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유혹, 죄가 외부로부터 왔다고 설명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선을 추구하자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금지한 명령을 어겼으니 불순종이고, 그 결과 ‘수치스러워졌고, 두려워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에게 모든 동물을 돌보아 주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짐승 중에서 똑똑하고 지혜로운 짐승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뱀입니다.
1절,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으로서 가장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간교하다는 히브리어 ‘아룸’인데, 교활하다 혹은 지혜롭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어떤 존재입니까?
요한 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요한 계시록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
옛 뱀의 정체를 마귀, 사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단, 마귀라는 존재가 뱀을 이용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뱀에 정관사가 붙어 있으니 ‘그 뱀’입니다. 사탄이 그 뱀을 특별히 이용한 셈입니다.
사탄은 간교하고 교활한 자를 이용합니다. 나서기 좋아하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입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조금 능력이 없고 미련해도, 거짓이 없고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접근합니다. 그 단계를 보면,
-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1-3절)
-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게 만들고(4-5절)
- 불순종하게 만듭니다(6-7절).
첫째,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뱀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후단)
‘참으로’ 교묘하게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맨 처음 그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 하셨습니다.
사탄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면서 접근합니다.
그것도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은 아담에게 주어졌고, 하와는 이를 전해 들었습니다. 하와에게 교묘하게 의심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뱀은 말할 수 없는데 이같이 말을 하였으니 사단이 뱀안에 들어가서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2-3절,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가 반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왜곡되어 나타납니다.
여자는 우선 ‘만지지도 말라’ 를 추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셨는데 ‘정녕’이 빠지고, ‘죽을까 하노라’ 로 바꿉니다.
사단의 교묘함에 여자가 스스로 죄에 빠질 수 있는 수순으로 들어갑니다.
자기 죄를 합리화시킵니다. 죄를 지어도 편안히 짓고 타락해도 좀더 편안히 타락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이것이 죄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타락시키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가게 합니다.그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왜곡하게 합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여자의 변론은 뱀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절)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자는 하나님과 말씀과 사탄의 양자 택일의 위치에 놓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사탄의 정체를 폭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이 본래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고린도후서 3:11에서 바울은 이렇게 폭로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기막히게 간파하고 접근해 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게 하는 결론을 초래합니다.
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제 뱀은 ‘하나님이 왜 금기명령을 주셨나?’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지 않은 동기들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동기는 인간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것을 인간의 희생으로 인한 하나님의 행복이라고 암시합니다.
사탄이 ‘너희 눈이 밝아’ 라고 한 것은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먹자 눈이 밝아져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보게 됩니다(7,22절)
그러나 뱀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신들의 죄악과 수치를, 불순종을 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마귀가 사용하는 유혹의 세가지 무기가 나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
요한일서 2장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니’(21:15-1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보고서 3장에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3:15)는 단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먹음직하고’는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 즉 육신의 정욕입니다. 세상적입니다.
둘째, ‘보기에 좋구나’ 는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하고자 하는 안목의 정욕입니다. 정욕적입니다.
셋째, ‘지혜롭게 할 만큼’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되고자 하는 욕망, 하나님 처럼 지혜로운 것, 즉 이생의 자랑입니다. 마귀적입니다.
성경은 이 3단계 욕망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호수아 7장 20-2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아이성을 공격하다가 패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성결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사해 보니, 아간이 시날산 즉 바벨론제 옷을 보고는 욕심이 생겨 착복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가나안과 바벨론은 1,000Km 정도의 먼 거리입니다. 그 먼데서 수입한 옷과 금덩어리 50개, 은덩어리 200개를 보고 아간이 욕심이 났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간과 그의 가족 모두를 돌로 칩니다. 이곳이 ‘아골골짜기’입니다. 그리고 아이성을 공격하는데 성공합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십니다. 아담이 겪은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하시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하신 일이 광야로 가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입니다.
먼저 사탄은 예수님께 다가와서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고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떡은 아주 절실한 육신의 정욕입니다.
이에대해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신 8:3)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사탄은 높은 산에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엎드려 경배하면 이것을 다 줄께’(마 4:8) 합니다. 이것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에대해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전 꼭대기에 데리고 올라가서 ‘뛰어내리라. 네 발이 땅에 닿게 전에 천사가 손으로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마 4:5-6).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번의 시험 모두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씀으로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드디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아담과 여자는 그들의 자유의지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도록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거짓은 말하지만, 범죄하도록 강요할만한 위치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악을 선택한 것입니다.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뱀은 앞에서 ‘눈을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약속했지만, 무엇을 볼 것인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 지기는 했지만, 선악을 분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보고 무서운 수치감을 깨닫게 됩니다.
타락전에는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2:25)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이제 부끄러워 합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무화과나무로 엉성한 겉옷을 만들어 그 몸을 가렸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가나안에서 발견되는 나뭇잎 중에서 가장 큽니다. 다산의 상징입니다. 이들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장차 맡게 될 역할을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말씀을 떠나는 데서 시작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려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접근했던 사탄의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놓아두셔서 유혹을 받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인격을 양성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가 없이 창조되었으나. 그 거룩한 상태가 유지되지 못하니, 뱀의 유혹을 받았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는 먹게 하시고, 선악과는 왜 못 먹게 하셨을까?
선악과는 사람과 창조주 사이에 신뢰 관계와 양립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율성과 창조주로부터의 독립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창세기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7절의 ‘벗은 줄을 알고’에 해당하는 ‘에루밈’과 1절의 ‘지혜롭다’라는 ‘아룸’이라는 단어를 대비시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혜를 추구했지만, 결국 벌거벗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뱀이 교활하다, 지혜롭다라는 의미는 덫을 놓기 위고 위험을 기다린다는 상황을 암시합니다.
뱀은 여자에게 말하면서 “너희”라는 복수를 사용합니다. 뱀이 여자를 유혹하고 있는 동안 줄곧 아담은 하와와 근접한 거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가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묵인한 것입니다.
6절,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에서 함께라는 말이 나옵니다. 공간적 접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실 때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2:17). 그러니 하와는 아담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비록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했지만 아담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와는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타락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디 목사가 미국에서 전도 마치고 돌아가다가 알코올에 중독이 되어 시궁창에 누워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개종자 중의 한 사람이요”
그때 무디 목사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예, 당신은 나의 개종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추측이 되오, 만약 당신이 성령에 의한 개종자였다면, 당신은 지금 그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요”
아담과 하와는 드디어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 곧바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왔습니다. 마음에는 두려움이 찾아 오고 몸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옷이 벗겨짐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수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은 책임을 물으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인간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 거하게 되고, 죄악과 싸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인간은 구원의 길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표범의 그 반점을 변화시킬 수 없음 같이,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성품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일단 우리가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게 되면, 그때에는 우리 마음의 성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죄지은 인간들을 찾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여자는 더 이상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길 수 없었습니다.
8절,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지라”
‘날이 서늘할 때에’는 낮에 바람이 불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아담과 여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순간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있느냐”(9절).
아담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절)
하나님이 다시 묻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11절)”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절)
하나님이 여자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13절 상)
하와가 대답합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3절 하)
아담이 여자에서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가 주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교묘한 설명도 덧붙입니다.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뱀이 꾀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행을 모르고 물으셨겠습니까?
죄를 인정하고 뉘우칠 기회를 주시고자 함인데, 이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이 아담에서 여자로 이어집니다. 그리소 뱀에게는 질문도 없고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사탄은 그 자리에서 정죄하고 심판하였습니다. 사탄의 말을 들을 가치도 없기 때문에 바로 정죄하십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심판은 뱀에서 여자, 아담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뱀에 대한 심판입니다.
14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이 구절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전 짐승 세계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렘 12:4, 롬 8:20)
배로 다니고 흙을 먹도록 형태가 바뀌게 됩니다.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단에 대한 여자의 후손의 긍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입니다(계 19:1-5, 갈 3:16,19, 히 2:14).
죄에서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첫 언명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원시복음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여자가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여자를 택하셨을까요?
여자가 꾀임을 받았기에 하와를 아담보다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세에서 인간을 구원할 후손을 낳을 자로서 역할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여자를 언급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는 아이를 낳은 일반적 여성을 의미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예정된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 단락은 뱀의 머리를 상하는 사건이 아니고 뱀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사건을 말합니다. 따라서 장차 메시아가 사탄을 정복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에서 후손은 무엇일까요?
후손(seed)는 영적인 후손을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하나님의 목적을 거스리려 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간 사람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4장에서 하와가 낳은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데 이를 신약성경은하나님과 사탄과의 우주적인 투쟁의 의미로 해석합니다(요일 3:12).
가인은 악한 자에 속하여 아벨을 죽였다고 합니다.
가인은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사탄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중의 으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후손과 싸워서 멸망당하는 자는 뱀의 후손이 아니라 사탄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해석합니다.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탄과 치명적인 투쟁을 겪으면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상처를 겪었지만 그는 ‘정사의 권세를 벗어버려’, ‘그것들을 밝히 드러내시고’ ‘그것들을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골 2:14, 15).
이제 여인에 대한 저주입니다.
자손과 남편에 대한 것입니다.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첫째, 여인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였습니다.
출산 자체는 창조 시에 약속된 축복입니다(1:28). 그러나 죄는 이를 저주로 바꾸어 임신과 출산에 수고를 동반케 하였습니다. 이는 임신한 여인이 출신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말합니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고통 가운데 자녀를 출산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남자와의 관계입니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사모하고’는 영어로 욕구(desire)로 번역되었습니다. 히브리어는 테스콰로서 나쁜 소원을 의미합니다. 여인과 남편과의 사이는 뒤틀린 모습을 선언한 것입니다. 타락전에는 대등한 인격적 관계가 타학 후에는 역기능적인 관계가 생겼습니다.
죄를 짓고는 책임전가를 하였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더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제 아담에게 저주가 임합니다.
17-19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주어진 저주는 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낼 것입니다. 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인간이 수고를 해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주어진 짧은 시간을 고생하다가 벌만 받다가 죽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그리고 그가 죽었더라’는 반복구가 아담의 자손이 죽을죽을 때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에녹에 관해서만 그 구절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네가 정명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계속되는 이 죽음의 지배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아담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고단해 졌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세상에 대한 제한 없는 지배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토양은 고통을 당하고 쓸모없는 잡초만 냅니다.
범죄이후 문맥은 계속하여 죽음을 언급하며 하나님, 배우자, 땅과의 관계가 깨뜨려졌다고 합니다.
이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죄가 없을 때는 에덴동산에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죄가 들어온 후에 에덴동산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최를 지은 자에게 책임을물으십니다. 뱀은 여자에게 여자는 아담에게 죄를 짓도록 유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물으실 때, 이와 같은 순서로 물으셨습니다.
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아담은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 ‘모든 산 자의 어미’라고 부름니다.
하와는 여기서 이름을 받기 전에는 ‘여자’로 칭합니다.
산 자의 어미는 구원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계속 존재할 것에 대한 증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새로운 환경으로 쫓기 전에 필요한 옷을 지어주셨습니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인간에게 찾아온 첫 번째 현상은 부끄러움입니다.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입었습니다. 무화과 옷은 얼마 못 갑니다.
21절의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될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대로 된 옷을 지으려면 짐승의 가죽옷이 가장 적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은 다음에도 구원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가 떠난 후에도 상당기간 존재했습니다. 생명나무는 여전히 그곳에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이 말은 슬픔이 서린 말입니다.
인간은 한때 선하심을 알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써, 육체적인 고통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악한 성향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슬퍼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제 미지의 외부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에덴동산은 죄가 없고 영생하는 곳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은 사탄이 쫓겨나서 지배하는 곳이고, 저주와 죽음이 있습니다.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은 뱀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한 약속이 허무맹랑한것임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토지를 갈게’ 하셨습니다. 땀을 흘리고 식물을 먹어야합니다.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기위해서 그룹과 화염검을 두셨습니다.
그룹은 히브리어 하케루빔으로서 얼굴은 사람 모양이고, 몸은 사자의 몸이고, 날개가 달렸으며, 성전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합니다. 화염검은 빙글빙글 도는 움직이는 칼을 의미합니다.
낙원 밖의 생활은 하나님과 타인, 그리고 다른 창조 질서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분리된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고통, 갈등, 그리고 죽음을 가져옵니다.
죄는 책임이 따르고, 죄의 저주를 되돌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가동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한 죄를 지금도 계속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합니다.
교회에서도 설교시간에 심판이라는 말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합니다. 축복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에서 모든 문제가 출발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에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조롱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심판이 가까웠느니라”고 전파했습니다. 주님도 똑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3년 반 동안이나 이스라엘에 경고했습니다.
포도원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그의 종들을 보낼 때 사람들이 그 종들을 얼마나 푸대접했습니까?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을 보내리라. 내가 저 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저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내 아들 말도 듣지 않으면 그때는 그들을 멸할 것이다.”(막 12:1-9)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범함 죄를 또 범하는 것입니다.
결국 A.D. 70년에 로마 티투스장군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도처로 흩어졌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인간인 하와의 말을 듣고 타락의 범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을 죄를 지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뢰가 깨지면서 아담과 하와를 부득이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살도록 가죽 옷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막으셨지만,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준비한 다음에 그들이 용서받은 존재로 영생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그 영원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즐기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이었던 것입니다.
이 구원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실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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