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야곱의 삶을 통해본 그리스도인

창세기
창 25:26-49;33, 야곱의 삶을 통해 본 그리스도인
 

 

 

오랫동안 목회한 목사님과 택시 기사가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목사님이 먼저 천국에 도착했는데, 예수님이 본척 만척 하셨어요.

다음에 택시 기사 분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주 반갑게 맞이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저는 40년 동안 목회했는데 어찌 기사만도 못한 대접을 받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열매가 없지 않느냐? 네가 설교할 때 사람들은 다 졸았고, 택시 기사가 운전할 때는 손님들이 두 손 잡고 아멘 아멘 하고 기도하더라.”

설교할 때 청중이 조는 것은 “목사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야곱의 삶을 통해 본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진실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생애가 어떻게 진실된 크리스천의 삶으로 변화되어 가는가?”

이 주제를 위해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 야곱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드라마틱한 성결의 인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야곱 이야기는 창세기 25~5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2장, 이삭이 1장 기록인데 비해, 야곱 이야기는 25장이니 방대한 양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스테반 같은 순교자의 삶, 요셉과 다니엘의 거룩한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장 주목을 받으면서도 잘난 구석이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변하지 않은 삶을 오랫동안 지속합니다.

젊은 날에 갈등, 넘어짐, 좌절이 있습니다.

야곱이 있어서 우리가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야곱은 경이로운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두 가지 별명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창세기 32장의 ‘이스라엘’입니다. 야곱의 변화를 알려주는 단어입니다.

 

야곱이 진실된 크리스천이 되기까지 30년이 걸립니다.

하나님은 30년 동안 야곱을 지켜보셨고, 마침내 변화시켜서 인생의 석양에는 당당하게 세워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드라마 입니다.

야곱을 극적으로 변화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5:19-26절에 보면, 야곱이 태어나는 순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40세에 결혼하여 60세에 자손을 낳게 됩니다.

이삭이 자손을 낳을 때, 아브라함이 160세입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습니다(창 25:7).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오랫동안 임신이 안되었습니다.

임신이 안되는 것은 이 집안의 내력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도 그랬고, 며느리 라헬이 요셉을 낳을 때도 그랬습니다.

 

리브가가 임신을 위해 기도 하였고, 이삭은 아내를 위해 중보기도 합니다.

이삭의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중보기도입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임신합니다.

그런데 쌍동이였고, 이 쌍둥이가 복중에서 서로 다툽니다.

리브가는 당황했습니다. 얼마를 기다렸습니까? 20년.

리브가는 이 싸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25:23,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유대인들은 장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계승되고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진다는 사고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출생사건을 둘러싸고 이 고정 관념이 깨졌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언약이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무엇인가요?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그분의 뜻에 따라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권은 복과 저주로 나타납니다. 또한 은혜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선택한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언약은 무엇입니까?

언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 언약이 대표적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1-2)

 

이 언약이 아브라함에 이어 손자인 야곱에게 확인됩니다(28:13-15)

 

야곱을 택한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주권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하나님은 약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에서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라고 했으니 강한 자입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습니다.

무력해 보이고, 문벌이 좋지 않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의 12제자를 보십시오.

공부 많이 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 아닙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13세기초 청빈한 수사 성 프란체스코에게 어느 날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이 선생님을 선택하셔서 이토록 놀라운 기적들을 펼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프란체스코는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이 지구상을 내려다 보셨지, 그런데 연약하고 겁이 많고 소심하고 부끄러워하며 아무 일도 못하고 있던 나를 보신 거야.

그리고 하나님은 박수를 치셨어.

‘바로 저 사람이야. 내가 저 사람을 통해서 나의 강함과 지혜로움과 놀라움을 나타낼 거야.’

이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분이 나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일세.”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적 시각에서 어떻게 보여질까요?

하나님의 선택은 고난을 동반합니다.

 

우리가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히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쌍동이를 가졌을 때,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복중의 아이들이 싸웁니다.

두 형제의 갈등이, 두 민족의 갈등으로, 번져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고, 에서는 아랍민족 에돔의 조상입니다.

선지서에 보면 에돔은 늘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불씨를 만드셨을까요?

이러한 분열과 분쟁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삭 집안은 야곱을 택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해 다툼이 계속됩니다.

 

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야곱이 뒤에 나오면서 형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심상치 않은 사람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빼앗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그의 이름 같은 인생을 삽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 몸부림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오는 허기진 상황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에 에서의 장자권을 샀습니다(25:27-34).

눈이 먼 늙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행위에 적대감을 갖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이삭이 야곱에게 하란에 가서 동족과 결혼을 하라고 권유를 합니다.

에서는 가나안 헷 사람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종교와 관습이 다릅니다.

리브가는 ‘헷 사람들로 인해 나의 생명을 싫어한다’(27:40)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홀로 고향 땅을 떠나, 하란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 야곱이 77세이고, 이삭은 137세입니다.

 

이삭이 있는 브엘세바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데, 이곳에서 하란까지는 900Km입니다. 걸어서 한달 정도 걸립니다.

야곱이 하란에 가는 중에 100Km 떨어진 벧엘에 왔습니다.

황무지에서 밤이 왔고 잠을 자야 합니다. 

 

28: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야곱이 꿈을 꾸었는데, 사닥다리가 보입니다.

하늘까지 이어진 사닥다리이고, 그 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닥다리 위에서 야곱에서 약속을 하십니다(28:13-14)

-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네 자손이 땅의 띠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사람의 행위에 구속 받지 않고 일방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다시 세가지 약속을 하십니다(28:15)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함께하시겠다.

-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지켜주시겠다.

-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인도하시겠다.

 

하나님 앞에서 야곱이 반응을 보입니다.

 

  창 28:16,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창 28:17, “두렵도다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두렵다”는 거룩한 경외감입니다. 하나님의 경외감을 경험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곳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고,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28:20-22).

-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삼겠습니다.

- 이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을 쌓겠습니다.

-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야곱은 약점이 많지만 강점도 있습니다.

그에겐 영적인 민감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야곱을 사용하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야곱이  벧엘을 떠나 하란에 갑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20년 살게 되는데, 이곳에서 하나님의 징계와 훈련을 경험합니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보다 한 수 위입니다.

창세기 31장에서 야곱이 외삼촌에게 이렇게 항의합니다.

 

“내가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31:40)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14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6년, 도합20년동안 외삼촌을 위해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10번이나 변역하였으니”(31:41)

 

야곱이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좋아했는데, 라반이 7년 동안 일하면 결혼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7년 동안 일합니다.

그런데 결혼하는 날, 라반이 속여서 라헬의 언니 레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언니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이 7년 더 일하면 라헬과도 결혼시키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7년을 더 일합니다.

 

그 후 6년을 더 양떼 돌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삶을 바꾸어 놓기 위해 20년 동안 징계하셨습니다.

 

야곱이 14년이 지난 후에, 고향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고 라반에게 말합니다. 이때 라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30:27)

라반은 하나님이 야곱 때문에 자기 집에 복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으로 인해 그 주위의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가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은 보디발에게 복을 내리시면서 ‘요셉을 위하여’(39:5) 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지는 것은 못견디는 사람입니다.

 

6년을 더 일할 때 꾀를 써서 가축을 늘리고 재산을 모았습니다.

라반이 야곱의 재산이 증가하는 것을 보고 시기합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31:2)

 

시기와 질투는 무서운 것입니다.

 

 

한 수도사가 리비아의 사막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경건한 생활을 하기 위해 금식하며 고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일을 해야 하니 이를 간섭합니다.

배고픈 자에게 음식으로 시험했으나 수도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욕망, 물질 등으로 시험했으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가 되었다.”

이 말을 듣고 수도사는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했습니다.

잘 견디어냈던 수도사는 시기, 질투에는 끝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시기와 질투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아내 4명, 자식 11명과 함께 모은 재산을 가지고 야반 도주를 합니다. 이때는 막내 베냐민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하란을 떠나 고향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의 삶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야곱이 늘 두려워 하는 것은 에서입니다.

고향에 가까이 오면서 선발대를 보내 알아보니,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마중 나오고 있습니다(창 32:7).

아브라함은 318명으로 조카 롯을 구했습니다.

400명은 마중이라 보기에는 너무 많은 인원입니다.

야곱은 에서가 아직도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고, 또 내가 처음 피난길에 들어섰을 때 벧엘에서 네 자손으로 바다의 모래 같게 하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창 32:9~12)

 

‘도와주시겠다고 했는데, 에서가 죽이려고 하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야곱은 다시 세상적인 해결을 도모합니다.

에서 에게 많은 예물을 보냅니다. 낙타, 양 등 580마리를 다섯으로 구분하여 보냅니다. 그러면서 “종”이 보낸 것이라고 전하게 합니다.

항복의 표시로 아내와 자식도 모두 보냅니다.

 

그리고 혼자 얍복강가에 남아 있습니다.

얍복강은 요단강의 지류로서 물살이 빠르지만 수심이 얕아서 사람이 건널 수 있는 장소입니다.

‘얍복 나루’의 ‘나루’는 영토로 들어가고 나가는 길목입니다.

 

창세기 32:24-32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다가.”

 

“야곱이 홀로 남았을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의 삶을 바꿀 기회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변화시킬 때 홀로 있게 합니다. 세상과 격리를 시킵니다.

 

사실 성경에서 이 부분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큼 경이로운 부분입니다.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니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이 되었더라”

 

하나님이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는데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환도뼈를 칩니다. “환도뼈”는 넙쩍다리입니다.

의학적으로 가장 강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세상적인 힘을 없애기 위해 그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야곱이 굴복하여 울면서 간청합니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하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32:27).  

“야곱이니이다”

야곱은 ‘사기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셨습니다(32:28).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의미인데, 승리라는 의미보다는 ‘야곱이 능력을 나타냈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축복을 어떻게 해서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의 환도뼈가 위골 당하고 완전히 항복했을 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32:29).

그러면 축복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인격의 변화입니다.

육신에 의해 지배를 받던 사람이, 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야곱과 이스라엘’. 이 두 이름이 나란히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람 에서 아브라함 으로 이름이 주어진 후에 변경된 이름만 언급이 되지만(17:5), 야곱은 이스라엘과 함께 언급이 됩니다.

옛날의 야곱과 새로운 이스라엘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후에도 야곱을 계속하여 훈련시키게 됩니다.

 

야곱의 생애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의 생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깊이 간섭하시고, 그것이 각자의 씨름으로 나타납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인격의 풍성함, 즉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41:14,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파도와 풍랑을 겪고 불 속을 지나가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하나님은 물 속, 불 속에서 우리를 연단시켜서, 하나님 앞에 보배로운 존재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드라마 입니다.

 

 

유럽 왕가에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딸이 시집을 가게 되면, 왕가의 어머니가 반드시 진주를 주게 됩니다.

진주는 영어로 Pearl “얼어 붙은 눈물”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주는 아비큘리대(Aviculidae) 라는 굴 속에서 나옵니다. 이 굴 안에 모래알이 굴러 들어가게 되는데, 이 모래알을 그냥 두면 굴이 썩게 됩니다.

그래서 살아남으려는 굴은 ‘나카’라는 물질로서 생성하여 모래를 거미줄같이 싸매게 됩니다. 이것이 진주입니다.

이 과정이 지독한 고통입니다. 하지만 이 고통을 이겨내고 진주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있으면, 그 책임과 의무로서 허락하는 고난이 있고, 이 고난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32:31,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하나님이 야곱을 떠나가시자, 해가 뜨고 야곱은 절뚝거립니다.

새 시대가 동텄고, 야곱의 몸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남은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고 축복받은 후, 형 에서를 만납니다.

에서가 야곱을 끌어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에서를 만나고 나서 아버지 이삭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이때 야곱은 97세, 이삭은 157세입니다. 이삭은 23년을 더 살고 180세에 죽습니다.

야곱은 이삭이 있는 브엘세바가 아닌 숙곳으로 갔다가 세겜으로 갑니다.

숙곳이란 곳에서 장막을 치고 정착 합니다. 많은 부를 축적하였고 고향 땅에 오니 이제 편하게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20년 전 벧엘에서 제단을 쌓겠다고 서원했으나 이를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손을 대기로 작정하십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야곱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디나입니다. 이 디나가 세일부근의 히위 족속의 추장인 세겜에게 억지로 욕을 당합니다(34:1-2).

 

디나는 레아가 낳았으며, 레아가 낳은 오빠 중에 시므온과 레위가 있습니다. 이들이 히위 족속에게 보복하는데, 치사한 방법으로 몰살시킵니다.

세겜 추장이 디나를 욕보이고 결혼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들은 이방인이 자신들과 결혼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위 족속이 동시에 할례를 받게 되는데, 이들이 할례 받고 고통스러울 때인 3일째 되는 날에 공격하여 몰살시키게 됩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야곱은 두려움이 앞섭니다. 부근의 가나안 족속이 보복하겠다고 하면 야곱의 가족은 몰살 당하게 됩니다.

도망가야 할 사태입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벧엘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온지 10년이 지났습니다.

30년 전에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고, 야곱은 서원 한바 있습니다(28:13-15).

 

하나님은 그 분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      야곱이 고향 땅에 오게 하셨습니다.

-      라반의 추격을 막아주셨습니다.

-      에서와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의 그때의 맹세를 잊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 그들이 여러 가지 수고와 행위는 있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 등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 2-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종 처음 사랑의 장소로 되돌려 보내십니다.

첫 만남을 기억하면서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던 감격을 기억하고, 처음 사랑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야곱은 벧엘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회개 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하는 증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은 모든 이방 신들을 제거합니다.

또한 집안 모든 자에게 몸을 정결케 하고, 새 옷을 입게 합니다.

 

가나안 부족들이 보복하기 위해 야곱 일행의 뒤를 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제지하셨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불신앙을 깨닫고 회개하여 모든 우상을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야곱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벧엘로 가게 됩니다.

 

35:9,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밧단아람은 하란입니다. 야곱이 이제야 하란에서 고향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숙곳과 세겜에서 보낸 10년은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벧엘에 가니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35:10-11,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이라 부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로 밝히셨습니다.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아들이 12지파가 되고, 후대 왕이 야곱 후손에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게 되는데, 그리고 400년 이 지나서 이들이 약 200만명의 큰 민족으로 번창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이 이렇게 성취됩니다.

 

야곱의 삶으로 보면, 지금 우리가 있는 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하란 길을 향해 가는 중에 벧엘에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벧엘은 야곱의 시작입니다. 하란에 가서 20년 고생해야 하고, 얍복 나루 사건을 겪고, 세겜 사건을 겪고, 기근을 당하여 애굽에 가야 합니다.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야곱 이야기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벧엘에 오르는 야곱의 수준까지 만들고자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1972년에 뭔헨 올림픽 마라톤에서 처음 출전한 미국의 무명선수 쇼터가 우승했습니다. 언론이나 스포츠계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기자가 쇼터에게 우승 소감을 물었을 때 쇼터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라톤은 힘듭니다. 남과 겨룬다고 생각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과 겨루지 않고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제 나름대로 뜁니다.

몇 등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명예 같은 것은 전혀 관심 밖의 일입니다.”

 

세상 속에서 진실된 크리스천의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라톤 우승자 쇼터 보다는 덜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쇼터는 혼자지만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그의 인생의 황혼 녘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자족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43:2, “양식을 조금 사라”

 

온 천지에 기근이 생겼고, 가나안 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의 식구가 70명입니다(46장).

그런데 야곱이 “양식을 조금 사라”고 합니다.

야곱은 이제 필요한 것만으로 자족할 줄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이 야곱입니까?

애굽의 총리가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야곱은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을 끔찍이도 아꼈는데,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것은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무엇을 할지, 그리고 갈 바를 모르게 됩니다.

 

둘째, 영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48: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야곱이 늙어서 눈이 잘 안보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8장에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오른손을 요셉의 차남 에브라임, 왼손을 장남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하고자 합니다. 그때 요셉이 야곱에게 말합니다.

“장자는 이쪽입니다. 장자에게 축복하셔야지요”

그러자 야곱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도 안다. 하나님의 뜻은 이 작은 아들에게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뭐라고 하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이루고 있습니다.

 

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게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야곱의 유언입니다. 요셉이 총리이고 출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셋째, 담대해 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47장에 보면, 요셉이 야곱을 애굽의 바로왕 앞에 인사시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요셉이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창 47:7)

 

야곱이 당시 세계 최강국 애굽의 바로 왕에게 축복하고 있습니다.

양식이 없어서 이 나라에 온 일개 족장이 왕에게 축복하는 것입니다.

형 에서가 두려워서 7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주의 종 야곱이니이다” 라고 한 사람이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바로가 기가 막혀서 나이를 묻습니다.

“네 연세가 얼마뇨”(창 47:8)

 

야곱이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마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얼마나 담대해 졌습니까?

 

넷째, 예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46: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야곱이 애굽으로 요셉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얼마나 급한 길입니까?

그런데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히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죽었습니다.

애굽에 가서 17년을 더 살고 147세에 죽습니다.

그의 황혼은 새벽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시편 146편 5절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성경에서 하나님을 소개할 때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야곱의 인생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야곱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이 야곱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셨을 때, 야곱은 자기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나의 모든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나를 치십시오.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변화 되었습니다.

 


청년들이여 !

 

하나님은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오도록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열정과 믿음이 있으면, 그것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비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크게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택하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야곱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내 지혜, 내 힘, 내 방법에 매달려 발버둥을 쳤습니다.

야곱같이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이제 나의 육신의 작은 힘을 버리고, 벧엘에 오르고자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새 옷을 입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

청년 수련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칠 때까지 함께 하시고 주관하여 주옵소서

이번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목표와 소망, 그리고 비전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