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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1:33-46, 소작인 비유
누가 20:9-19, 마가 12:6-12
본문의 비유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종말적으로 주어진 예수님의 최종 통첩적인 의미가 있는 종말적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간에 주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포도원을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구약에 보면,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5:1-7, 27:1-6, 예레미야 2:21, 에스겔 15;1-6절 등 많이 나타나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포도원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포도원 주인이며, 그리고 그 포도원을 이스라엘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관리하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특권이며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악한 행동을 나타났고, 하나니은 이를 지적하시면서 무던히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지주에게 농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위에 포도원을 세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3절,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그가 포도나무의 묘목을 심고, 야생동물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산울 즉 담도 둘렀습니다. 도둑이 들지 못하도록 높게 망대를 세우고 포도주를 제조하는 틀인 즙 짜는 구유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소작 농장의 설비입니다.
집 주인이 멀리 타국에 갔으며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었습니다.
집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농부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 집주인의 종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선지자들, 아들은 예수님, 다른 농부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포도원이라고 했습니다(사 5:2).
34-36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소작농들은 추수 때에 거둔 곡식으로 소작세를 지불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실과 때가 가까워 오자 예상대로 집주인은 농부들을 보내어 추수한 과실을 세로 받아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작농들은 그이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치는 악행을범했습니다. 더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종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로 보냄을 받았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어떠한 이들은 매맞음을 당했고(렘 26:7-11, 38:1-28), 어떤 이들은 죽임을당하였으며(이사야는 죽임을 당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세례요한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돌에 맞았습니다(대하 24:21).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조롱당하고 박해 받은 적이 많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37-39절,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
종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자 집주인은 소작인들이 자기 아들을 존중하리라 생각하고 아들을 보냈습니다.
이 단락은 주인이 죽으면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재산권이 이전된다는 법이 있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그 포도원의 상속자인 아들을 죽여 버리면 그 유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들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비유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40-41절,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찌니이다
포도원 주인은 자신이 직접 소작인들에게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자신들의 입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찌니이다”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농부들에게 넘겨 주라고 합니다.
4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읽기는 했지만 그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적인 하나님의 중요한 비유입니다.
모퉁잇돌과 머릿돌은 구하기 어려운 건축자재였습니다.
모퉁잇돌은 큰 건물의 기초를 단단히 해 주고 모양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다른 건축자에 의해 오히려 가장 중요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는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버림받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릿돌 됨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떨어지는 자는 죽을 것이로되, 반대로 그 위에 세워지는 자는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반석 위에 세우는 자의 영원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할 뿐, 그를 거역하거나 배척함으로 그 돌 위에 떨어져 그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야 하는 유감된 심령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배척 당하고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자기의 우편에 앉으실 것입니다.
4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다른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면서 진리를 소개하셨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인 이방인이 받는다고 합니다.
44절,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 돌 하나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돌의 이상적인 쓰임새는 그 위에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짓밟고 지나갈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원수들은 그 돌로 박살이 날 것입니다.
그때에는 건축용 돌이던 그리스도께서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돌이 되실 것입니다.
지금은 자비와 용서를 주시지만, 나중에는 심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5-46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종교 지도자들이 이제 마침내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들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포도원을 탈취하려고 한 악한 소작인이 바로 자신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음을 깨닫은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증오로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무리가 무서워 그것을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한다면, 소요와 민란이 일어 날 것이고, 로마인들은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불상사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 비유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내의 무한하심이 예수님을 적대하는 자들에게 연장되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버렸을 때, 하나님의 인내는 끝날 것이며, 하나님의 징계는 분명히 온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들에게 자신을 심어 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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