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들의 비유

비유
마태 21:28-32, 두 아들의 비유
 

마태 21:28-32, 두 아들의 비유
 

두 아들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있습니다.

이 비유는 종말론적인 비유로서 심판의 선언이 있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배경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성전 청결 운동을 하셨습니다.

성전을 청결케 하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구조로 보면, 성소와 지성소가 나뉘고, 그 지성소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고 성소에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촛대가 있으며, 일반 회중은 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일반 회중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뜰에 서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누구나 제물을 필요로 합니다.

멀리 오는 사람들은 제물을 가까운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사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했습니다.

 

흠이 있어서 퇴짜를 맞으면 장사꾼에게 웃돈을 주고 바꿔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사꾼이 성전 안에 까지 들어왔던 것입니다.

성전을 관리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장사꾼으로 인한 이익 때문에 이를 묵인했습니다.

왜 묵인했을까요?

제사장들이 뇌물을 받아먹은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좋게 묵인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이런 관행이 되다 보니 이제 당연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약관의 30대 청년 예수가 장사하는 그 현장을 모조리 내쫓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느냐”고 호통치셨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통쾌했을 것입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건한 사람은 나서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래야 한다고 시원해 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에게 경건하다고 추앙 받는 제사장 무리들이 신자들 앞에서 이런꼴을 당했으니 그 창피함과 체면은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의논을 한끝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이 때 질문을 받은 예수님이 직접적인 질문을 피하시고 오히려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질문에 대답하면 내가 대답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것이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

이들이 의논을 합니다.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면 예수님은 그런데 왜 믿지않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많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돌을 던질 것입니다.

그래서 묘수를 낸 것이 “모른다” 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나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하나님을 상징하며, 둘 아들은 죄인들과 보수적인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28절,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예수님은 함정이 도사린 질문으로 자신을 넘어뜨리려고 한 종교 지도자들(21:23-47)과 대화를 계속하셨습니다.

첫째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제사장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29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그런데 첫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겠다고 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이 아들은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하지만 심중으로는 순종하지 않는 당시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한다고 하며서 끊임없이 불순종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30절,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둘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나중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이 아들은 부르심을 거부했지만, 후에 회개하고 순종한 죄인과 이스라엘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입니다.

 

31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하고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제대로 답변했습니다.

 

아버지의 지시 사항을 실행한 아들은 처음에 거절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아버지의 말에 순종한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이 비유는 역동적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입을 다물지 못할 말입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천민집단으로서 자칭 의로운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장 멸시받던 계층입니다.

 

그러면 세리와 창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2절,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세례 요한이 선언한 의의 도로 인해 세리와 창기들은 믿고 삶이 변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이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요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수님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칭 경건한 종교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인이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천한 자들이 주님을 온전히 믿고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주류에 해당한다고 믿는 자칭 의인들에게 “길을비켜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18:21-22,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지난 날의 잘못된 과거는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묻고 책망받아야 할 일이지만, 묻지 않겠고 책망도 아니하시겠답니다. 그리고 영접하시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결론적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이 회개하며 돌아올 때 아버지는 기쁘게 영접하셨는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과 거짓말한 것을 뉘우치면 되는데, 끝까지 버티는 것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