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품꾼의 비유

비유
마태 20:1-16,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태 20:1-16,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태복음 19-20장은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에 갈릴리에서 유대 지역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진행된 강화입니다.

 

본문은 천국을 포도원 농부에 비유한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 역시 하나님 나라가 주제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것이고, 현실적입니다.

 

이 비유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연결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에 받는 대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좇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 준비되어 있습니까?”(마 19:27-30)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영적인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 19:28-30)

 

예수님은 마지막 구절인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를 연결하여 포도원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하나님은 집주인이며, 신자는 품꾼이고 포도원은 천국입니다.

이 비유는 세습이나 특혜에 의한 지위 때문에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스도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재확신시켜야 하는 새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집주인은 품꾼 몇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의 수확은 9월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가 뜰 때를 1시, 해가 질 때를 12시로 정합니다.

9월에는 아침 6시에 해가 떠서 저녁 6시에 집니다.

점심 식사와 기도시간을 제외하면 일하는 시간은 보통 10시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일꾼들이 품삯을 받는 것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은헤를베푸는 행위입니다. 일꾼들은 일할 방법이 없고 부자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일꾼들은 많았고 일할 곳은 적었기 때문입니다.

 

2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품꾼들은 통상적인 임금인 하루 한 데나리온씩 받기로 하고 포도원에 들어갔습니다.

 

3-4절,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집주인은 삼시 즉 오전 9시에 장터에 놀고 있는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왜 집주인이 일꾼들을 더 고용했는지는 설명이 없으며 그것은 이 이야기의 본질적인 부분은 아닙니다.

집주인은 일꾼이 더 필요했을 것입니다.

집주인은 두번째 품꾼들에게 상당하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꾼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일한 시간의 양에 맞추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5-7절,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육시 즉 12시, 구시 즉 오후 3시, 십일시 즉 오후 5시에도 집주인은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종일토록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놀고 있느냐 하니 일꾼들이 부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이들도 모두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8-10절,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저물매는 일몰입니다. 해가 졌으니 일꾼들은 일당을 받아야 합니다.

유대 율법에는 가난한 자를 굶주린 채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레 19:13, 신 24:14-15).

집주인은 의도적으로 나중에 고용된 자들에게 가장 먼저 지급하도록 명했습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이 일은 일꾼들을 놀라게 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오후 5시에 온 자들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들어온 자들은 더 많이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모두가 의아했습니다.

 

11-12절,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낮 동안에 고용된 일꾼들은 모두 똑같이 하루 품삯을 받았습니다.

일찍 온 일꾼들은 더 많이 일했지만 한시간 일한 일꾼들과 같이 받자 집주인을 원망했습니다.

 

13-15절,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품꾼들은 주인에게 아무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주인은 그 중의 한 사람을 친구로서 응대했습니다.

집주인은 약속한 금액을 지불했음을 설명했습니다.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리고 자신은 마음먹은 대로 지불할 수 있고 그의 돈이니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일꾼들이 시기한 것에 있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구원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관대함으로만 아낌없이 베풀어진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애로운 긍휼은 사회의 가장 천한 일원도 엘리트와 동일한 자격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은 천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부정하고 죄가 많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신 것 때문에(눅 15;1-2), 원망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면전에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은 사회적 계급, 연령, 물질적인 부, 혹은 유산에상관없이 그리고 그들이 언제 생명에로 나아오는지에 관계없이 모두가 그분에 의해 동일한 자격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모두가 천국에서 그분의 유업을 받을 것입니다.

 

16절,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말씀은 이생과 천국의 삶 사이의 차이를 지적합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보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죽어가면서 회개한 강도(눅 23:40-43)는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을 믿고 복음 전한 자들과 같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은혜입니다.

아무도 천국에서의 지위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 되고 먼저 됨”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잘 보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 는 구절이 더 강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회의 공평성이 있고, 절대적 관계가있습니다.

“누구나 일하라. 한 시간 남았더라도 일하라. 지난날을 후회하지 말고 일하라. 남은 시간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이것이 천국 백성입니다.

 

천국 백성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포도원에 감사하며 일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일 시킨 것도 감사하고 일하면서도 감사하며 일이 끝난 후에는 얼마를 주든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이요, 천국의 윤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공로 교리에 잘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많은 선행을 축적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의 행위의 교리였습니다.

 

이 비유의 메시지를 두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이웃에 대한 질투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수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봉사했으니 저 사람보다 대가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기준을 볼수 없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선하시면 자비로우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때 나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고, 남모르게 시련을 겪고 또 내가 전혀 아는 바 없는 고통 중에 있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서 위로하고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갈보리 언덕 위에서 자신의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