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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47-50, 그물의 비유
우리들이 낯선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즉각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회심하여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갑자기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이는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세상적 사고도 하면서 점차 개선되는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7가지 천국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본문의 그물 비유는 천국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 비유는 심판의 날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물 비유는 제자들의 생활을 배경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 끝 부분은 고기가 잘 잡히는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호수에는 물고기 15 종류의 원산지로 밝혀졌습니다.
주님이 천국을 그물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47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팔레스틴에서 고기 잡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투망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망을 손에 잡고 고기떼를 보면 언덕 위에서 던집니다.
그물에 납추가 달려 있어서 그물이 가라앉게 되면, 어부는 납추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겨서 그물을 끌어올리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규모가 큰 편입니다.
그물을 넓게 치고는 여러 사람들이 끌어 당기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그물을 끌어 당기기 시작하면, 그물 속으로 고기들이 들어갑니다.
본문의 고기 잡는 것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48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어부들은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할 때,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립니다.
어부들은 그물을 물가로 끌어낸 다음에 잡은 것을 가려냅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버립니다.
유대인은 음식 금기 법이 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지느러미가 없거나,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먹을 수 없습니다(레 11:10).
먹지 못하는 물고기는 물속에 도로 넣어 줍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이 비유를 설명하셨을 까요?
49절,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세상 끝은 심판 날입니다.
심판 날에는 천사가 와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합니다.
그물 비유에서 바다는 세상이고, 그물은 교회입니다.
악인은 의인과 같이 교회를 다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진실된 신앙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 길가, 돌짝밭, 가시밭에 뿌려진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세상적인 이득을 취하려 합니다.
교회를 사교모임 정도로 생각하고, 돈이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합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그들을 의인으로부터 갈라 낼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갈라낸 악인은 어떻게 될까요?
50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심판 날에 천사는 악인을 풀무불에 던져 넣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했습니다..
그물 비유는 13장의 다른 6개 비유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마귀에 관한 언급도 없습니다.
그저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 의인과 악인, 풀무불만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악한 자 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장래에 심판이 있을 것이며, 경건치 못한 자는 그날에 비참하리라”
심판은 헬라어로 크리시스이며 분리한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crisis 위기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심판은 위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판은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인을 의인에게서 구별하는 것입니다.
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는 유사합니다.
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의 두 비유는 같은 점이 있습니다.
- 심판날 까지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다.
- 심판날에 천사가 와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한다.
- 심판이 있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다.
가라지 비유에서는 추수 때까지, 그물 비유에서는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독보리였다는 것은 다른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십자가에 전날에 예수님을 팔았을 때 그때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라지 비유에서는 밭이 세상이고,
그물 비유에서는 바다가 세상이고, 그물은 교회입니다.
그물 비유는 교회 내의 사람들에 대한 경고를 말한 것입니다.
교회 내에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흔히들 교회 내 잘못된 교인들이 많아서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교회 내에 왜 잘못된 교인들이 많이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는 죄인들을 불러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다”(마 9:12) 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섞여서 그리스도의 힘으로 치유되어 가는 곳입니다.
죄인인 환자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환자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 조금씩 들어가는 사람은 세상적 이익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서 점차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비유에는 세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의인과 악인의 구분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현재는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천사들이 구분하는 심판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 죄 씻음 받은 자들은 천국에 있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배척한 자들은 지옥에 있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2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천국에 있는 나사로 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깊은 구렁텅이 있어, 너희에게 건너 가고자 하되 할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 16:26).
둘째, 의인과 악인의 분리는 미리 결정되어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분리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 근거는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마지막 날에 그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의인과 악인의 분리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심판 날에는 회개를 할 기회가 없습니다.
구원은 이미 지나간 열차입니다. 늦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심판 날을 설명하셨습니다.
심판은 실제적으로 발생하고, 분리도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지금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의 운명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악한 자가 극렬한 풀무불에 던져진 후,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아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어떠한 현상을 말합니까?
그것은 고통이고, 지옥의 절망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음부에 떨어진 후 외치는 소리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이시여 사람을 보내어 내 형제들에게 전도해 주십시오.
그들만은 여기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부자의 호소는 회개가 아닙니다.
그의 형제들이 지옥에 들어올 것이 두려워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라지는 알곡이 될 수 있을까요?
나쁜 물고기는 좋은 물고기가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힘으로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힘은 어떻게 해야 나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고 죄 사함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고 외칠 때, 그 순간에 성령께서 새로운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그물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 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심판날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믿음 생활에 게을렀습니다.
이제 의로운 자가 되고자 다시금 결단합니다.
주님을 구주로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믿음을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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