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누룩의 비유

비유
마태 13:31-33,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태 13:31-33,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기독교 역사에서 위대한 이야기 중의 하나는 텔레마코스(Telemachus)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막의 은둔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로마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는 그리스도가 전도되었지만, 검투사(글라디아투스) 경기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텔레마코스는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8만명의 관중이 모였습니다.

그는 무서우리만큼 반감이 끌어 올랐습니다.

“서로 죽이는 저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 가운데로 뛰어 들었습니다.

경비원에게 내동강이 쳐 졌지만 다시 또 들어갔습니다.

집정관의 명령에 따라 칼이 번쩍하고 나서, 텔레마코스는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침묵이 흘렀고 군중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러한 검투사 경기가 사라졌습니다.

로마에서 검투사 경기는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때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작은 시도가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한 사람의 작은 동기가 이렇게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은 마치 이와 같으니”라고 하시면서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 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신약의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서만 천국 The Kingdom of Heaven 이란 용어가 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나님 나라 The Kingdom of God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복음서 마다 독자층을 달리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유대인은 구약에서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하늘 나라 라는 용어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하늘 나라를 의미하는 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육신이 죽었을 때 가는 영의 세계입니다.

둘째는 현재적인 개념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 영향을 받은 삶의 영역을 포함합니다. 즉 천국은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으로 지상에 오셨을 때 지상에 임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적인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로서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입니다.

예수님 보다 먼저 사역을 시작한 세례 요한은 상당히 멋져 보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 세례를 베풀었을 때, 사방에서 수많은 무리가 기꺼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 세례를 베풀 것이고, 크고 위대한 일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막 1:7 등).

“나는 쇠하고 그분은 흥하게 될 것이다”(요 3:30).

 

세례 요한의 말에 의하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으므로, 제자들의 마음은 들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심한 저항과 박해를 만나게 됩니다.

유대 사회의 지식인과 정치인은 예수님을 배척하였고 무시했습니다.

유대 사회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의 중심지는 갈릴리 라는 찻잔에서 일어나는 이 태풍에 대하여 전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늘 소수의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도래하는가?” 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그 결과는 매우 빈약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2명의 제자, 소외된 계층, 치료한 사람, 여인들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하고 의기 소침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은 이 두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먼저 31-32절의 겨자씨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 이고,  

자란 후에는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가지에 앉습니다

 

팔레스틴에서의 겨자씨는 채소 씨앗 중에서 작은 종류에 속합니다.

그래서 고대에서 겨자씨는 작은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겨자씨는 보통 1.2m 정도 자라며, 때때로 3 m 까지 자라게 됩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겨자씨 만큼만 있어도”(마 17:20)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이렇게 작은 데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시초로 출발하지만, 최후에는 열방이 모여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소망을 간직하고, 작은 시작을 통해 사역하라는 격려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 두 분이 목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분은 “나는 3년간 사역을 했지만 거듭난 성도는 한 사람밖에 얻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듭난 성도 로버트 마펫이라는 청년이 3년 동안에 어떻게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또 한 분은 “나는 최근에 한 주간 부흥회를 하였는데 한 사람 밖에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수년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3년 동안 얻은 그 한 사람 로버트 마펫은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적인 틀을 마련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일 주일간의 부흥회를 통해 얻었던 결신자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가치는 이렇게 소중합니다.

 

 

본문의 시기는 주후 28년경의 길릴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수 일을 하시던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교육받지 못한 어부들입니다

 

제자들이 전한 복음은 오늘날 세계 구석구석에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갈릴리에 뿌려진 작은 씨 하나가,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안식할 장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33절의 누룩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팔레스틴에서는 빵을 가정에서 구었습니다. 누룩은 구운 빵에서 떼어낸 작은 덩어리입니다. 이것을 보관하는 동안 박테리아로 인해 발효하게 됩니다.

누룩을 넣으면, 빵이 부풀고 구멍이 생겨서 부드럽습니다.

 

본문에서 이 여인은 밀가루 가루 서말에 누룩을 넣었습니다.

한 말이 13 리터이니 서말이면 39리터입니다. 대가족 식사량입니다.

예수님은 가족이 많았으니 마리아가 빵 준비 하는 것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유대 가정에서 누룩은 일년 동안 이어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유월절 동안에 가정에서 모든 누룩을 찾아내어 없애버리게 됩니다.

 

이 누룩 비유의 요점은 누룩을 가루에 넣으면 반죽 전체에 퍼지면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볼 수 없지만 이렇게 내적으로 은밀하게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잘것 없는 마구간 구유에서 그분의 생애를 시작하셨으며, 천대받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사 53장)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 제자 11명에게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멀리 가보지도 못한 촌사람 어부들입니다.

로마의 정치와 군사력 앞에서 보잘 것 없는 11명의 청년들이 가지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들 11명이 70명이 되고, 500명이 되고, 3천명이 되고, 5천명으로 늘어납니다. 고린도에서는 1만명의 성도를 얻게 됩니다.

핍박하던 대 제국 로마가 마침내 313년에 그리스도를 국교로 선언합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어느 시골에 큰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스잔이라는 소녀에게 바쳐지고 있습니다.

본래 이 마을에 교회가 없었는데, 예배당 설립을 간절히 원하던 어느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만 했었기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마을에 예배당을 주셔서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과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것이 이 소녀의 꿈이었고 열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녀가 이름 모름 병에 걸려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 소녀의 자리 밑에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와 열망이 담겨진편지 한 장과, 그 속에 마지막 헌금 5달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소녀의 이야기가 마을 주민들과 미국 전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헌금이 들어왔고, 아름다운 예배당이 들어섰습니다.

 

 

누룩은 그리스도의 다스림입니다.

이 누룩은 우리의 삶에 무수히 많은 유익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 영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두 비유는 성장 과정을 설명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겨자씨 비유는 복음의 확대라는 하나님 나라의 외부적인 발전을 강조하고,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은밀한 내부적인 발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작은 씨가 나무로 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룩은 반죽가루 속에 들어가서 놀라운 힘으로 그 자체를 키워 나갑니다.

기독교 역사가 걸어 온 발걸음이 그러합니다.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어떻게 성장해 왔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전하는 열망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어떤 방법으로 합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정치나 돈의 힘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십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이 성령의 능력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어떤 시인의 말 가운데, “씨앗을 손에 들고, 새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입니까?

씨앗을 심어 놓으면 싹이 날 것이고, 그리고 자라면 새들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3년동안 뿌린 씨앗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겨자씨” 였습니다.

핍박 받고 쫓겨 다녀서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세계의 역사는 바꾸어졌습니다.

영생을 주는 완전한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생명의 힘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겨자씨와 누룩으로 부터, 신비한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천국 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생각을 붙들고,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 우리의 삶은 자랍니다.

 

겨자씨 하나가 커다란 나무가 된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푸른 나뭇가지를 가진 아름다운 수목의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거기에 새들이 찾아옵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새들은 쉼을 얻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실때, 진정한 성장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조상의 전승에 따라 사는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아버지의 집과 직결된 삶에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5살날 한 소년이 지정헌금을 했습니다.

헌금 시간에 헌금을 하는데 1페니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꼭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이 헌금을 본 그 교회 목사님이 조금 보태어 작은 신약성경 한권을 사서 소년이 싸인 해, 그 책을 인도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그 소년도 잊고, 목사님도 잊었습니다.

 

20년후 이 목사님이 인도에 들러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참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목사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을까?”

 

그때 마을 분으로부터 한 선교사가 이 마을에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넨 것이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성경을 가져옵니다.

다 떨어지고 남루한 작은 신약성경입니다.

그 성경의 마지막 표지에는 20년 전 자기 교회의 5살난 어떤 소년의 사인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는, 트럼펫을 울리는 거창한 선전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가장 작은 어떤 사도를 통해서, 가장 놀라운 일이 시작됩니다.

 

질문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이 다스리십니까?

내 인생의 나무에 피곤하고 지친 새들이 날아들고 있습니까?

이웃을 만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의 사랑을 베풀며, 예수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평안과 안식을 소개합니까?

 

이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 봅니다

 

나는 첫울음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엄마의 품에서 작은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순간까지 왔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인생의 나무가 되었습니까?

뿌리깊은 나무, 푸르고 울창한 나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모습입니까?

여러분의 주변에서는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찾아오고 싶어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점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