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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16:1-13,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청지기 (9절 합독)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0내 초반의 한 청년이 염소를 치면서 하급직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넓은 세상, 세계의 중심에 가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나이로비를 찾은 미국인 교육가에게 간청해 추천서를 받았고, 매일 밤을 새워 미국의 대학들에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마침내 하와이대 장학금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이 케냐 청년은 하와이대에서 수업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러시아어 강의에서 만난 백인 여학생과 결혼을 합니다.
그 후 50년이 지난 지금,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미국 다수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습니다.
바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오바마 의원입니다.
미래를 준비한 한 흑인의 꿈과 지혜가 50년 만에 결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강해 하실 때, 비유로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복음서에 49개가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도 비유가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비유로 말한바 있습니다(삼하 12:1-14).
비유는 영어로 parable 입니다. 풍유인 allegory 와 다릅니다.
풍유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은 것입니다.
풍유는 사실은 아니면서, 이름과 배경을 사실 같이 사용합니다.
반면에, 비유는 실질적인 삶을 설명합니다.
본문의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가장 난해한 내용입니다.
청지기가 불의하여 주인이 해고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기 엉뚱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이 청지기의 엉뚱한 일을 칭찬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혹감 마저 줍니다.
본문은 과거형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유대적인의 관습에 근거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인공, 이 청지기는 어떤 사람인가요 ?
1절에 보면, 청지기가 주인의 돈을 허비했고, 주인이 이것을 알았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유대인 율법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동족간의 금전거래에 있어서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출 22:25, 신 15:8, 신 23:19).
이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 고리대금업자를 강도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돈 거래를 하는데 이자가 없으면 거래를 안합니다.
누가 위험 부담을 하면서 꿔주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어느 정도의 이자에 대해서는 허용하도록 율법을 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돈을 관리할 수 있는 청지기를 고용했습니다.
청지기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 입니다.
부리는 종이 아니고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 입니다.
청지기는 자기 판단으로 채무관계를 처리합니다
그리고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만일 청지기가 나태하거나 무능력하면, 주인은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서 자신이 들은 소문을 확인 합니다.
2절,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주인은 청지기가 재산을 허비한다는 것을 듣고 사실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네 보던 일을 셈하라 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회계장부를 제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계장부를 작성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빚진 자의 상황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니 청지기는 해고 당하기 전에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때 청지기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3-4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청지기를 그만 두면, 먹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힘이 없어서 농사지을 수도 없고, 막노동 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다가 한가지 아이디어를 고안해 냅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채무자들이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일까요?
5-7절,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빚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은 기름 백 말을 빚졌습니다. 한말이 34리터 입니다.
기름 3,400리터입니다. 큰 양입니다. 이를 반으로 줄여 줍니다.
둘째 사람은 밀 백 석을 빚졌습니다. 20% 를 줄여줍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빚 탕감을 받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채무는 소액의 종자돈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채무는 상인이 상업적으로 빌려 간 것입니다.
채무의 규모가 큰 편입니다.
하지만, 청지기는 해고 당하기 전이니, 이렇게 큰 채무를 탕감해 주더라도자기 책임으로 정할 수가 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가 한 일에 대해 취소할 수가 없습니다.
청지기의 이러한 조치로, 채무자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이를 알고 청지기를 칭찬합니다.
8절,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분명히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다”고 했습니다.
지혜는 헬라어로 현명하다는 의미입니다. 똑똑하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뭔가 혼동스럽지 않습니까?
사실 이 청지기는 사기꾼입니다.
어떻게 이런 행위가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잘 보십시오.
이 칭찬은 “주님”이 하신 것이 아니고, “주인”이 한 것입니다.
칭찬의 내용도 그 부정한 사람의 세상적인 “지혜”입니다.
주인에게는 큰 손실이 왔지만, 청지기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단지 이 세상적인 지혜를 칭찬한 것입니다.
주인은 청지기의 재물 허비에 대해 해임하는 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지기가 채무자의 빚을 감면해 준 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고대에서 상거래는 상호성의 윤리를 토대로 움직였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으로 채무자들이 자신에게 보답하도록 대책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대의 아들들” 은 이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입니다.
“빛의 아들들” 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1절에 보면,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 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래가 없으니, 오직 이 세상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은 더 중요한 영원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아 이 세상 사람들이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아라.”
“너희들은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
이제 예수님이 본문 이야기의 결론을 설명하십니다.
9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에서 불의는 “부정하고 악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청지기가 남의 재산을 가지고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불의의 재물입니다.
이 사람은 불의의 재물로 선한 일을 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친구를 사귀고,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그 자체가 불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선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로마 식민지입니다.
세금 징수만 보더라도 부패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에 고용되어 세금을 징수합니다. 로마정부는 세리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먹고 살도록 허용했습니다.
성전을 관리하는 사두개인들은 성전에서 장사를 합니다. 예수님이 두번이나 성전청결운동을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경제적인 유통구조는 불의하게 형성될수 밖에 없습니다.
청지기들은 주인의 재산을 이용하여 착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회가 불안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 획득에 광분하였습니다.
경건하다고 소문난 바리새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재물이 불의하더라도, 재물을 등지며 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재물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무슨 의미일까요?
“도움을 받은 빚진 자들이 너를 영접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접은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는 보상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11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왜 이런 설명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설명하시는 비유가 자신들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자들은 세상의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 없습니다. 공동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을 신실하게 사용하라”
“작은 것을 신실하게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큰 것이 맡겨질 수 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부자는 농사가 잘 되자 수확이 풍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곡간을 넓혔고, 예상대로 곡식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자는 만족하여 이렇게 독백합니다.
눅 12:19, “내 영혼아 내가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줄거워하자”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날 밤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그때 비로소 이 부자가 놀라고 깨닫게 됩니다.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구나!
내가 창조주가 아니고, 내가 피조물이구나!
천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분이 천국에 갔습니다.
이 분은 이 세상에 있을 때 해외 선교를 위해 늘 기도하였고, 작지만 해외 선교를 위해 헌금도 했습니다.
천국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이 까만 사람이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여,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케냐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내준 헌금으로 온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영원한 처소에서 이런 친구들이 우리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오바마 부친도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기다렸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이야기입니다(마 25:42-43).
주님이 최후의 심판 때에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마 25:31).
주님의 최후의 심판은 누가 천국의 영생에 들어가고, 누가 지옥의 형벌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불러 놓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느냐?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나를 영접하였느냐?
내가 옷이 없을 때 옷을 주었느냐?
내가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나를 돌아 보았느냐?”
사람들이 반문합니다.
“주님이 언제 옥에 갇혔고, 언제 배고파하셨습니까?”(마 25:44)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마 25:45)
작곡가 하이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이든의 곡이 너무 좋아서, 누군가가 하이든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작곡합니다.”
마침내 하이든이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를 작곡했습니다.
하이든은 창세기와 밀톤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된 날입니다.
그날 하이든은 몸이 아팠고 환자로서 관중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청중들이 박수를 치면서 일어섰습니다.
그때 지휘자가 하이든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분이, 이 놀라운 곡을 작곡했습니다.”
청중들이 하이든을 보고 다시 박수를 칩니다.
그러자, 하이든이 말했습니다.
“나는 한 것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인생관과 물질관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물질은 종으로 사용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물질이 주인이 되면, 우리의 삶은 삭막해 지고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나의 지혜, 나의 능력, 나의 배움, 나의 물질을 맡기셨습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있는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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