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영성

[설교자료모음]물의 영성/요한복음 7장 37-39절

 

물의 영성
본문 : 요한복음 7장 37-39절

본문 : 요한복음 7장 37-39절
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아니하시더라)


20세기는 석유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전쟁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지구면적 4분지 3이 물입니다. 그런데도 물이 부족합니다. 전세계인구의 40%가 물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30여 개국이 물분쟁 중이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약6000여명의 어린이들이 물 부족으로 인한 전염병으로 죽어갑니다. 우리나라도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입니다. 우리는 물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세계 146위의 물 빈곤국가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물 부족 국가입니다. 몇 년 전만해도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행 중 물을 사먹는 일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영성은 영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에는 영성이 없습니다. 물에는 영성이 없는데 설교 제목을 [물의 영성]이라고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물로 비유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역시 물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명절 끝 날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의 의미가 39절에 나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라” 즉 생수의 강은 우리 배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말씀이 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의 영성]이라는 말은 물에 영성이있다는 말이 아니라 물로부터 영적 지혜와 통찰력을 얻어서 물로 비유된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케 된 영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물의 영성이란 어떤 영성을 말하는 것입니까?

1. 겸손의 영성입니다.
물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하늘에서 비가 되어 내리는 순간부터 줄곧 낮은 곳으로만 향하는 특성이 있다. 깊고 깊은 어느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속삭임도 없이 조용히 낮은 곳을 향하여 먼 여행을 떠납니다. 물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더 낮게, 더 낮게 내려가고 내려가서 초원을 지나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몸을 날리기도 합니다.
가장 낮은 곳이 있다면 그곳을 향하여 내려가는 물의 특성은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상 동등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함으로 볼 때 헤롯 궁도 누추하기 짝이 없는데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리셔도 부족하신 분이신데 인류구원을 위하여 가장 천한 인간의 신분으로 사셨습니다. 30년간 목수의 아들로 그리고 목수로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왕궁으로 가셔서 왕과 귀족들에게 천국 진리를 말씀하시지 않고 가난하고 무식하고 천한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실 때에도가장 비참한 죽음을 선택究탉?강도들이나 달리는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우리들은 겸손하신 주님의 제자들로서 겸손의 주님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젊은 자들에게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고 충고합니다. 하나님이 대적하는 자가 된다면 인생은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비전 혁명이라는 책을 쓰신 유관지 목사님의 다른 글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유럽의 어느 교회에서 교회당을 설계하는데 믿음이 좋고 유능한 설계사에게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설계사가 설계를 해 왔는데 다른 것은 다 좋았는데 출입구가 매우 낮았습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낮게 설계했습니다. 교회에서 설계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설계사는 \"교회에 들어올 때는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부러 문을 낮게 설계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 설계를 채택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출입구가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낮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여러분 교회에 들어오실 때 마음의 머리를 숙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2. 극복의 영성입니다.
물은 어떤 난관이나 상황을 만나도 반듯이 극복합니다. 절벽 끝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던지는 모험가입니다. 두려움에 떨지 않고 오히려 무지개를 만들며 멋진 비행을 합니다. 바위를 만나면 넘어서던지 넘을 수 없으면 돌아갑니다. 바위 때문에 고통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위로 또는 옆으로 돌아갈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댐을 만나면 자신을 충만히 채워 오히려 넘쳐흐릅니다. 늪지를 만나면 조용히 스며들며 그곳을 지나갑니다. 물이 극복하지 못할 장애란 없는 것입니다.
물이 주는 이 유연성과 담대함은 그리스도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인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엄청난 차이를 성육식으로 극복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주님의 길을 사단은 다양한 방법으로 막았습니다. 주님은 사단의 방해 앞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극복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인류 구원의 사역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예수님에게 밀려올 때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시면서 십자가를 받아드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영성이 극복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향해서 달려갈 때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마다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빛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넘어갈 수 없으면 돌아가면 됩니다. 돌아갈 수도 없으면 땅을 파고서라도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방법이 없다면 기다리십시오. 땜을 만나면 자신을 충만히 채워 넘쳐흐르는 물처럼 내가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넉넉하게 뛰어넘을 것입니다.
육상경기 중 허들경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110미터 허들경기는 110미터 트랙에 설치된 높이 106.7cm의 허들 10개를 뛰어넘는 경기입니다. 이 경기의 특징은 우선 9.14미터마다 나타나는 허들을 계속해서 넘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 넘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넘어야 하고 또 넘어야 하고 경기 마칠 때 까지 계속 허들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기를 완주하려면 담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허들의 높이가 106.7cm인데 일반인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높이에 겁을 먹고 이 경기를 해 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두려움을 없애고 뛰어보면 웬만한 사람은 대부분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허들경기가 우리 인생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인생을 마치는 날까지 힘겨운 장애물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하나 끝났나 싶으면 어느새 또 다른 것이 나타나 힘들게 합니다. 계속해서 다가오는 인생의 장애물을 넘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장애물들은 하나하나 모두가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합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한 마음으로달려보면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애물들을 넘고 있을 것입니다.

3. 생명의 영성입니다.
물은 생명을 줍니다. 물 없이 살아남을 생명체는 없습니다. 다 시들어 가던 화초도 비가 내리면 다시 생기를 찾고 타들어 가던 잔디도 파랗게 움이 틔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루에 2750ml의 물이 필요합니다. 인체의 약 70%는 물로 구성되어 있고, 몸 안의 물이 1-2%만 부족해도 괴로움을 느끼고 5-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물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은 약 일주일정도입니다. 물과 음식 없이 생존한 기록을 살펴보면 세계최장기록이 1979년 호주의 안드레아 마하베츠가 세운 18일입니다. 국내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당시 19세였던 박승현 양이 세운 15일 17시간입니다. 중국에서 복음을 증거하던 윈형제의 사역 수기인 [하늘에 속한 사람]을 보면 윈형제는 74일간 물과 음식도 먹지 않고 버텼습니다. 74일간 물을 먹지 않고 살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무튼 물은 생명입니다. 물이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어 가는 모든 영혼들에게 생명의 물입니다. 수가성의 여인과 대화를 하시면서는 주님은 생명의 물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나는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주님은생명수이시며 생명의 물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자마다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합니다.
물을 많이 먹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제 큰 어머니는 80이 넘으셨는데 40대 피부를 가지셨고 잔병 없이 건강하십니다. 그분의 건강 비결은 물을 많이 먹는 것입니다. 하루에 두 말 정도의 물을 먹습니다. 몸이 부으면 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지식입니다. 몸이 부었을 때 물을 많이 마시면 몸 안에 물이 순환되면서 부기가 빠진다고 합니다. 간이 열을 받으면 몸이 피곤하고 약간의 열이 오르는 현상이 있는데 이런 경우도 물을 몇 잔 마시면 피곤이 사라지고 얼굴에 열기도 식어집니다. 영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성령과 말씀을 믿음으로 마시면 영적으로 신선해지며 영적 피곤도 사라지고 영적 건강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생수를 공급하셔서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생수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처럼 내가 복음을 전하면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수를 맛보아 아는 생수의 전달자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영생의 물인 복음을 저장만 하고 있는 저수지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영적 파이프의 역할을 위해 선택받은 것입니다.

4. 정화의 영성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물로 씻어 정결하게 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 장소에 올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씻을 수 없었다면 이곳에 오지 못했을 분도 있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교회 대청소를 하는데 만약 물이 없다면 대청소가 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바닥 청소를 할 때 세제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합니다. 물은 정화 작용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수를 주신다는 말씀은 예수 안에 정결과 성결의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고 말하고 곧 이어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되었든 다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중에 한 사람은 평생 못된 짓만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자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정결하게 하시고 영원한 세계로 받아드리셨던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물처럼 씻어 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성결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결한 우리가 성결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더러운 물로 깨끗하게 닦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깨끗해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능력 있는 삶 보다 깨끗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영혼이 깨끗한 목사이고 싶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깨끗하고 언어에 깨끗한 영성이 묻어나가는 목사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의 깨끗한 생수로 충만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주님의 생수로 정결과 성결의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5. 능력의 영성입니다.
물은 능력이 있습니다. 물은 긍정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물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수력발전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수력발전으로 얻어지는 에너지의 양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은 주로 식수와 공업용수 그리고 농업용수로 사용이 됩니다. 물은 부정적인 능력도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뿌려놓은 홍수로 1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2년 전체 어린이 사망사고가 1,252건이 있었는데 익사사고가 198건으로 15.8%였습니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의 능력으로 천지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능력을 지금도 우리들에게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주님은 긍정적인 능력을 나타내주십니다. 주님이 믿는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를 모든 환란으로부터 구원해주십니다. 주님을 향해 믿음의 반응을 하는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반응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대전에 사는 김홍선 권사의 간증입니다. 식품 가게를 하나 인수했는데, 하루에 음료수 두 세 병정도 파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머리는 계속 아프고 온 육체는 병들어서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농촌의 재산을 정리해서 사 둔 집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위기도 당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니 오직 하나님께 떼쓰며 기도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엔 무조건 교회로 달려가 밤새도록 기도하고 울며 매달렸다. 기도를 시작한지 3년이 다되어 갈 무렵, 큰 회개를 하게 되었고 성령의 충만함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몸의 병도 고침을 받았고 그 이후 가게도 잘 되기 시작하여 음료수 두 세병이 고작이던 가게의 하루 매상이 10만원, 30만원, 50만원으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큰아들은 바라던 대로 농촌지도소에 취직을 하였고, 막내아들도 한양대학교의 연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뻔했던 집도 40일 저녁금식과 작정철야기도를 통하여 해결 받았습니다. 글도 몰랐는데 하나님의 응답으로 성경도 잘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홍선 권사는 “예수님을 믿고 3년이 넘어도 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복을 받고 싶으면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주님을 거절하고 불신앙으로 반응하면 주님의 능력은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을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기다립니다.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들어갑니다. 영원한 심판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여러 가지 심판을 당하며 괴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분 안에 엎드려야 합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에게 능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공급받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우리 속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6. 유연함의 영성입니다.
물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모양이 없지만 담는 그릇에 따라서 다른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을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양을 만듭니다. 물을 네모란 그릇에 담으면 네모란 모양을 만듭니다. 어떤 모양의 그릇이든지 담기는 그릇에 따라서 모양을 달리합니다. 그런데 모양은 달라지지만 물의 본질은 그대로 있습니다. 모양이 바뀐다고 물의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물은 본질은 그대로 있으면서 그릇에 따라서 모양이 바뀌는 유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떠십니까? 주님은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을 구원하시기 원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시는 유연성을 가지셨습니다.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하신 분으로 일반 백성들에게는 가장 쉬운 언어로 말씀을 증거 하셨고, 성경을 좀 공부했다고 따지고 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에게는 감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까지 하시는 유연함을 가지셨습니다. 철저한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명까지 주실 만큼 사랑으로 충만하신 유연함이 그분에게는 있습니다.
주님의 유연함은 사랑에서 온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는 못 채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바다보다 더 넓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받아주십니다. 찬송가 404장에서는 하늘을 두리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표현 못한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유연함이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의 모습으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가진 복음의 본질은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닮아 유연함의 영성을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스폰지와 같은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스폰지는 누르면 누르는 대로 모양을 바꿔줍니다. 그런데 누르던 손을 떼면 다시 제 모양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서 시끄럽고 깨어지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맙시다. 내가 스폰지의 영성 물의 영성을 가진다면 누가 나를 쳐도 충돌은 없을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치면치는 대로 맞는 것 같아도 맞고 나면 다시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바다 같아지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받아줄 수 있고 무엇이든지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영성을 소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