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을 통해서 성령론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본문을 통해서 성령론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목회와 신학에서

대담 5

성경본문을 통해서 성령론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약은 성령을 어떻게 말하는가」의 저자 이한수 교수와의 대담

진행/ 홍영록 「목회와신학」기자

사실 시중에는 성령론에 대한 책들이 넘쳐 나고 있다고 할 만큼 많이 책이 이마 출간되어 있는데요 다시 성령론에 대한 책을 쓰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한국교회 안에 성령론에 대한 조직신학적인 책들과 경건주의적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바르게 성령론을 정립하려면 성경본문 자체에서 탐구하고 연구한 책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신학자로서 제대로 된 학문적인 접근방법에 근거해서 성령론을 연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성령론의 혼란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미 이 주제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책들이 출간되어 있는 상태에서 새로 이러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저자에게 부담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로서 이 책의 특징으로 강조하고 싶으신 점이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이 책의 특징은 아무래도 성경신학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무시간적인 접근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 차이를 두지 않고 접근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바울의 성령론에 대해 성경신학적인 접근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신약의 성령이해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성령론을 탐구하고 그 다음에 현대 독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영성에 대해서도 뒷부분에서 다룬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책의 내용 중에서 진정한 영적 성장을 도모하려면 균형잡힌 성령이해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진정한 영적 성장을 도모하려면 균형 잡힌 성령이해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 교회에서는 그 균형이 여기 저기서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의 첫 부분에서는 삼위일체 신론에 근거하여 영성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너무나 성령위주의 사역이 되다 보니까 그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있어서 삼위일체적으로 어떤 기초 위에서 성령이 활동하시는지 혼란이 있는데, 사실 바울은 성령님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했거든요.

요즘 성령론을 보면 예수님이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 대한 언급은 거의 안하고 성령님만 언급하거든요.(웃음)

그 다음에 성령세례, 오순절교단과 장로교 사이에 갈등이 있고 이해에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세례라고 하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힘과 관련되어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오순절 교단은 사도행전을 좋아하고, 장로교는 바울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썼습니다.

성령론을 정립하는데 걸림돌이 있다고 하셨고, 그 해결방안의 하나가 해석학적 순환의 노력이라는 언급을 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성령론을 정립하는데 걸림돌이 있는데, 첫 번째는 너무나 교리적인 전제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교리적인 테두리를 암묵적으로 밑에 깔고 소위 자가 생산적인, 자기가 확신하는 전제를 재확인하는 그런 성령연구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경건주의 서적을 보고 자기 경험을 우선하는 그래서 너무 은사 쪽으로 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성경본문을 통해서 성령론을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존 교의신학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교의신학적인 패턴을 가지고 본문에 들어가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본문 자체를 통해서 내가 가진 조직신학적인 믿음이 맞는지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두드려보는 해석학적인 순환과 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에 기초한 성령이해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구약과 유대교의 성령이해의 핵심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구약과 유대교가 갖고 있는 성령이해의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그 인식 위에서 성령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로 사역, 예언의 영으로서의 성령론을 강조하게 되고 카리스마적인 측면이 강해졌습니다.

구약과 유대교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말씀의 지혜를 얻게 된다든지 카리스마적인 활동을 한다든지 기적을 행한다든지 이런 쪽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흐름을 나타내는 카리스마적인 활동을 하는 구약의 성령을 예언의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언약의 영이라든지, 새창조의 영이라든지 하는 이해도 있지만 유대교의 주된 이해는 예언의 영으로서의 성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적인 예언의 영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한 것은 결국 이스라엘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받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행동하는 데 있다기보다 카리스마적인 데 있지만 예언의 영은 구원론 지향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성의 형성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능력있는 말씀의 선포로 듣는 자들이 자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패턴이 누가나 심지어 바울에게도 흔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과 요한과 누가의 성령이해에 있어 그 차이점과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세 성경저자의 성령이해가 신약에서의 전체적인 성령이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교의학적인 성령이해에 어떤 도전을 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이방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구원론적인 이해를 갖고 있으며 구원받는 것 자체가 성령으로 되어지는 일이라는 이해를 보여줍니다.

누가는 저술 목적 자체가 제자들이 나가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선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예언적 영의 활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걸 가지고 예수께서 하시던 구원사역을 지속해 나가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90년대에 이방인이 많아지던 시대에 재림이 늦게 온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고 자신들은 고아처럼 버려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성경을 쓰게 됩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것처럼 보이지만, 보혜사 성령을 통해 임재하시고, 과거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요한의 성령론은 예수님의 임재를 보혜사 성령이 지적하신다는 쪽에 특징이 있으며, 요한의 성령론은 계시신학과 관련이 깊습니다.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게 된다는 점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세 성경저자가 가진 성령이해의 공통점을 책 후반부에서 다루고 계신데요, 그 공통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다양성과 깊은 구조 속에서도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위일체 신론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예수의 구원사역과 깊이 연관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언약부터 언약사적으로 성령이 왜 오시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면이 있는데 요한과 누가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도 지금 성령이 예수를 통해 오순절날 오시게 되었는데 이 성령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어져 있는 분이라고 지적합니다.

유대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유대교는 유일신론, 배타적인 유일신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신약으로 오면서 예수님과 성령에 독립된 인격을 부여하게 되는데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시고 메시아로 활동하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셔서 임금과 구주가 되시고 올리심을 받으셔서 아버지에게 성령을 받으셔서 땅위의 제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일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없으면 성령을 못 받아요.

예수님의 사역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운동은 다 예수의 운동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적인 깊은 구도가 공통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는 민감하고도 논쟁이 많았던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교수님이 보시기에 성령의 은사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은사문제는 민감한 부분이라고 하는데 저는 성경에 있는 대로 갑니다.
성령의 세 가지 중심적인 사역이 있는데, 구원론적인 사역이 있고 또 구원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봉사하게 하는 카리스마적인 은사사역이 있으며, 세 번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닮아야 하는 거룩하게 윤리적으로 변화시키는 윤리적인 사역이 있습니다.

마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성령의 은사 중, 방언과 예언만을 은사라고 생각하는데 교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은사에 해당합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오는 전도사님들에게 당신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라고 소명을 묻는데 그러면 소명을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저는 은사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 하나님께서 일하는 목사로 부르셨다면 일상생활을 통해서 일할 수 있는 다양한 능력, 이것이 은사인데 이것으로 소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은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말씀을 선포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뭐 은사가 필요하냐 말씀만 잘 전하면 되지 라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말씀을 잘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은사입니다. 은사에 있어서 오늘 한국교회가 이런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은 교회라는 삶의 정황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균형을 강조하시면서 책의 결론을 마무리하셨는데요, 일선 목회자들이 그런 균형을 갖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학은 교회라는 삶의 정황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일선 목회자들이 이런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삼위일체 신론의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 구원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균형성이 있습니다. 오순절 교단의 성령세례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사항은 구원경험입니다. 그 구원경험에 기초해서 은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은 한 마디로 영성의 출발점이지요. 그것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주의자들처럼 구원받은 무리가 따로 있고, 그들이 제2의 축복이라고 하는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을 구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 공동체에게 주신 보편적인 은사경험이 희석 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 또 다른 교회가 형성되고,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고, 성령 세례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은사를 다양하게  주시는 것은 한 몸된 교회론을 세우고 유지하며 덕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균형성이 깨지면 안된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소위 윤리와 은사와 균형성인데, 오순절 교단은 한 쪽으로 치우쳐서 사랑이라든지 예수님을 닮아가는 윤리적 덕목을 무시하는 데로 가고, 또다른 극단에서는 윤리를 너무 강조하다가 은사를 부정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것은 문제입니다.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또 영광의 신학과 십자가 신학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영광의 신학은 예수 믿고 복 받고 형통하고 성공하는 그런 신학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젊은 지도자들 중에 너무나 영광의 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분명히 복음에 영광의 신학이 있기는 있지만 십자가 신학의 기초 위에 영광의 신학이 있는 것이지 십자가 신학이 없는 영광의 신학은 공허하고 빈 신학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당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내가 희생함으로 남이 살아가는 이런 구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낮아지심으로, 고난 당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높이신 것처럼 이런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오늘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복음, 너무 성공 지향적인 복음이 아니라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영성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종말론적인 신앙의 균형이 있는데, 이미 천국이 이루어 졌다는 것만 강조하면 죄의식이 흐려집니다. 천국이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천국은 미래에 있기 때문에, 이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투적인 삶과 악과의 싸움이 필요하다는 이런 균형성이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고, 감성주의와 지성주의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너무 감성주의로 가다가 계시에 대한 인식의 내용이 희박해지는 잘못을 범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교회들의 문제점은 감성주의를 무시하고 지성주의입니다.

어떤 교리적인 명제만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기쁨과 감격으로 우리 삶을 전인격적으로 포용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이런 균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균형성이 오늘 한국 교회에 전반적으로 깨어져 있다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었습니다. 이게 제 책의 전체 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