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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하게 되면 보통 그 해에 추수를 합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게 되면 마찬가지인데, 다만 그 한 term이 길다는 차이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사람의 마음밭에 뿌리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뿌리시기 전에, 밭을 귀경하여 굳어진 밭을 부드러운 밭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물을 주고 가꾸게 하십니다. 또한 하늘문을 열어 비를 내시고 태양을 비추십니다. 그 말씀은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때가 이르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떤 왕은 나라의 기초를 놓고 인생을 마칩니다. 다른 왕은 기초위에 조금씩 번영합니다. 몇 대가 지난 후에 영웅이 나와서 나라를 제국으로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왕위를 계승한 왕들은 건설된 제국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도시전체가 아주 유명한 관광지인데, 그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입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77년 빌랴르의 설계되어 건축되다가 1883년 그의 제자 가우디가 건축을 맡은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131년째 건축되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하나님은 건축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으로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심으신 언약의 말씀은 수백 년에 걸쳐 기둥이 세워집니다. 특별히 430년 애굽의 종살이 기간 동안에는 버려진 건축물처럼 방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어 건축을 다시 시작하여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습니다. 여호수아세대에 이르러서 건축은 완성되었고, 사람이 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우리는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존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합독한 한 구절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선언하는 동시에, 여호수아서 전체 내용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합독하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수11:23)
여호수아서를 크게 나누면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부터 11장까지 정복에 대한 이야기와 12장부터 마지막 24장까지 배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3절은 이 두 가지 이야기의 요약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여호수아가 온 땅을 정복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이스라엘지파들에게 분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조금 살을 붙이자면,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거룩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과 그 언약에 대한 하나님백성의 충성된 헌신으로 이끌어진 위대한 승리를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위대한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군대의 가나안정복은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로 이어집니다. 해안의 고원지대, 중앙고원, 요단골짜기와 요단 동편의 고원으로 이어지는 지역들은 한 지역도 지나치지 않고 모두 정복한 것입니다. 12장에서는 모세가 정복한 요단동편의 두 왕국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여호수아가 정복한 요단 남부가나안 16왕국과 북부가나안 15왕국의 31명의 왕들의 이름이 차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험난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교회의 젊은이들 15-20%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사회 전반적으로 기독교의 신뢰도가 3대종교가운데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 역시 최하위입니다. 반기독교적인 공격적인 성향이 지난 아프칸피랍사건를 기점으로 공개적이 되었고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요단동편의 2왕국과 요단 서편의 31왕국을 정복한 여호수아의 리더십과 충성된 이스라엘군대의 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러한 시대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약속의 땅을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성취시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에게 문화명령(culture mandate)을 주십니다. 문화명령을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1.2. 땅을 정복하라 1.3.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것은 한 마디로 ‘다스리며 지키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여기서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다’는 ‘경작하며 돌보다’라는 의미의 ‘cultivate and guard\'로 다른 버전에서 번역됩니다. 특별히 ’다스리다‘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아바드‘로,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예배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후에 헬라어‘라이투르기아’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목적으로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예배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목적으로 성전에서 예배드리며,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출1:14)
위의 구절에서처럼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본성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린 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찬양대에 서고 봉사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하고 싶지 않은 고역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예배의 대상을 바꿔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섬기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채우고 눈에 보이는 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소유로 만들어버리고, 명예와 권세를 누리고 자랑삼기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10:12)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1:9)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원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려지는 삶이 하나님 받으시는 삶의 예배입니다.
2.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세대가 비전의 세대라면, 모세의 세대는 열정의 세대이고, 여호수아세대는 성취의 세대입니다. 비전-열정-성취 이 과정을 거쳐 역사는 이루어져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꿈꾸는 비전의 세대였습니다. 누군가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꾸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모세의 세대는 아브라함이 꿈꾼 비전을 향하여 열정을 가지고 나아간 세대입니다. 열정을 가진 자가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다음세대인 여호수아세대는 열정적인 비전을 성취하는 세대입니다. 열정적인 비전에 충성됨이 뒷받침 되어야만 비전은 성취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저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6:11-13)
우리는 하나님께 ‘어느 때까지입니까?’ 라고 묻곤 합니다. 역사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나가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공동체의 중보기도와 격려와 보호가운데 하나님의 일들을 마음껏 펼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씨가 남아있는 한 그 공동체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그루터기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열방을 위해 제사장나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대영제국과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당연시되던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하셨다!’라고 외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1787년 28세의 하원의원 월리엄 월버포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노예를 해방시키라는 사명을 받게 됩니다. 당시 노예무역은 국가수입의 1(2)/3을 차지할 정도로 영국의 식민지산업의 기둥이었습니다. 기득권층의 협박과 중상모략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신뢰하면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매일 아침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친밀감을 키워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비전을 마음에 새기고 열정적으로 헌신하여 결국 46년 뒤 1833년 노예제도 폐지 법안이 통과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소명으로 받고, 열정적으로 앞을 향하여 전진한 월버포스는 하나님의 비전의 성취를 본 후 10일후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한 나라를 향하여, 아니 전 세계를 향하여 위대한 승리를 거둔 윌리암 월버포스의 뒤에는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늘 격려하며 함께 했던 클래펌공동체가 있었습니다.
한국기독교 120년, 3세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세대가 바로 여호수아세대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기독교 1세대가 꿈꾸던 비전이 꿈을 상실하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조선 땅에 빛과 소금이 되어 인재를 키우고 국가의 빚을 갚고자 하였고 이 민족의 독립을 이끌었습니다. 기독교 2세대는 열정적인 비전으로 경제적 부흥과 영적 부흥의 세대였습니다. 수많은 기독학생운동(SVM)속에서 복음주의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던 대학생선교단체들이 이제 희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50년의 반세기 복음주의학생운동은 이제 새로운 여호수아세대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비전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비전부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대가 비전부재시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비전과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비전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비전은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행복을 위한 성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하여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행복을 위한 성공을 삶의 목적으로 선택하라고 계속해서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 교육, 미디어와 연예, 정부, 스포츠와 예술, 그리고 기업의 7M의 모든 영역을 통하여 달콤한 음성으로 속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세상의 달콤한 속삭임에 젊은이들이 모여듭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물질이 따라오고 명예와 권세는 당연히 따라옵니다. 또한 물질과 명예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착각의 최면술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낼 만한 능력과 지혜를 기독청년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세상에 나아가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은 산을 오르게 될 때, 어느 지점에 이르면 기압에 적응하기 위하여 ‘고소순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나갈 때, 세상의 조류에 맞서지 못하면 세상에 ‘고소순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던져지는 비전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전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분별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우리를 감싸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그것은 세상에게는 비밀이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감당해야 하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엡1:18b)
사도바울은 보혜사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험하고,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위해 기도한 후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삶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되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창조주하나님께서 바로 나를 이 땅에 필연적으로 태어나도록 하셨고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 우리의 삶의 방향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열국의 아비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여 세우신 언약입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4-7)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존재하도록 하신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나갈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요 섬김이요 봉사요 헌신이요 양육이요 훈련이요 사역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기억하십시오. 우리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며, 때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알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 회복의 변혁을 일으켜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치열한 삶의 선택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에 대한 영어번역을 보면,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e world\'입니다. 직역하면 세상의 유행에 더 이상 순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길들여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어떤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종합적인 인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틀걸이‘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여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상적으로 말씀의 선명한 기준의 ’틀걸이‘와 보다 행동적으로 성경적인 ’틀걸이‘를 가지고 있어야 세상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사이에서 가치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삶이 혼돈과 무질서의 세대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순응하지 말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라고 말합니다. 직역하면 마음이 새롭게 회복됨으로 변혁되라는 것입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회복의 변혁이 세상의 변혁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회복의 변혁이 세상의 회복의 변혁으로 확장되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의 신앙공동체를 거치게 됩니다. 믿음의 신앙공동체는 마치 ’스펙트럼‘과 같아서, 회복의 영성이 공동체의 ’스펙트럼‘에 투과될 때 세상의 7M의 영역으로 흘러나가 변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회복의 영성이 신앙공동체의 스펙트럼을 통과하면서 7가지 색으로 가정, 교회, 교육, 미디어와 연예, 정부, 스포츠와 예술, 그리고 기업의 7M영역을 비추게 되어 transformation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민족의 transformation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회복과 번영, 부흥을 넘어 변혁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