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
이스라엘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승리하였습니다. 여호수아군대는 여리고성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하고, 아이성에서의 패배를 교훈삼아 다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가나안정복을 뒤로 미루고, 가나안땅의 중심에 있는 에발산으로 이동합니다. 아이성을 정복함으로 벧엘로 올라가는 길목을 얻었고, 중앙고지대를 따라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능선을 지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이미 확보하였습니다. 이 승리의 기세를 몰아서 한 걸음에 가나안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뒤에 여호수아는 갑자기 가나안정복을 향한 행군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전략적으로 상관이 없는 가나안중앙지대인 그리심산과 에발산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말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여호수아는 가나안정복을 멈추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자신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여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자로 세우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로 변화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어떤 예배자인지를 나누기 전에, 먼저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의 정의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 예배의 3가지 정의
1.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우리말에서 문자적으로 보면 ‘예를 갖추어 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는 세 가지 다른 단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1. 섬김과 봉사의 예배입니다. | 출1:14,신10:12,롬1:9,롬12:1,빌2:17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아밧’은 ‘봉사하다’, ‘섬기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의 헬라어 ‘라이투르기아’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목적으로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예배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목적으로 성전에서 예배드리며, 예배를 잘 드리도록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은 주인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종으로서 주인을 섬기며 봉사할 때,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기쁨을 위하여 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인을 기뻐하는 종이 되어야 종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종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세상의 주권자이시고 만유의 주재이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기며,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결정하시도록 삶 전체를 그 발아래 내려놓으십시오. 정말 우리의 생명과 인생을 걸만큼 가치 있는 결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특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순복과 경배의 예배입니다. | 시99:5,요4:20-24
구약성경의 다른 히브리어단어 ‘샤하’는 ‘굴복하다’,‘복종하다’, ‘엎드리다’, ‘순종하다’,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프로스큐네오’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위 앞에 완전히 순복하며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 순종과 복종을 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드리며 엎드려 그 발에 입 맞추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앞에 완전히 순복해야 합니다. 순복이란 순종과 복종을 말합니다. 순종은 이성으로 동의되고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행하는 것인데, 복종은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기쁨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요 말씀이기에 그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순종을 뛰어넘어 복종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면 악한 영은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빛으로 빛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어둠과 사악한 영은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결정권을 드려야 합니다. 세계경영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 가정과 교회를 주관하시도록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보좌, 가정의 가장이 되시도록, 교회의 당회장이 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시며, 가정과 교회, 민족과 열방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이미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이루어 나가는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고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민첩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지 못한다면, 절대로 교회와 민족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조력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여기저기서 부딪치고 소리만 요란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시기와 질투를 교묘하게 포장하여 이간시키고 교회를 위한다는 거룩한 위선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약 중직이라면 중직들의 마음을 격동시켜서 여러 갈래로 찢어놓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약 목회자라면 목회자들의 마음을 분열시킬 것입니다.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목적이 역할보다 중요하는 것을 항상 기억합니다. 개인의 역할보다는 공동체의 큰 목적이 우선되기에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습니다. 큰 그림을 본 사람은 공동체를 위하여 더 빨리, 더 기쁘게, 더 많은 헌신을 합니다. 당신은 현재 당신 자신보다 더 큰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역할보다 더 큰 공동체의 비전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복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정확히 알아서, 교회와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을 이루어드리는 조력자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 경외와 존경의 예배입니다. | 신6:13,렘32:39,마15:9,행18:13
구약성경의 또 다른 히브리어단어 ‘야레’는 ‘경외하다’, ‘존경하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헬라어‘세보마이’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 앞에 심령의 중심으로 경외와 존경을 올려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배란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며 경외할 수밖에 없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우리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산을 바라보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의 차이입니다. 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두 가지의 개념이 있습니다. 헬레니즘 개념과 히브리즘 개념입니다. 헬레니즘 개념은 이성적인 동의이며 지적인 추구입니다. 이성적인 앎으로 이데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즘 개념은 다릅니다. 경험된 지식이며 체험적인 깨달음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과 김윤옥영부인이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제가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은 인터넷과 신문을 통하여 알고 서울시장을 마치고 대통령으로 출마하기 전에 3명의 목사들과 함께 1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눈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김윤옥영부인이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은 수 십 년 동안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식습관과 잠버릇부터 그 내면의 인격까지 속속들이 아는 경험된 앎입니다. 이것이 바로 헬레니즘의 앎과 히브리즘의 앎의 차이이며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진정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 요4:23
하나님의 계명인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 전인격을 거룩하게 보존시키도록 이끌어줍니다. 이 땅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천국에서도 계속되어질 영원한 가치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성령과 진리로 온전히 드리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에 만나지는 저와 여러분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에 만나져서 신령한 능력과 지혜를 힘입는 저와 여러분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어떤 예배자에게 하나님의 눈이 향합니까?
◉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예배자입니다. | 30
아이성에서의 위대한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계속해서 가나안정복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모세가 명한 가나안땅의 중심부인 에발산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8:30)
여호수아에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더욱 중요하였습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것보다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인생 최고의 가치를 두었습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과연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습니까?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공동체의 부흥을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에 얼마나 많은 예배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예배드리기 위하여 이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연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성가대이기 때문에, 중직이기 때문에, 자신과 가정 그리고 사업의 번영을 위하여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성령하나님의 임재가운데 감격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린 때가 언제가 마지막입니까?
예배에 최고 가치를 두는 예배자는 예배를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이며, 성령하나님의 임재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2.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예배자입니다. | 31-32,신11:26-32,27:1-8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말씀이 바로 기준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지정한 장소에서, 지시한 방법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 그대로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31a)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33b)
신앙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둘로 나누어집니다. 신앙의 기준에 따라 둘로 나누면 인본주의신앙과 신본주의신앙입니다. 인본주의신앙은 사람의 기쁨이 삶의 기준이며 신앙의 우선순위입니다. 신본주의신앙은 하나님의 기쁨이 삶의 기준이며 신앙의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의 기쁨도 되고 사람의 기쁨이 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하나님의 기쁨과 사람의 기쁨은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반드시 격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본주의신앙은 하나님의 기쁨과 사람의 기쁨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버리면서라도 사람의 기쁨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본주의신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만 한다면, 사람의 기쁨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사람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눈이 향하고 하나님의 비전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늘의 지혜가 위로부터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기준인 사람은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인생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기 원하는 그 일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계획이 있습니다. 가치가 있든지 가치가 없든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우리 각각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 있는 마이크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목적 없이 존재하겠습니까? 내 계획,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악착같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부탁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은 예배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에 사람의 스케줄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3. 말씀을 행하는 삶의 예배자입니다. | 31-35
예배는 공예배와 삶의 예배가 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공예배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말씀과 교리를 따라서 공동체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삶의 예배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광야의 40년을 마치고 건널 수 없는 강 요단강을 건너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인 여리고성에서 위대한 승리를 경험한 뒤, 아이성에서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당한 뒤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버린 여호수아는 이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든 행진을 멈추었습니다. 행진을 멈추고 약속의 땅 가나안전체를 볼 수 있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도착한 여호수아는 이제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지나온 40년의 역사를 가르치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신세대에게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도록 가르칩니다. 또한 가르쳐진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나가도록 삶의 예배자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여호수아는 번제와 화목제를 다듬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큰 돌 위에 드립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에발 산 한 봉우리위에서 돌단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가로 약 7.5미터 세로 약 10.5미터 되는 돌 구조물로 주변에는 자연석으로 된 두께 1.5미터 높이 2.7미터의 담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그대로의 돌을 사용함으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마음의 태도가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있는 모습그대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번제는 예배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흠 없는 소, 양, 염소, 비둘기 등을 완전히 태우는 제사로 흠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내어주신 속죄의 제물처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화목제는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과의 화목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구원과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로, 짐승을 드리는 자가 직접 안수한 뒤에 도살합니다. 가슴과 오른편뒷다리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과 짐승을 드린 자가 함께 교제하며 먹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고백하며, 하나님과 화목 그리고 제사장과 화목을 도모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가로 7.5미터 세로 10.5미터의 큰 돌단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그 돌 위에 모세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정으로 새깁니다. 그 후에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산의 기슭에 서고 나머지 절반은 에발산기슭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사이의 골짜기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둘러싸고, 여호수아는 율법을 조목조목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면, 그리심산의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저주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면, 에발산의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극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퍼지게 되고 아멘소리가 메아리쳐 울림으로 신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을 다짐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예배를 드린 뒤에 하나님의 언약을 이스라엘공동체로 하여금 새롭게 갱신하도록 합니다. 새로운 세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결단의 마음을 다짐시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결단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들은 그 말씀의 뜻과 의미를 깨닫고, 깨달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깊이 묵상된 말씀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를 고민하며, 고민한 말씀의 적용을 행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찾으시는 하나님의 눈에 만난바 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가운데 임재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사람의 스케줄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삶 가운데 세상의 풍조와 흐름을 거슬러 살아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를 통하여 교회가 변혁되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하나님께로 나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