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간의 도적질로 이스라엘백성은 정말 어이없이 아이성에서 패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의 첫열매로 요구하신 여리고성에서, 아간은 바빌로니아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 백 세겔, 금 오 십 세겔을 훔쳐서 자신의 장막 땅 아래에 묻어놓았습니다. 한 명의 불순종이 온 이스라엘로 수치를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패배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마음은 광야처럼 생명력없이 메말라버렸습니다.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갈래갈래 흩어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모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로 만들어나가기 위하여 먼저 이스라엘 공동체를 정결케 하십니다. 공동체가 정결해야 성령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상과 철학으로 하나 되어 지면, 언젠가 반드시 또 다른 사상과 철학 때문에 분열이 생깁니다. 정결함 속에서 성령으로 하나 된 후에 백성의 시선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집중시키십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시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승리의 언약을 회복시키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 승리와 부흥을 허락하시기 전에 정결함을 요구하십니다. 정결함 뒤에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정결하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면 그 심령은 말씀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정결케 하신 심령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말씀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을 회복시키시고 성취시키십니다.
큰 산과 같은 위험과 사건을 만나서 마음이 광야처럼 메말라 버렸습니까?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갈라져 버렸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패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을 보면, 실패한 것처럼 여겨지십니까? 오늘 여호수아가 패배를 딛고 일어나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여호수아가 걸려 넘어진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아 위대한 승리를 어떻게 경험하였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회복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아이성에서의 승리를 결정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승리는 이스라엘공동체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아이성의 전쟁을 새롭게 디자인하십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공동체가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승리의 2가지 원리를 함께 살펴보고 교훈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승리의 2원리 : 하나님의 전쟁,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1. 관계의 원리;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라! | 7: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7:26)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합니다. 자기가 조금 피곤해도 상대방이 기뻐한다면 희생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힘들어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이야기할지라도, 마음 중심으로는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 필요를 채워줍니다.
부모가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서 채워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가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면, 그 아이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녀가 원할지라도 부모는 자녀에게 필요한지 여부를 분별해서 채워주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원하는 것이 성도에게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성도들이 아주 간절히 원한다할지라도, 목사는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를 말씀의 기준으로 분별한 뒤에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런 목사가 바로 참 목자입니다. 당회장목사님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기에 대한민국에 대한 바른 판단력을 갖도록 정치이야기를 하십니다. 또한 성도들이 축복받기를 원하시기에 십일조와 헌금과 헌신에 대하여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기만 하면,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성인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성인아이는 육신의 나이로 볼 때 성인이지만, 정신적인 성장이 어느 순간 멈추어 버린 장년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신앙생활을 한 기간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영적 성장이 멈추어버린 재직과 중직을 말하는 것입니다. 헌신이나 봉사한 기간으로 볼 때는 영적으로 장성한 자에 이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영적 성장이 멈추어 버린 성인아이가 교회에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는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죽은 나무입니다. 나무가 죽으면 열매 맺지 못하고, 악취가 나고 벌레가 가득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그 어떤 헌신을 한다할지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교회에서 봉사하면 할수록 악취가 나고 세속적인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게 됩니다. 두 번째는 병든 나무입니다. 병든 나무는 잎은 무성한데, 가까이 가보면 줄기가 휘어져 있고 잎사귀들은 얼룩져 있고 군데군데 썩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성도들은 말은 잘하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온 맘이 꼬여있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하며, 마음에 평안이 없이 걱정과 근심으로 얼룩져서 주변 사람을 물들이고,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세 번째, 어린 나무입니다. 어린 나무는 성장하기 위하여 모든 양분과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다른 존재들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보다는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자라납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는 부드러운 젖만을 먹습니다. 자기 입맛에만 맞는 단 것만을 먹지, 약이 되는 쓴 것은 뱉어냅니다. 부서의 성장보다도 자신의 자존심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부흥보다도 자신의 감정이 우선됩니다.
만약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강요하고, 자신의 필요만을 채워달라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그 마음을 바로잡든지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평생 동안 일방적인 사랑만하다가 사는 불행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자신보다 상대방의 필요를 서로 채워주려고 하고 자신이 조금 피곤하더라도 상대방이 행복하도록 서로가 배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보다 커서는 안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면 그 사랑은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명을 저버린다면, 그 또한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 때문에 교회와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하나님도 당신을 멀리할 것이고 당신의 가족을 소홀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회와 성경과 하나님의 사람을 점점 더 가까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애써서 하려고하고, 싫어하는 것을 발버둥치며 거절하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좀 멀어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이시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가운데 스며든 아간의 범죄를 잘라내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회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악을 회개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 보혈의 은혜를 통하여서 모든 죄악이 사함을 받고 우리의 호적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환경과 범죄도 천국에서 지옥 방향으로 단 1mm도 이동시킬 수 없습니다. 단 성령을 훼방하는 죄악은 사함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을 경험하고 그 은혜와 은사를 받았던 사람이 배도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하나님처럼 여기도록 가르치는 죄악은 절대로 죄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삶 속에서 죄와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삶을 살면서 눈으로 범죄하고, 입으로 범죄하고 마음으로 범죄하고, 손과 발로 범죄합니다. 육신의 장막가운데 있는 그 누구도 죄의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항상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성에 대한 성적인 욕망과 보기에 좋은 것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는 안목의 정욕과 이 땅에서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는 이생의 자랑에 우리는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죄악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이 내주해 계신 우리의 삶은 점점 죄의 유혹과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 성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나가며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표현하면, 세상의 어떤 책을 보는 것보다 성경책 보는 것이 가장 좋고, 세상 어디를 가는 것보다 예배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오는 것이 행복하고, 산과 바다로 놀러가는 것보다 수동기도원(아차산으로 산기도)가는 것이 더 기분 좋고, 세상에서 술과 담배먹는 것보다 구역예배(소그룹시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더 기쁘고, 세상에서 파티(소개팅)에 나가서 친구(애인 삼는)를 사귀는 것보다 선교지에 나가서 방황하는 심령을 만나는 것이 더 설레야 하며, (학교에서 교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직장에서 사장님을 만나는 것보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 더 기대되어야 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만약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과 동일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있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공동체가 범죄를 해결받자, 하나님께서 격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온 이스라엘 공동체는 새로운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시종으로 있을 때부터 지도자로 세워지면서까지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귀한 레마의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수8:1)
모세로부터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보내실 때 선포했던 말씀을 여호수아가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신1:21)
또한 40년 뒤에 모세에게 리더십을 위임받으면서 여호수아가 들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또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직접 말씀하신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수1:9)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격려의 말씀을 반복하셔서 말씀하심으로,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해 내도록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레마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레마의 말씀은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주는 능력의 말씀이 됩니다.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신뢰의 통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목도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사람낚는 어부였던 수제자 베드로는 이제 디베랴 바다로 가서 고기 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며 배신한 깊은 상처를 가지고 바다에서 그물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초점 잃은 눈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에게 심방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 쪽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면서, 3년 전 예수님과 처음 만났던 그 장면을 다시 재현하십니다. 주님인줄 알고 도망가려던 베드로를 위하여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스테이크를 구워주시면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죄송함으로 떨고 있는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다시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말씀하신 뒤에,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한 번 더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근심하면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답한 베드로를 향하여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부인한 깊은 상처에 시달리고 있던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의 고백을 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세 번의 사랑고백은 세 번의 깊은 상처를 상쇄시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회복되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고백을 통하여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이제 다시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회복시키며 인격과 직분을 회생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뒤로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법정에서,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라는 진리를 목숨을 걸고 선포합니다. 사나 죽으나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으로 바꾸어집니다. 예수님을 위해 로마에서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고 범죄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여 떠났다할지라도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확고하면 용서와 회복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이렇게 격려해 주기 원합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좌절과 실망 속에서 낙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는 말씀을 다시 상시시켜 주십니다. 절망가운데 주저앉아있는 자신의 백성에게 다시 일어나도록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하게 주지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에서와는 달리 아이성에서의 모든 전리품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하도록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헤렘을 선포한 여리고성을 제외한 아이성에서부터 모든 가나안 성읍의 전리품들을 마음껏 취하여 풍성한 삶을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땅에서 살면서 필요한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채워주십니다.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의 승리와 풍성한 물질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정말 아간과 그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희비가 교차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간이 탐욕과 범죄의 유혹을 조금만 더 참고 물리쳤더라면, 아간과 그 가족들 모두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유혹과 탐욕을 조금만 더 참고 물리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함으로 견디어내면서 선하신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전쟁의 승리와 풍성한 물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순종의 원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다 | 2,8,27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8:8)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8:27)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전략으로 아이성과의 전쟁을 이끌어 나가십니다. 여리고성에서의 승리가 전적인 하나님의 기적의 작품이었다고 한다면, 아이성에서의 승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공동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데 어떤 틀에 박혀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유한한 경험의 틀 안에 하나님의 무한한 경륜을 담아내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성을 함락시킨 하나님의 디자인은 참으로 전략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군대를 세 군영으로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군영은 3만 명으로 밤사이에 성읍 서쪽으로 이동하여 숨어 있다가, 아이성의 군대가 성을 비우면 쳐들어가서 불을 지르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두 번째 군영은 다음날 아침 길갈을 출발하여 아이북쪽 평지에 진을 친 주력부대로 여호수아의 지휘아래서 아이성의 군대를 성 밖으로 유인해낼 임무를 맡았습니다. 마지막 진영은 5천 명으로 아이를 돕기 위해 올지도 모르는 벧엘의 지원병들을 차단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러한 역할분담에 따른 전략은 성공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위대한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고, 위대한 승리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넘어지고, 실패하고, 패배하였을지라도, 우리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나아가면 반드시 위대한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성과의 전쟁에 직접 진두지휘하십니다. ‘너는 성뒤에 복병할지니라’(8:2),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8:18) 하나님께서는 또한 여호수아로 하여금 아이성의 거민을 멸하기까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게 함으로, 여호와닛시의 하나님임을 선포하십니다.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지팡이를 손에 들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군대를 지휘할 때,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팔을 계속 들고 있음으로 위대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모세에게 승리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여호수아에게도 위대한 승리를 주십니다. 절망과 낙담의 골짜기를 뛰어넘는 승리였기에 더욱 위대한 승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절망의 골짜기를 뛰어넘은 위대한 승리가운데 시종일관 흐르는 신앙이 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신앙!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