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패베

제11강 패배 (수 7:1~13)

우리는 여리고성의 전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도권을 가지셨구나!’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장한 군인이 각 지파의 깃발아래 행진하고 그 다음으로 나팔든 일곱명의 제사장이 따르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나아가고, 마지막으로 후방을 담당한 부대가 뒤따르며, 여리고성을 돌기 시작합니다. 여리고성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이스라엘의 진으로 돌아가기를 6일 동안 매일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비이성적인 전투전략입니다.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통과하면서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왔고 지휘해왔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런 전략은 한마디로 망하는 전략입니다. 말없이 여리고성을 돌고 있는 군인과 하나님의 법궤를 둘러맨 제사장의 무리를 향하여, 성벽위에서 화살을 마구 쏘아대기라도 한다면 전쟁은 패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너무나도 잘 아는 여호수아는 아무런 질문이나 대꾸도 없이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릅니다. 7일이 되는 마지막 날, 여리고성을 7바퀴 돌고난 제사장무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축제의 나팔과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넘어질 수 없는 두께 1미터, 높이 4.5미터의 돌로 된 방벽위에 다시 2.4미터 정도의 진흙벽돌을 쌓아올려 총 약 7미터의 높이를 가진 거대한 성벽, 게다가 7미터의 벽 뒤에는 다시 경사지게 만든 4.5미터의 회반죽벽이 든든히 받치고 있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 여리고성의 성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 놀라운 광경 앞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쟁의 주도권을 가지셨구나!’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신앙의 눈금이 높이 올라가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아이성과의 전쟁에서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100% 승리를 확신했던 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길 수 없는 여리고성에서의 전쟁에서의 승리 뒤에 비극적인 패배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언약하셨고, 승리를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패배하여 온 백성의 마음이 물처럼 녹아지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군대가 패배 하였습니까? 여호수아는 광야40년 동안 벌어졌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7년 동안 펼쳐질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아이성에서의 패배 말고는 역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의 삶에 패배가 있습니까? 좌절과 실패와 패배가 우리의 삶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백성이 패배하였는지 교훈을 얻음으로 우리의 남은 인생가운데 좌절과 실패와 패배가 없기를 기대합니다.


◉ 왜 전쟁에서 패배하였는가?

1. 잘못된 정보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넘쳐나는 정보가운데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정보는 우리의 생각을 병들게 하고, 선입관을 갖게 합니다. 잘못된 정보는 인간관계를 끊어 놓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게 만듭니다.

아이성은 여리고보다는 작았지만, 벧엘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전략적 요새였습니다. 아이를 정복해야 중앙고지대를 따라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능선을 지배할 수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반드시 아이성을 정복해야만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공략하기에 앞서서 먼저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들의 보고는 승리의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3)

이것은 잘못된 보고였습니다. 사실 아이성에는 어른만 12,000명, 남자만도 6,0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요새였습니다.(8:25) 또한 아이성의 군대는 소수였지만, 아주 잘 훈련된 최정예부대였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어그러진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륙 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된지라”(5)

마치 마른 홍해물 사이로 바다를 건너고, 광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듣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함 받는 이스라엘백성을 바라보았던 여리고의 백성들의 두려움과 동일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수2:11)

잘못된 정보로 이스라엘은 적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자신들의 힘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잘못된 정보는 여호수아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모세가 지도자였던 시절, 가나안을 정탐하고 온 12명의 족장들의 보고가 엇갈렸습니다. 10명의 잘못된 정보로 온 이스라엘은 원망과 불평과 절망에 휩싸이게 되었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였습니다. 결국 가나안을 정탐한 40일은 하루가 일 년이 되어 40년 동안 광야에서 머물면서, 갈렙과 여호수아 2명을 제외한 장년 세대가 한 명도 빠짐없이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세대교체가 일어나게 되고, 새로운 세대만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삶에서 어떤 일이든지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든지,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 둘 다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예상치 못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확한 정보에 따라 삶을 살아가야 엇갈리는 삶을 살지 않게 됩니다. 진실하고 정직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의 눈을 가지고 현재를 분별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미래가 되어질 것입니다.


2.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패배의 원인은 아닙니다. 패배의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아간의 불순종(범죄)때문입니다. 아간은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바빌로니아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 백 세겔, 금 오 십 세겔을 훔쳐서 자신의 장막 땅 아래에 묻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재물을 훔친 것도 아니고, 아주 가치 있는 보물을 훔친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불순종(범죄)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한 명의 불순종으로 민족이 고통을 겪도록 하셨습니까? 그것은 아간의 불순종(범죄)은 그냥 단순한 불순종(범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첫 전쟁이었던 여리고성의 전쟁을 ‘헤렘’으로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헤렘’이란 ‘진멸하다’는 의미로, 풀어서 말하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이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입니다.

2.1. 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헤렘으로 선포하셨습니까?

가나안땅의 첫 열매,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으로 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유인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나안땅 모두를 주기를 원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감사고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의 첫 열매인 여리고성의 전쟁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의 전리품과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까지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후 10년 동안의 가나안땅에서 그 어떤 전쟁에서도 전리품을 요구하시지 않고, 모든 것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아간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십일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주와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속한 모든 피조물들, 우리의 생명과 시간과 물질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십일조를 통하여 이 진리를 고백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물질과 시간과 인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머지 십 분의 구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충성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서, 위임된 십 분의 구를 가지고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1)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신26:2-11)
2) 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면 서 드리는 믿음의 행위입니다.(레19:24-25)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출23:19a)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바벨론왕궁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였습니다. 왕의 진미는 율법에서 금한 음식재료로 만들어 졌고, 이방신에게 재물로 바쳐진 제사음식이였기에 우상숭배하지 않기를 원해서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서도 흔하게 마시는 음료인 포도주는 왜 거절하였습니까? 당시 바벨론왕이 마시는 왕의 포도주는 포도의 첫 열매를 재료로 만들어 진 것이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취하지 않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도록 명하시면서, 가나안의 땅과 그 모든 소산물 역시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치 곡식의 첫 열매를 바치며 더 많은 수확이 계속되어지기를 기대하는 농부처럼, 여리고성을 하나님께 드리며 가나안의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이후 전쟁, 아이성에서의 전쟁에서부터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가치 있는 것들을 전리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하도록 하셨습니다. 단지 여리고성에서는 양 한 마리, 동전 하나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역사를 보면, 이런 ‘헤렘’에 대한 이야기가 사무엘시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하셨나이다”(삼상15:1-3)

2.2. 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에도 ‘헤렘’을 명하셨습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공격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은 전쟁에 능한 용사들로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만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함께 하시는 증거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애굽의 값비싼 보물들과 비단들, 말린 메추라기와 만나에 눈이 어두워서 이스라엘무리가운데 뒤에 처진 연약한 자들을 기습 공격합니다. 이들은 왕위에 오른 다윗 왕에게 멸망당하기까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힌 세력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분명히 알고도 자신의 성공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한 아말렉은 하나님이 싸우시는 진멸의 대상, ‘헤렘’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사무엘선지자의 명령에 따르기는 하였으나, 100%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은 자기의 영광과 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아말렉의 백성들을 진멸하였으나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서 포로로 데려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아말렉의 가치 없고 병든 양과 소는 진멸하였으나 기름지고 가치 있는 양과 소들을 살려두어 소유를 삼으려 했습니다.


3. 헤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

3.1. 하나님께 버림받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사울왕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함으로 사울왕은 하나님에 의하여 버림받았습니다. 사울왕 뿐만 아니라 그 가문이 왕으로서 버림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헤렘’을 명하신 전쟁에서는 작은 불순종도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였더라면, 사울왕 자신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함께 하시는 왕이 되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아말렉에게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3.2.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의 전쟁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것이 바로 ‘헤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물질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한 비극적인 사건은 범죄한 아간과 그 가문에 대한 진노에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패배로 이어집니다. 한 명의 죄악으로 가문이 망하고 온 민족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수7:26)

만약 아간이 여리고성에서 순간적인 물질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고 넘어갔다면, 아간 자신도 아이성에서부터는 원하는 모든 전리품들을 마음껏 취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스라엘도 아이성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패배를 살펴보면서, 다시는 인생의 여정가운데 패배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정확한 정보에 따른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삶의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사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정보들을 바르게 분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는 좌절과 실패와 패배를 경험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