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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역사를 보면, 전쟁은 한 부족이 생존하고 변영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부족과 전쟁을 일으켜서, 식량과 노예를 얻고 영토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당시에는 아주 일반적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부족의 남자들은 전쟁에서 대부분 죽거나 혹 살아남는다할지라도 혹독한 노예생활 속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노인들과 유아들은 노예로 적절하지 않으면, 모두 몰살당하게 됩니다. 특히 전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여자들입니다. 패배한 부족의 여자들은 승리한 부족의 성적노리개와 몸종들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렇듯 전쟁은 한 민족으로 번영의 길을 걷게도 하지만, 패망의 낭떠러지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전쟁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영웅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말이 있듯이,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켜 왔습니다. 민족이 어떤 영웅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전쟁의 성패가 결정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최고의 영웅이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21세기의 난세에 우리인생의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모든 조직의 인사권을 결정하시고, 세상의 재정권을 가지신 세계경영자, 하나님을 우리는 영웅이자 인생의 목자로 인정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는 인정하지만, 삶에서 언어와 행동에서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부인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다!’라고 생각하지만, 가족들과의 어울리는 가정생활에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신앙생활에서 자신의 고정관념과 자존심이 하나님대신 목자가 됩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고정관념과 자존심이 신앙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신앙의 기준(진리와 거짓, 선과 악,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상하게 했느냐 자존심을 세워주느냐에 따라 판단됩니다. 인격에 지, 정, 의가 있듯이, 성도들도 이성적인 성도, 감성적인 성도, 의지적인 성도들로 구분되어집니다. 특별히 감성적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한다는 것보다는,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며 용납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위로와 격려와 용납은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성도들에게는 교회는 위로와 격려와 용납해주는 사랑의 요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한지 몇 년 이상 된 재직과 중직, 봉사자들에게는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는 하나님 말씀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위로와 격려와 용납의 비율은 좀 작아지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더욱 커져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진리의 방향을 따라서 신앙생활하게 되고, 영적인 성장과 성숙이 이어져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전시관에 미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그림을 보기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그 중 대부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팬들이었습니다. 전시관에 첫 그림을 가지고 나오면서 사회자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이라고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구도가 저렇게 엉망이냐?’, ‘색감이 왜 저러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림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하는 것입니다. 잠시 후 커텐 뒤로 들어갔다가 나온 사회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관중들에게 사과하며 다시 말합니다. 가지고 나왔던 그림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고 정정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관중들은 ‘그러면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과연 레오나르도 다빈치군‘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깊은 생각 없이 나오는 언어와 행동들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말씀의 선명한 기준을 따라 신앙 생활함으로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세밀하게 인도하시고 책임져주시는 저와 여러분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의 첫 성인 여리고성을 정복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이상한 전술을 펼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궤를 둘러매고 양각나팔을 가진 제사장들을 뒤따라서 모든 군사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울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여리고성을 한 바퀴 돈 뒤에 장막으로 돌아오는 것을 6일 동안 한 번씩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는 7바퀴를 돌고 나팔과 함께 크게 외치면 성벽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 여리고성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전술은 병법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고고학적 연구를 통한 발굴결과, 여리고성은 두께 1미터, 높이 4.5미터의 돌로 된 방벽위에 다시 2.4미터 정도의 진흙벽돌을 쌓아올려 총 약 7미터의 높이였습니다. 게다가 7미터의 벽 뒤에는 다시 경사지게 만든 4.5미터의 회반죽벽이 든든히 받치고 있었으며, 자체 우물을 가지고 있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이 바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나팔소리와 함성소리만으로 그렇게 튼튼한 난공불락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여호수아는 외쳤습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선포와 함께 나팔소리와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거대한 철옹성은 아래로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완벽한 하나님의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의 정복을 작정하시고, 직접 디자인하셨기에, 정말 이상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도록 만드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디자인한데로 순복한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이스라엘공동체와 한 민족이 승리하도록 하셨고, 온 열방가운데 존귀하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27)
그렇다면 이 혼돈과 무질서의 난세 속에서 계속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승리의 4가지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승리의 4원리;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1. 방법의 원리; 하나님의 방법으로 전쟁하라. |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2-5)
하나님께 속한 전쟁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전쟁해야 승리하게 됩니다.
여리고성이 아무리 튼튼한 성일지라도, 전쟁에 능한 용사들이 아무리 많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패배시키기로 작정하셨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일 지라도, 하나님께서 승리시키도록 결정하셨으면 승리합니다. 온 우주의 결정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사역에 어떤 결정을 내리시는가하는 것이 우리가 민감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실패하도록 결정하신 것을 나의 방법과 경험을 가지고 아무리 애써보아야 더 크게 마음만 상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성공하도록 결정하신 것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성취되어지게 됩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기로 작정하신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준비되어 있고, 아무리 능력 있고 실력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허락하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2. 역할분담의 원리; 부르심을 따라 사역하라. | 8-9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9)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기에, 하나님만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 모으십니다. 불러 모으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분담해 주십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무장한 군사들이 앞서 행하고 그 뒤에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불며 나아가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 뒤를 따르며, 그 뒤에 다시 무장한 후군이 언약궤 뒤를 따라갔습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명령하셨지만, 여기에 역할분담이 있습니다. 역할분담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집니다. 역할분담은 질서를 따라 진행되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도록 역할을 분담하셨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1-13,16)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11-12,27)
하나님께서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우시어 영성과 지성, 말씀과 행함이 균형 잡힌 성도들로 온전하게 양육하며 봉사의 일을 하도록 동기부여하고 장을 만들어 사역자로 세워지도록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훈련받는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직임을 세운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아 교회에 세워진 직임, 즉 영적 지도자들을 통하여 각 사람이 양육되어지고 훈련받아 사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양육과 훈련과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루며 세워집니다. 절대 진리의 통일성과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게 됩니다. 찬양대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려면,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테너가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입을 열어야 합니다. 반주자와 앙상블이 따로 놀아서는 안됩니다. 지금 입을 열어 노래를 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눈은 지휘자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거룩한 긴장감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긴장감은 공동체를 질서 있고 평안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긴장감속에서 사람은 change up(진보)하게 됩니다. 긴장감 없이 풀어져버린 체로 중요한 일을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실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그러면 change down 하는 것입니다.
3. 정체성의 원리; 하나님의 군대가 되라. | 10-11, 20-21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10)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21)
여리고 성벽을 도는 중에는 절대 침묵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에, 여호수아의 지휘를 따라 크게 외치는 것입니다. 성벽을 도는 기간에는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게 하실 때에는, 완전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쳐야 할 때에는 온 몸을 던져 온 힘을 다하여 외쳐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게 되면, 군대의 모든 군인은 앉고 서고 일어나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지내다가도 전쟁에서는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합니다. 군대에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지 못한다! 작전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계에 실패하면 군대는 수치스럽고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할 때 미국이 경계에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은 엄청난 군함과 군인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냥 방치했다가는 군대의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최소한의 사생활만이 보장됩니다. 본인이 이해되든 되지 않든지 상관없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부대가 승리하게 됩니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함이라”(딤후2:2-4)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교육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결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나쁜 군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생활과 상황, 감정에 따라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군사로 모집한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 고백의 원리; 전쟁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라.| 16b,26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16b)
여리고 전쟁은 이제부터 펼쳐질 가나안땅에서의 전쟁의 첫 열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첫 열매를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처럼, 여리고성에서의 전쟁의 모든 전리품들을 첫 열매로 받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안의 모든 값비싼 것들을 하나님께 바칠 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멸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수행한 전쟁임을 알리시고, 앞으로 모든 가나안땅에서 있게 될 전쟁 역시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전쟁이후의 모든 전쟁에서는 전리품들, 재물과 가축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마음껏 취하여 부요함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에서만큼은 모든 전리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요구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전쟁을 수행하고 계심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가운데도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8:2)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찌니라”(신20:12-14)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모든 것을 드리면, 더 많고 더 좋은 것으로 다시 채워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을 향하여 갈급해지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은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부요하심이 우리의 가문 대대로 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사람들과 역할분담하여 동역하면서, 하나님의 군대로 그 명령에 따라 인생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수행해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고, 부요한 이 땅의 전리품들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를 존귀하게 대우하시며 우리의 명성이 열방에 퍼지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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