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한여인의 믿음의 고백

제3강 한 여인의 믿음 고백 (수 2:1~7)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받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땅으로 이끌어 나가기 전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먼저 보냅니다. 광야를 건너오면서 많은 전쟁과 훈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40년 전의 실패를 다시는 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2명의 정탐꾼을 선택해서 가나안땅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도착한 두 명의 정탐꾼은 한 여인, 기생 라합을 만납니다. 정말 기대치 못한 만남이었습니다. 이 만남 속에서 기생 라합의 고백은 두 정탐꾼의 믿음고백으로 이어졌고, 다시 공동체의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24절) 한 여인의 믿음고백이 공동체의 확신으로 이어졌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확신과 하나님나라의 확장으로 이어진 믿음고백, 40년 전의 실패를 뛰어넘게 만든 믿음고백을 한 라합은 과연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 라합은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1. 생명을 건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 9a


이스라엘정탐꾼이 성내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여리고왕은 이들을 잡기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횃불을 들고 창과 칼로 중무장한 군병들이 이 거리, 저 거리를 수색하였습니다. 성안팎으로 군병들이 샅샅이 뒤졌습니다. 온 성은 군병들의 발자국소리와 흔들리는 무기의 날카로운 소리가 밤거리를 가득 메었습니다. 광야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끈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강 앞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리고성 모든 백성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떨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2명의 이스라엘 정탐꾼도 라합의 지붕에서 삼대거적을 뒤집어쓰고 쾌쾌한 냄새와 음침한 암흑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잠시 후 두 명의 낯선 사람이 라합의 집에 들어갔다는 제보를 받은 여리고왕의 군대가 라합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칩니다.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군인들을 맞이하는 라합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집에 숨겨 논 사실이 발각된다면, 두 정탐꾼뿐만 아니라 라합과 그 가족 모두 생명을 잃게 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 여인은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스라엘 두 정탐꾼을 숨겨놓은 것입니까?

이 여인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의 믿음은 생명을 담보로 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애굽도, 광야도, 가나안땅과 세상에 속한 모든 땅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안 것입니다. 세상의 통치자이시고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그 어떤 것도 방해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2:9a)

그녀는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을 고백합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참된 고백이라는 사실이 여리고군대가 들이닥쳤을 때 증명됩니다. 참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삶으로 증명됩니다. 참된 믿음이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죽음의 위협아래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두 정탐꾼을 지켜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는 여러분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바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의 삶을 보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환란과 고난이 가져온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그 믿음의 진정성이 비로소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진정성이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나타난다는 진리를 명심하기 바랍니다. 스스로 착각하면 않됩니다. 교회에 익숙하고 성도들에게 익숙한 것이 마치 믿음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대 교회에서, 믿음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위기와 갈등의 순간에 자신의 영적 수준을 인정하고 겸손함으로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양육과 훈련의 자리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이 세대가운데 이러한 바른 신앙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뛰쳐나가고 도망가 버리는 어그러진 모습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바라기는 자신의 영적 수준을 인정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기를 포기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기대한 소망의 여인이었습니다. | 10-11

그녀는 가나안땅에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땅에서 행하실 일을 정확히 알고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을 알았기에 미래에 행하실 일들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2:10-11)

하나님께서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가나안땅에 이르기까지 행하신 일을 라합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여리고왕과 여리고의 모든 백성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라합 만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두 가지의 개념이 있습니다. 헬레니즘 앎과 히브리즘 앎입니다. 헬레니즘 앎은 이성적인 동의이며 지적인 추구입니다. 이성적인 앎으로 이데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즘적 앎은 다릅니다. 경험된 지식이며 체험적인 깨달음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과 김윤옥영부인이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제가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은 인터넷과 신문을 통하여 알고 서울시장을 마치고 대통령으로 출마하기 전에 3명의 목사들과 함께 1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눈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김윤옥영부인이 이명박대통령을 안다는 것은 수 십 년 동안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식습관과 잠버릇부터 그 내면의 인격까지 속속들이 아는 경험된 앎입니다. 이것이 바로 헬레니즘의 앎과 히브리즘의 앎의 차이입니다.

비록 천한 여인이었고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이 여인의 소망은 하나님을 경험한 성도로서의 참된 소망이었습니다.

3. 가족을 소중히 여긴 사랑의 여인이었습니다. | 12-13

이 여인은 가족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라합은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냅니다. 정말 가족을 사랑하는 덕망 있는 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천한 여인이었지만, 모든 친족들에게 신뢰를 얻은 여인이었기에 그녀의 말을 듣고 모두 라합의 집에 모입니다.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2:12-13)

라합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랑의 여인이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이 시대에서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들을 돌아볼 줄 아는 여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족의 정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48b-50)

진정한 예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같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가족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가 바로 진정한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4. 미래를 예측한 지혜의 여인이었습니다. | 6, 16절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별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2:6)

라합은 군병들이 자신의 집에 올 것을 미리 예측하였습니다. 다가올 사건을 예측한 라합은 다름 아닌 지붕 위에 널어놓은 ‘삼대’안에 정탐꾼을 숨긴 것입니다.

왜 라합은 이스라엘 두 정탐꾼을 지붕 위 삼대 안에 숨겼습니까? 당시 가나안에서 쓰던 대부분의 삼은 이집트에서 수입하였습니다. 이 ‘삼대’는 ‘아마’로 된 시원한 고급직물과 질긴 밧줄을 만들기 위해 수입되었습니다. 그 공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말린 삼을 고인 물에 ‘담그기’를 하여 섬유질을 분리한 후, 통풍이 잘되는 곳에 넓게 펴서 말립니다. 축축한 삼대를 말리는 과정에서 너무나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이러한 지독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라합은 군병들이 올 것을 미리 예측했고, 어두운 지붕 위의 독한 냄새를 풍겨서 가까이 하지 않는 삼대 안에 정탐꾼을 숨긴 매우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위기관리능력이 아주 탁원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또한 여인은 정탐꾼에게 산에 숨었다가 귀환하기를 권고합니다. 정탐꾼으로 하여금 바로 떠나도록 하지 않고 라합은 두 정탐꾼에게 먼저 산으로 가서 사흘을 숨었다가 이스라엘공동체에게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찌니라(2:16)

라합은 미래를 예측하는 정말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사람을 찾던 추격대가 다시 여리고성으로 돌아온 후, 정탐꾼은 여유롭고 안전하게 귀환합니다. 라합은 미래에 되어질 일들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건 믿음의 여인, 하나님을 기대한 소망의 여인, 가족을 소중히 여긴 사랑의 여인,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의 여인이었던 라합을 축복하십니다. 비록 이방여인이었고 비천한 직업의 여인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기만 하면 하늘의 복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라합을 축복하시다

하나님께서 라합을 축복하시기로 결정하시니, 그 여인뿐만 아니라 그 가문까지도 구원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아모리 족속의 비천한 가문이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명문가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살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1:5)

비천한 주막집 아낙네가 이스라엘 유다지파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이방여인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다윗왕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족보가운데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마1:17)

오늘 우리는 한 여인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한 여인의 고백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의 고백으로 이어졌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의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 여인의 믿음은 생명을 뛰어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계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한 소망의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여인이었으며, 미래에 되어 질 일들을 예측할 수 있는 지혜의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승리의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40년 전 족장들의 믿음 없는 고백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앙에 빠졌던 것과는 달리, 이 여인의 믿음 고백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을 더욱 촉진시킨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공동체가 살고, 민족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한 사람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그 가문을 축복하시어 다윗왕과 메시야의 계보를 이어지게 하는 믿음의 선진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