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말씀을 따라 나아가라

제2강 말씀을 따라 나아가라 (수 1:10~11)
여호수아서는 모세오경이 마친 다음의 첫 번째 성경입니다. 모세오경은 천지창조에서부터 가나안땅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록한 책입니다. 여호수아를 시작으로 에스더까지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 타락, 그리고 구속의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내용을 기록하였다면, 출애굽기는 역사의 수레바퀴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 기적을 행하심으로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시켜 시내산까지 가는 수 주간의 기록입니다. 레위기는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1년 동안 머물게 하시면서 십계명의 언약과 제사, 제사장, 절기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기록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백성을 군대조직으로 개편하여 시내산에서 가나안땅이 보이는 모압 평야 느보산까지 도착하여 불신앙의 고백을 하므로, 광야 40년의 생활을 하는 동안의 기록입니다. 신명기는 요단강 동편에서 몇 주간을 보내면서 가나안 정복 직전에 이스라엘의 차세대를 위한 언약의 갱신과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재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약6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으로부터 여호수아의 죽음에 이르는 약 30년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전쟁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에 대한 신실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 말씀을 따라 나아가라 | 10-11

1. 중심으로 순종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으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요구의 이면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라는 요구입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따르며 인생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온 우주의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어야 다른 음성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은 히브리어로 ‘샤마’인데, 이는 ‘듣다’, ‘청종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hear\'가 아니라 ‘Listen to\'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들려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들으려고 애쓰고 집중해야 합니다. 내 귀에 사람의 소리, 세상의 소리, TV의 소리가 울리고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솔로몬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와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복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순복할 수 있고, 순복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지은 집처럼 견고하게 이 땅을 살게 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평강이 강과 같이 흘러넘치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바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천대에 이르러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일을 시키면, 중심으로 순종하는지 억지로 마지못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개인의 상황과 사정을 조정해서라도 제 말대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사람은 제 마음 깊이 자리 잡고,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도우려고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누구나 그렇습니다.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더욱 정확하게 분별하시고 반드시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또한 자녀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를 기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이 항상 기쁨의 대상일 수 없지만, 기쁨의 대상은 항상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기뻐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육신의 부모가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모든 자녀들을 똑같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셨지만, 어떤 믿음의 선진은 더 많이 사랑하시고 더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의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세계경영자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진심으로 순종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걸고 순종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정복을 준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조금의 반문이나 의문도 가지지 않습니다.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두마음을 품고 순종하면 거기에는 아무런 열매도 맺혀지지 않습니다. 두마음을 품고 살게 되면, 삶속에 염려와 근심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마음을 품은 인생은 바람 부는 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세상과 사람에 끌려 다니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진정으로 순종하여 하늘의 복을 받으려면, 순종을 넘어 복종으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내 이성과 경험으로 이해되어지고 감정적 동의가운데 따르는 것이지만, 복종이란 것은 자신의 의지와 감정과 상관없이 그대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다보면 모든 것이 이해되어지고, 모든 것이 해석되어집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4:7-8)

내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할 수 없습니다. 내 감정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항상 변화되는 우리의 감정이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정욕과 육신을 못 박아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지금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목회자와 리더들을 통하여 가르쳐지는 가르침에 기쁨이 없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끝까지 순종하여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2. 비전을 공유하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인생의 마지막 비전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 비전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공유한 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비전을 바라보도록 동기부여하고 비전을 공유하도록 합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수1:10)

하나님의 비전은 강력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비전은 씨와 같아서 씨 안에 생명이 있듯이, 비전 안에는 강력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봄바람에 민들레 홀씨들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듯이, 비전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고, 언어와 세대를 뛰어넘어 퍼져나갑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을 전염시키고, 공동체를 전염시키고, 나라와 민족을 전염시키고, 나아가 열방을 전염시키게 될 것입니다. 비전이 강력한 전염성을 갖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정과 성실하며 충성된 삶의 일관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내 세포와 신경 모든 것을 장악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일생의 목적으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비전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정하신 때에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주변의 사람들을 재구성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전을 함께 이루어나갈 사람은 붙여주시고, 멀리해야할 사람은 정리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전을 성취하기에 최적의 환경과 여건들로 삶을 재조정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기 원하는 그 일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계획이 있습니다. 가치가 있든지 가치가 없든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우리 각각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 있는 마이크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목적 없이 존재하겠습니까? 내 계획,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악착같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되어지기를 부탁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인데,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의 스케줄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크게 둘로 나누면 인본주의신앙과 신본주의신앙이 있습니다. 인본주의신앙은 사람의 기쁨이 먼저인 신앙인의 신앙입니다. 신본주의신앙은 하나님의 기쁨이 먼저인 신앙인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사람이 기쁨이 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하나님의 기쁨과 사람의 기쁨은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이, 생명과 죽음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반드시 격돌하게 됩니다. 인본주의신앙인은 하나님의 기쁨을 버리고서라도 사람의 기쁨을 취하는 사람입니다. 신본주의신앙인은 사람의 기쁨을 포기해서라도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사람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눈이 향하고 하나님의 비전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늘의 지혜가 위로부터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3.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수아는 과거에 파묻혀 살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도전하고 변화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양식을 예비하라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수1:11)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여정의 출발점에서 무교병을 구웠던 것처럼, 광야여정을 마친 가나안정복의 출발점에서 양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제 광야여정의 모든 익숙함을 버리고 가나안정복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내리지 않고, 이제는 스스로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변화에 도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서 영적 어린아이일 때는 부드러운 음식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장하고 자라납니다. 그저 먹고 자고 잘 놀다가 배뇨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라나면, 변화에 도전해야 합니다. 누워 있다가 기어 다니고,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서 걸어 다니는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만약에 기어 다니기를 포기하고 걸어 다니기를 포기한 다면 그 사람은 부모와 주변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 옆사람과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누워있지 맙시다! 기어 다니지 맙시다!

한 번 더 인사하겠습니다.

 변화 없이 성장 없습니다! 변화 없이 성숙 없습니다!

변화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장이 멈추거나 아주 천천히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언제까지 변화하고 성장해야 합니까? 성경은 이 땅에서 천국 가는 그 날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자라날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성장호르몬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중단 없이 분비되어 영적 거인이 되기까지 계속해서 성장하도록 합니다.

변화만이 살 길입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며 패러다임쉬프트를 끊임없이 시행하는 대기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변화해야 살 수 있습니다. 변화를 포기한 사람은 인생을 거꾸로 삽니다. 성장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것은 청년이 되었는데 어릴 때를 그리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청년이 되었는데 초등학교 때 입던 옷을 꺼내 입고 과거에 들고 다니던 가방에 초등학교교과서를 넣어서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특별한 일로 초등학교를 방문하면, 어릴 때 그렇게 넓어보였던 교실이 작고, 의자는 2개를 붙여서 앉아야 하고, 커보였던 선생님이 우리보다 작아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삽시다. 예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지체와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해서만 살아왔다면, 이제는 다른 지체와 공동체를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감정에 이끌려서 원하는 일만 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의지적으로 결단하여서 공동체와 다른 지체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 옆에 있는 전우가 적진에서 부상을 당하였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구해냅니다. 그래야 언제어디서 부상을 당할지 모르는 자신도 다른 전우가 반드시 구해낸다는 신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도 영적상처를 입은 지체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고 도움을 영육간에 주는 것이 바로 한 공동체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군기가 엉망인 오합지졸부대에서는 오직 자신만 살기 위해서 옆의 전우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도 오합지졸부대가 있고, 정예부대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