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터위에 굳게서라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라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라

2008. 9. 28(주일오전)

골2:6~7

 

오늘은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종교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종교에 대하여 「새 우리말 큰 사전」은 정의하기를

“신(神)이나 또는 어떤 초월적인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신앙하는 것에 의하여 마음의 안락과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신앙(信仰, faith)에 대하여는

“종교 생활의 의식적인 측면, 곧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 사랑 의뢰심을 갖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잘 살펴보면... 굉장히 놀랍고도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자는 기원전 약 2,500년경부터 사용되어 온 상형문자, 즉 그림문자로 글자에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 한자에는 중요한 뜻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신(信)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신자는 사람 인(人)자와 말씀 언(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씀 언자는 다시 죄 건( )자와 입 구(口)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죄․건자의 형상은... ‘위에 + 범죄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한 일(一)자를 붙이면 ‘혹독한 고생’이라는 의미의 매울 신(辛)자가 됩니다.

일(一)자는 첫째 사람 아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信)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고 믿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그것이 곧 죄요, 혹독한 고생이 따릅니다.

 

이제 앙(仰)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사람 인(人)자와 나 앙(卬)자의 합성어입니다.

앙(卬)이란 글자 속에는 ‘우러러 봄, 쳐다 봄’이란 뜻도 담고 있는데,

그러므로 앙(仰)이란... ‘사람인 내가 우러러 본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우러러 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신앙(信仰)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처럼 혹독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실 신앙이란 말은 아무 종교에서나 사용해온 보편적 단어가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님과 관련하여 지어진 문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롬 1:17).

 

누가 의인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불러주시지 않습니까?

세끼 밥 먹고 숨 쉬며 활동한다고 하여 그것이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개도 먹고 숨 쉬고 합니다.

짐승이 갖지 못한 영(靈)이 사람에게는 있는데, 혼과 결합된 영혼이 살 때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변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영혼이 굳게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말하는 한 인간으로서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사람이 바로 세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예수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행한다는 것은 생각, 계획, 행동 등이 모두 포함된 우리의 삶(life) 자체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집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하였고,

3장26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야지 누구의 집에서 살겠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어른인데…”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모든 자녀들은 평생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할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집을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주님이 목자가 되어 지키시는 목장(牧場)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시어 양인 우리를 절도와 강도와 이리들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양떼를 이끌고 목초지로 인도하여 싱싱한 풀을 먹이시고

맑은 시냇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그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또한 예수님 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성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사랑의 관계로 맺어집니다.

-신부는 오직 신랑의 품안에서 사랑을 받고, 먹고, 나눕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구약의 아가서에 남자 주인공 솔로몬과 여자 주인공 술람미 여인이 등장합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각각 예수님과 성도를 예표합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아 2:1-3).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병이 다 났습니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아 2:5).

 

우리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 대하여... 이런 상사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생각과 계획과 행동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고 진실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직업을 가질 때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가장 큰 제약은 주일 성수입니다.

주 5일 근무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관공서나 대기업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직업을 찾을 때... 오랫동안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며 살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그리스도안에 세워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각오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11세기 프랑스가 낳은 영성가이자 수도원 운동가인 성 버나드는 사람에게 자유선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연 영역 안에서 인간이 가지는 이성과 의지의 능력 하에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 영역에서는 인간에게 자유 선택의 기능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구원의 길로 갈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자유 선택 기능은 불완전하여 인간이 죄를 범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범죄 성향은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진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쌍한 상태의 자유에서 돌아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 선택이란 죄의 길을 향한 선택이기 쉬우므로 주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죄를 씻음 받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면 자연 영역 하의 인간의 자유 선택은 선한 방향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려 합니다.

목숨을 다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각오를 날마다 다지면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덧입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그 분의 말씀 안에서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예수 안에 사는 모습입니다.

 

2)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으며,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여기 뿌리를 박는 것(에르리조메노이, ἐρριζωμένοι)

세움을 입는 것(에포이코도무메노이, 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

굳게 서는 것(베바이우메노이, βεβαιούμνοι)이 모두 수동태로 쓰였습니다.

 

수동태로 쓰였다는 의미는... 내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 안에 계신 주님의 도우심을 입고 힘쓰고 노력함으로써 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영적 뿌리가 깊고 튼튼하게 박히도록 한다는 것은 신앙의 기초를 잘 다지는 것입니다.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그 위에 세워지는 건물이 오래 견딜 수 있습니다.

 

아라비아반도 동부 페르시아만 남쪽 연안의 저지대인 사막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수도 두바이에

한국의 쌍용건설이 1999년 객실 674개와 아파트 186가구로 이루어진 그랜드 하얏트호텔을 완공한 후

2000년에는 57층 309m 높이의 에미리트타워호텔을 완공하였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사막 위에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지을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며 쌍용건설의 기술력이 대단하다고 극찬한다고 합니다.

모래 위에 309m 높이의 타워호텔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모래 위에 지은 집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지형이 모래사막이지만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하였기 때문에 폭풍과 지진에도 끄떡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견고한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묻지 마’ 식의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말씀이 기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깊은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말씀의 기초 위에 내가 뿌리를 박는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어 뿌리가 박히도록 해야합니다.

자꾸 말씀을 사모하고, 자주 접하고,

지식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생명의 양식으로 알고 먹으면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자연스럽게 말씀의 뿌리가 내려 어떤 허리케인이 휘몰아쳐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세움을 입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믿음 위에 바로 서야 하고, 가정이 바로 서야 합니다.

-교회가 굳게 서야 하고, 사업장들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갈갈이 찢겨져 가는 이 사회와 나라가 또한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심한 사회양극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방직후와 방불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으며 성장하여 사회적 지도자 위치에 선 좌파 지식인들이

정치 사회 문화를 잠식해 가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제발 먹고 살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정치 투쟁만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한다면

이 어지러운 정국은 아침 햇살로 다시 펴지게 될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많은 혜택을 입었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지식인들이

예수님 안에 뿌리가 박히고 예수님 안에 세움을 입는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힘차게 도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탓 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라고 하셨듯이 우리가 먼저 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뿌리가 박히고, 예수 안에 세우심을 입는다면 그는 분명코 굳게 선 사람입니다.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믿음이 견고하고 튼튼하여 안전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건축업자가 건물을 지을 때에 공사 전반에 걸쳐 공사설계도서, 시방서, 품질관리 기준 및

기타 약정대로 어김없이 하여 준공 허가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막을 짓는 건축업을 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건축 용어에 익숙하여 이런 비유로 우리의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믿음의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우리가 믿음의 기초를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놓는다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수고도 없이 엉터리로 쉽게 집을 짓는다면 조금만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어도 곧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바람과 비는 외부 환경입니다.

악한 영의 미혹입니다.

이런 것들에게 쉽게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터 위에 믿음의 집을 견고하게 지어야 합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수고가 따릅니다.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건물이 완공될 때 까지는 공사가 계속되어야지 쉬면 안 됩니다.

엊그제 지방에 갔다가 길가에 큰 건물이 뼈대만 있고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건축업자가 부도가 났거나 법상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몇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그 건물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완공하려면 허물어버리고 다시 지어야 할 형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초가 부실하거나 중도에 쉬게 되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흉물이 되어버린 그 건축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믿음의 뿌리를 박읍시다.

똑 바로 세웁시다. 굳건하게 섭시다.

신앙과 생활은 별개가 아닙니다.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말씀은 우리 가운데서 실제가 되어 역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역사가 여러분을 통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장풍을 날려서 기적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셋째,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뿌리가 박힌 것, 세움을 입는 것, 굳게 서는 것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로 힘입는 수동태라면 넘치게 하는 것은 능동태입니다.

넘치는 감사는 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하는 것입니다.

 

감사(유카리스티아, εὐχαιστία)라는 명사가... 신약성경에 모두 15회 나옵니다.

15회 중 한번만 사람에 대한 감사를 말하고, 나머지는 전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말합니다.

감사라는 말의 어원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넘치게 하라(페릿슈온테스, περισσεύοντες)는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이것이 원리로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명령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듯이 넘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시 138:2).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감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감사는 스스로 해야 참 감사입니다.

강요해서, 그것이 옳으니까, 다른 사람이 하니까, 믿는 자의 도리이니까 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감사가 아닐 것입니다.

감사는 내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면서 주님께 뿌리를 박고,

주님의 말씀을 먹으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말씀으로 건축한다면 감사는 자연스럽게 생활화될 것입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치게 될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 대한 감사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겠습니까?

말로만 “감사! 감사!”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예배 때 감사헌금 봉투에 얼마를 넣어서 드린다고 족하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열매로써 나타나야 한다고 봅니다.

 

감사의 표현은... 사랑의 표현과 유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0-42).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25:4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터를 파고 기초를 놓아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굳건히 설 때

사용했던 그 말씀들의 내용 하나하나를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요, 감사하는 길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길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말은 쉽습니다. 이해는 갑니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권면은 쉽습니다. 자신에 대한 적용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수 안에 깊숙이 뿌리가 박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과 조건 아래서도 비로소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 생명으로 채워지면 사랑과 감사가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자연스럽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지 말고,

포도나무에 붙어... 많은 포도나무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