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 받는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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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받는 기도 2008. 9. 7(주일) 눅18 : 9 - 14 오늘 본문의 비유에 보면 두 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하나는 세리입니다. 이 바리새인의 특징은 나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 즉 나는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않고, 저 세리와 같지않다, 다른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금식하지만 나는 두번 금식한다. 또한 나는 꼬박 꼬박 십일조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신앙에 대한 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께 내세울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리를 보십시오. 13절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 치면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께 내세울게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는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처럼 죄 짓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권력이라든지 돈이라든지 지식을 가지고 얼마든지 간음도 할 수 있고 불의한 일도 할 수 있고 남의 것을 뺏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짓을 안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했습니다. 십일조를 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어떻습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 몇 사람을 뽑아 가지고 너희들이 세금 걷어와라 내가 너희에게 100만원 걷어 오라 그러면 네가 200만원을 걷든 300만원을 걷든 네 마음대로 하고 나에게 100만원만 주면 된다 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만원을 걷으라 하면 200만원, 300만원을 걷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백성들은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세리를 무조건 싫어했습니다. 그러니 세리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겠습니까? 어쨋튼 본문의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 가슴을 치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요지가 무엇일까요? 본문(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자기를 의롭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잘하고 있더라도 잘난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들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까불지 말란 말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만 높이는 것입니다.(고전10:31)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금식을 할때도 있고, 기도 할때도 있고, 헌금 할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금식하면 낮아져야지... 그 금식한 것 가지고 자기를 드러낸다면? 그것은 금식의 본질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행과 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십일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으면 더욱 낮아져야지 어깨를 높이고 다닌다면! -그것은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자기 의를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를 잘한다고 해서 나의 의를 드러낸다면 불의의 일을 하는 세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자는 주 예수를 자랑하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적으로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나은 사람입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당연히 바리새인이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중심을 보면 어떻습니까?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드러내었고 세리는 자기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분명히 삶의 행위 적인 면에서는 바리새인이 나았습니다. 반대로 세리는 불의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속마음을 보셨습니다. 한 사람은 불의 하게 돈을 벌며 살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이렇게 살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나는 오늘도 바르게 살았다 그런데 저것들은 왜 저렇게 살아’ 하면서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며 살았습니다. 그 속에 미움과 증오와 저주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무엇이 차이가 있습니까? 신앙의 인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를 내세운자요, 한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무능, 연약함, 불의함을 고백하는자의 기도를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종교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이방종교는 자기 공력 즉 자기행위 따라서 부처도 되고 해탈도 되지요. 어떤 사람은 깊은 산에 가서 도 닦았다 하면서 자기 힘을 자랑합니다. 모든 세상의 종교의 특징은 자기를 높입니다. 거의 모든 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참 기독교 신앙은 다릅니다. 사도바울은 신앙의 깊이가 더해 가면 갈수록 나는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참된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였고 많은 수고를 하였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위를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왜요? 자기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할말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고백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 공급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 주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1)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자기 의를 내세우지 말라는 겁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따로 서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난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난 수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신앙을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남을 무시합니다. 아니, 멸시한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의에 사로 잡혀 다른 사람 멸시하고 괄시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교만 중에 가장 심각한 교만이 있습니다. 교만 가운데 가장 큰 교만이 뭐냐 신앙의 교만입니다. 영적인 교만입니다. 그런데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공부 좀 했다고 지식에 교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너보다 내가 돈 몇 푼 더 있다고 부자로서 돈에 교만 부리는 사람도 있고, 너보다 한자리 높다고 해서 권력의 교만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앙의 교만입니다.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너보다 오래 믿었다, 나는 너보다 잘 믿는다 하는 사람은... 참으로 고칠 길이 없습니다. (아주 잘난체 하는 국문학 박사 신앙인-설교후에 따짐-116군데가 틀렸습니다. 그때 목사님 왈-나는 이 틀리는 말씀으로 지금까지 10000을 전도 했습니다. 박사님은 그 정확한 학문으로 몇 명을 구원 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다니면서 자기의 의를 내세움으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못질을 합니다. 자기가 구원받은 것이, 자기가 남다른 능력을 소유한 것이, 자기의 노력으로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거저 값없이 주신 것을 가지고 남을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아직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교회 나와서도 겸손히 기도하거나 배우려 하지 않고 항상 남을 판단만 합니다. 나보다 못한 남을 정죄 합니다. 이것은 아주 무서운 영적 교만입니다. 성경 롬3:10 이하에 말씀하십니다.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의 공로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공로입니까? 주님의 공로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자기 의를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대표적인 본보기가 사울왕과 다윗입니다. 사울은 교만하므로 망하고 다윗은 겸손하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서는 우리가 다 도토리 키재기 일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야합니다. 그래야 다른 필요를 더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2)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자기 가슴을 치라는 겁니다. 세리는 자기 가슴을 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누구 가슴 치고 있습니까? 남의 가슴을 치는 겁니다. 저 불의한 자들, 토색한 자들, 간음한 자들, 세리와 같은 자들, 저 바르게 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뒤집어지게 해주세요 라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려면 자기 가슴을 쳐야지 왜 남의 가슴을 칩니까? 시어머니 기도 - 가정이 잘 되고 못 되고는 시어머니 가슴을 쳐야지, 왜 며느리 가슴을 치냐 말입니다. 며느리 기도- 왜 시어머니 가슴을 치고 있어요? 그것은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남의 가슴을 치는 사람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첫째는 자기 부족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아직 주님의 크신 뜻을 모르기에 남을 치는 것입니다. 남의 가슴을 찔러대는 것입니다. --부족하면 겸손히 주님께 가르쳐 달라고 하고 배워야지 왜 남의 가슴에 못질을 합니까? 다른 하나는 그릇된 신앙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이 정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남에게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항상 자기 가슴을 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과 부족함을 쳐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손 들어서 자기 가슴 한번 쳐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뜻데로 살지 못해 자기를 가슴을 치는 사람, 자기 부족과 자기 실수로 인하여 자기 가슴을 치는 사람 - 이런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산상수훈 - 애통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저희가 위로를 받을것이요) 그런데 바리새인은 남의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해서 처음에는 잘 살았는데, 점점 사이가 나빠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으니까, 기도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남편이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 아내를 완전히 뒤쥡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변화되어야할 사람은 제 마누라입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또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 남편을 뒤집어 주십시오. 변화되어야할 사람은 바로 제 남편입니다. 저마다 상대방이 변화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랑에 대해 설교를 하면 마누라가 들어야 되는데, 사랑에 대한 책을 읽으면 내 남편이 읽어야 되는데,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정작 고쳐야될 사람은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상대방을 뜯어고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문제는 더 심각해진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아니다 내가먼저 달라져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행복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내가 변화되기를 바라지말고, 남편이 변화되기를 바라지말고 내가 먼저 변화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달라지면 부부 사이가 좋은 관계가 되고 행복이 찾아오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세리를 보세요, 그는 비록 다른 이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랑 안하고 타인을 무시도 안 합니다.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워낙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그런 것 아닙니까? 가난한 게 뭐 죄입니까? 어쩔수 없어 이렇게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나에게 손가락질 합니까? 내 팔자가 이게 뭡니까? 하며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 놓고 자기의 부족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 신앙인은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기 위해서 항상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시에 제일 무능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겸손한지 모릅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하러 다닐 때에 주일날만 되면 자기 고향 마을 조지아 주에 작은 교회에 가서 2 3년동안 개근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스무 명을 앞에 두고 가르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예배드렸습니다. 그 때에 기자들이 70명이나 몰려 왔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간에 꼭 여기 교회에만 나와야지 하나님이 계십니까? 지미 카터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대통령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게 더 중요합니다. 내가 부탁이 있는데, 이렇게 찾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다음 주일부터는 여러분들도 여러분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은 아무리 바빠도 예배가 먼저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예배함이 없이는 내 삶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낮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이었습니다. 자기는 선지자이지만, 기름부음 받았지만... 자기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는 목사로서 어떤가? 정말 나는 겸손한 자가 되고, 낮아지는 자가 되고 있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능력인가? 실력인가?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하겠으나 이제 저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목사든 성도든 누구나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가 아무리 남보다 뛰어나고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행하고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나를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항상 누구보다도 더많이 기도하고, 더많이 헌금하고, 더많이 희생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만 저도 모르게 자랑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만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진정으로 잘못했습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더 겸손해져야 되고, 더 진실해져야 되고 낮아져야 되고, 자기 자랑하지 말아야 되고 남 무시하지 말아야 되는데, 제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깊이가 더해 가면 갈수록, 연륜이 더해 가면 갈수록, 헌신과 수고를 많이 하면 할수록 내 직분이 하나씩 새로운 직분을 맡게 되면 될수록 더 겸손해 지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한 헌신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 이만큼 키웠다, 내가 교회 이만큼 봉사했다, 이만큼 헌금했다, 어느덧 이것이 자랑이 되고 그러다 보면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 무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삶이 아닙니다. 오늘 바리새인이 왜 바르게 살고도, 남보다 더 많이 하고도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했습니까? 바로 자기 의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못한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잊을 때에 자기 의가 드러나게 되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남보다 조금 잘하는 것이 자기의 의인것처럼 착각하고 공공연히 사람들 앞에서 자기만 못한 세리를 정죄하고 비판하고 멸시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조차 그것을 내세우며 은근히 세리를 멸시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도 자기 의를 내세우고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자기 힘과 노력으로 되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어느것 하나라도 내 힘으로 된 것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을 모를때에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의를 내세우게 되고 다른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멸시하게 되는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습니다. 교만하면 우리는 망하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고 겸손한 자를 붙들어 주시고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하셨습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하고, 남이 아무리 나보다 못해도 그래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 이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겸손한자가 됩시다. 자신이 아무리 남보다 나은 것이 있다 하여도... 세상에서 자기 의를 드러내며 살지 맙시다. 그리고 나보다 못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절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삽시다. 오히려 나보다 못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기며 안타까이 여기며 사는 우리가 됩시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겼기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삽시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나님 앞에 자기를 죄인이라고 겸손히 낮추는 이가 하나님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