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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눅12:13~33
저는 문득문득 신학교시절... 가르침을 주시던 원로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큰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라” “큰 것을 구하라” “큰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라” “작은 것들에 연연하지 말아라” ...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이 참으로 가슴이 뭉클하도록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늘 그 말씀처럼 살겠노라고 눈물로 다짐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 목회를 해도 내 목회만을 생각했고, - 사람을 생각해도, 내 가족, 내 교인만 생각했습니다.
선교와 구제도... 깊은 애정과 사랑 없이 했습니다. 과시용이나, 그저 쓰다 남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깊이 몰랐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감히 건장지고 교만하게 다 아는 척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에게 큰 시련을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원로목사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셨던...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도들이 목에 피가 터져라 외쳤던...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예수님이 눈물을 쏟으시면서 하셨던 그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여러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는 말씀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거기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성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귀한 영혼, 즉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영원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함께 구원받기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란?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가치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원과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의 나라는 정의와 진리안에서 사랑으로 통치되는 나라입니다. 그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것입니다. 그것이 옳은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아이들 우유 값이 없어서... 아이들 학자금이 없어서... 병원 갈 돈이 없어서... 월세를 내지 못해서...어려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힘들었던 것은 가정 형편이나 상황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주의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그때는 가족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듣게 됩니다. 그럴 때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갈등하고 회의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솟아오는 감정은... 절제할 수 없는 그의 나라에 대한 애끓는 마음입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후일에 그것이 옳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셨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러분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럴 때가 많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감동하시는데...나는 개인과 가정에 얽매어 있고, 하나님은 더 뜻을 위해 나를 쓰시고자 하시는데...나의 마음은 땅에 매여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독립운동가들과, 애국지사들을 생각해봅니다. 저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 자유의 땅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없었을텐데...
저는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빚진 자의 마음이 듭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고 사셨던 분들... 그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또한 신앙적으로는 오늘 이렇게 자유롭게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드릴 수 있게 됨에 눈물나도록 감사와 고마운 마음이듭니다.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수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자기를 넘어서... -혈연관계를 넘어서... -민족을 넘어서... 더 큰 뜻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핍박을 받으며, -질병에 허덕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의 고통 속으로 던져짐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분들의 모습은...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리석고 이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나섰던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값 진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초점, 즉 가치관이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는냐 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마실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관심은...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인 우리는... 모세처럼 민족의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처럼 민족의 통일과 합일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민족의 무너진 성벽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처럼 목숨을 걸고 민족을 위해 금식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기도를 넘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행했던 것처럼 신앙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년전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두 젊은이가 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들은 죽도록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하여 헌신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이 땅이 오늘날 복음천국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들고 왔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 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는 옮겨져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이는 백여 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땅을 위해 기도한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을 읽다 보면... 저절로 감격에 젖게 됩니다.
자신의 나라도 아닌, 아주 먼 나라 이름한번 들어 보지 못한 가난하고 메마른 조선 땅, 이 민족에게 배타적인 조그만 나라에 온갖 고생을 자처하고 와서 눈물로 기도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가 지금에 와서 몇 백 배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언더우드선교사는... 조선 남자들과 조정의 내심을 알지 못해 고민하며, 믿음 하나만으로 배타와 의심, 천대를 극복하고, 조선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선교비전을 품고 행동했던 신앙적인 결단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빚진 자로서 우리의 삶을 부끄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더우드 선교사님처럼... 민족과 열방을 향한 기도와 헌신 즉 행동하는 신앙이 더욱더 필요한 때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과 언더우드 선교사님 두 분이 자기를 넘고, 민족을 넘고, 환경을 넘어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말씀에는 4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먼저 이 말씀은 일생생활을 하지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 본문에서 말씀하는 \'먼저\'는...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추구하는 것이...세속적 욕망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Xn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인생의 목표 정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느냐 하는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의 목적과 목표를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항상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거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모든 것이 먼저 하나님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먼저 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돈을 벌어도... 먼저 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사업을 해도... 먼저 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목회를 해도... 먼저 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직히 우리는 무엇을 해도 항상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말로는 다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그분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먼저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이렇게 구했습니다. “아버지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그냥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피울음을 삼키며 그렇게 구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피울음으로 절규하면서 그렇게 구했습니다.
왜요? ...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당신과 내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아니 땅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 땅의 모든 길 잃은 양들... 세상을 헤매는 당신과 나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친아들을 매정하게 죽음으로 모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속전하시려고 그 아들을 그리도 매정하고 잔인하게 대하셨습니다.
어느 애국자의 아버지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울음 울며 아들은 전쟁터로 내보내듯이... 어느 족장이 종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재단에 희생재물로 올려놓듯이...
아버지께서는 한분 밖에 없는 아들은 희생의 재물로 재단을 행해 내모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며...쓰러지고 넘어지며 걸어갔습니다. 한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입술을 깨물고, 채찍을 달게 받습니다.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커다란 대못에 손과 발을 못 박았습니다. 마지막 죽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큰 창으로 심장과 옆구리를 관통했습니다.
그 아픔이 너무도 커서 혼절할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정신을 잃지 않으시려고 온힘을 다하셨습니다.
입술을 굳게 깨물고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 쏟아 내어 외쳤습니다. “다 이루었도다”
피울음 울면서 십자가를 행해서 걸어가 죽으시며 마지막 토해내신말씀... “다 이루었도다”
저는 오늘 알았습니다. 그 채찍이 아버지의 채찍이었다는 것을... 그 가시관이 아버지의 준비하신 관이 었다는 것을... 그 마지막 창조차도 아버지께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미련한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죽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죄인들 때문에...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친히 그러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그의 나라 어떤 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생각하기를 국회의원이 되라는 줄 알았습니다. 이분은 생각하기를 대통령이 되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1)땅의 나라가 아니라 하늘나라입니다. 영원한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나라를 위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의 나라와는 구분된 나라입니다.
눅12장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율법에 의하면 재산 상속은 큰아들에게 소유의 두 몫을 주고 동생에게는 한 몫을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형이 동생의 몫까지 다 차지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상속문제가 생기면 랍비에게 찾아가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재산 문제로 예수님께 나온 것을 보면 예수님을 유명한 랍비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주셨습니까? 예수님은 먼저 14절에서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람의 내면을 꿰뚤어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탐심이란 말은... ‘더 많은’의 뜻을 가진 단어와 ‘소유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말합니다. 또한 탐심이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모든 종류의 죄악된 성향을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탐심이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심, 먹는 것에 대한 탐심, 권세와 명예에 대한 탐심, 육신의 정욕에 대한 탐심 등... 갖가지 탐심이 있습니다. 이런 탐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죄를 낳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이것이 땅의 나라의 사고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15절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십계명중 마지막 계명은... 탐심에 대한 계명으로서 이웃을 소유를 탐내지 말하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에 대한 탐심이 생기면 그것을 하나님과 같이 여기고 절대적으로 섬기기 때문에 이는 우상숭배의 죄가 됩니다.
탐심은 또한 만족을 모릅니다. 사람이 물질에 대한 탐심이 생기면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물질을 추구하게 됩니다.
탐심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탐심에 사로잡히면 분별력을 잃고 상식이하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또한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가 되어 버립니다.
무엇보다도 탐심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고 영적 소원을 빼앗아 감으로써... 결국에는 믿음과 사명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에 대한 탐심을 가진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종류의 탐심이든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생명은 “조에”로서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생명, 만족과 기쁨, 행복,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의 존재의미와 행복은 소유에 달려있지 않고, 존재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무슨 타이틀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사람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의 힘이 크기 때문에 돈을 사랑합니다.
오늘날은 극도의 물질주의와 탐심과 온갖 욕심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개인의 삶과 집단의 삶 전체를 돈에 예속시켰습니다. 돈은 사람의 행동과 됨됨이까지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국가, 법, 문화, 교회까지도 차례로 돈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야말로 of the money, for the money, by the money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과 행복이 결코 소유의 풍성함에 있지 않음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16-21절까지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밭은 심었다 하면 대박을 터뜨릴 정도로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는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어 어찌할꼬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는 곧 전에 있던 곡간을 헐고 리모델링하여 더 크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물건과 곡식을 가득 쌓아 두고 SECOM까지 설치하여 확실하게 보관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이 마음이 든든하고 흐뭇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마음껏 먹고 마시고 멋지게 인생을 즐기자”
그는 여름 휴가철이 되면 이태리의 별장에 가서 요트를 타며 피서를 했고, 지중해 연안을 돌며 각종 진기한 요리들도 먹었습니다. 그는 부당하게 재물을 모으지 않고 새벽부터 열심히 일을 해서 정당하게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재물을 자린고비와 같이 무조건 모아두지 않고 멋있게 쓰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롭게 인생을 사는 자 같습니다.
이런 부자의 모습은... 오늘 이 시대 수많은 지성인들이 꿈꾸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세상나라의 가치관입니다. 이것에 세상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한 마디로 어리석은 자 You fool - 좀 더 심하게 말하면 - 바보,멍청이라 하셨습니다.
그는 어떤 점에서 어리석은 자입니까?
첫째, 그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는 생명과 물질이 모두 자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고 남에게 피해도 도움도 안주고 안 받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삶 속에서 완벽한 인생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가 자기 생명의 주인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나’라는 말이 6번, 영어성경에는 11번, 원어에는 13번이나 나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나’로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인양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취하시면 끝장입니다. 돈이 결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밤이라도 우리의 영혼을 취하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합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취하시겠다면 언제든지 내 생명을 취하여 가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일정기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 생명에 대한 청지기로서 맡기신 생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이 땅의 삶이 전부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즐길 것인가 육신의 만족과 웰빙의 삶만을 추구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어리석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둘째, 그는 재물을 어떻게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의 문제는 단지 그가 물질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재물을 자기의 육신의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색하였습니다. 부자는 재물을 모으는데 열심을 드렸습니다.
일을 하고 쉬는 틈틈이 “젊은 날 10억 만들기”를 비롯한 재테크 관련 서적을 모조리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투자를 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가치 있게 쓰는 법은 몰랐습니다. 그는 어렵게 모은 재산을 기껏해야 인생을 즐기는데 사용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하려면 분명한 가치관이 있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기까지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된 다음에는... 타락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어도 창고 안에 쌓아두기만 하면 자기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육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사용하면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되려면 죽고 난 뒤에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히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여야합니다.
본문에서 ‘어리석다’는 말은 ‘생각이 없다’, ‘모자란다’, ‘생각이 짧다’는 뜻입니다. 부자는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가, 진정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참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생각해야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육신적인 생활만 한다면 어리석은 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눅12:21절에 보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 부요치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삶을 살 때 행복이 없고...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당시에는 좀 손해보고 잃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시기 풍성해지고 결국에는 승리하게 됩니다.
부자들이 탐심에 매여 산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염려에 매여 삽니다.
예수님이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자... 제자들은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자의 고민 같은 것은... 이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사실 날마다 먹을 양식 걱정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리석은 부자와는 달리 주님께 전폭적으로 헌신하는 삶, 고통하는 백성들을 위해 수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종종 잔치 집에 가서 잘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삭개오가 회개했을 때의 잔치, 마태가 회개했을 때의 잔치, 나사로가 살아났을 때의 잔치, 오병이어로 오천명 먹이실 때의 잔치 등 그러고 보니 잔치가 꽤 있었습니다.
특히 돈 많은 세리들이 회개할 때의 잔치가 가장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수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을따라 순회전도 다닐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동하느라 제대로 식사를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산다지만... 결혼은 어떻게 하나? 방은 어떻게 구하나? 처자식은 어떻게 먹여 살리나? 현실문제, 장래문제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오고 대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주님의 일을 하다가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되지 않는가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염려’의 원 뜻은 ‘분열’이라는 뜻입니다. 염려를 하게 되면 마음이 분열되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문제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십니다.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물질주의 시대에서 이 믿음을 가지면 염려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까마귀와 백합화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장래 먹고 사는 현실문제로 고민하는 눅12: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합니다.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기르십니다. 하찮은 새도 이렇게 귀히 여기시는데 우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한 존재입니까?
또 입을게 염려되는 분들은 27절을 보십시오.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않지만 솔로몬이 입은 모든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백합화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시들고 말기 때문에 아궁이에 집어넣게 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잘 입히시고 가꾸어 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도 아니오, 옷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눅12: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자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적다는 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 있지만 온전치 못하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돈이 많아도 염려하고, 옷이 많아도 염려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먹을 것이 없어도, 입을 것이 없어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없어서 염려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또 염려합니다. 인생 전체가 염려로 시작해서 염려로 끝납니다. 이 얼마나 괴로운 인생길입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 때문에 염려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는 것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가 생길 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됩니다. 까마귀를 먹이시고, 백합화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는 자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는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를 구하면 됩니다. 국가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가족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이 되면 국가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나라의 공무원이겠습니까?
3)그의 의를 구하라 이는 신학적 의미의 칭의(稱義)를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추상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3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오직’ 이라는 말씀은... 인생의 소망과 목적을...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두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구하라’는 말씀은...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해서 추구하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최고의 우선권을 두고 온 마음을 바쳐 하나님의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고귀한 목숨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꼭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나 혼자 축복받고 잘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죄악된 삶과 자기만을 위한 삶을 청산하고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선교사님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분들이 자신의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세계의 오지에 나가 모든 위험을 무릎 쓰고,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복음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자신의 평안과 안락 물직적 풍요만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구름과자를 먹으면서 희희낙락합니다.
더욱이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물질주의, 쾌락주의,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점점 영적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영적 안일에 빠져 희생하는 것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너무도 인색합니다.
이 시간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을 가슴깊이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겠습니다.
저는 찬송가 391장 2절의 “뭇 성도 피를 흘리며 큰 싸움 하는데 나 어찌 편히 누워서 상 받기 바랄까” 라는 찬송을 부를 때면... 저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 하나님께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복음을 몰라 죽어가는 영혼들이 저토록 많은데, 나는 아직도 게으르고 나태하고 땅의 것을 염려하고 있으니... 그런 제 자신을 발견하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침묵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세계는 너무나 넓고 우리가 할 일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육체만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존재요, 그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명이 있는 고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1차원적인 문제에만 얽매일 때 평생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지만, 하나님나라에 소망을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때 비로소 인생다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4)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 말씀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판타\'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포부로 가득찬 사람들에게는 영혼의 만족과 평안을 주시며, 또 인생의 필요조건을 충분히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신학자 오리겐은.... 본문에 관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추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조그마한 것들을 덤으로 주겠노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세상의 것도 덤으로 주겠노라\'고 번역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실로 우리들 마음에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일시적인 지상의 소모품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 양식이어야 하며,
하늘 백성인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염려의 대상인...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지배받지 말고 아버지께서 이미 필요한 것을 아시는 만큼 주실 것을 믿고 하늘의 뜻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라도 \'덤으로\' 채워주실 것 입니다.
끝으로 시 한편을 읽어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 어 령-
하나님 당신의 재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대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 동안 거기 있었느냐 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민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긴 전화였다. 하나님 이야기를 한다. 그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믿지 않던 신의 은총을 생각한다. 무슨 힘이 민아를 저토록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애가 그 아픈 병에서 나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언어밖에는 없다. 내가 하나님과 비록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어도 그것이라면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바칠 수가 있다. 그래서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을 썼다.
탕자의 노래 내가 지금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사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까닭은 진실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멀리 떠나고 있는 까닭은 아름다운 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사랑을 알고 진실을 배우고 아름다움은 보았지만 나에게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나의 작은 집이 방황의 길 끝에 있습니다. 날 위해 노래를 불러줘요. 집으로 갈 수 있게 믿음의 빛을 주어요. 개미구멍만 한 내 집이 있기에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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