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깰때가 되었으니

자다가 깰때 가 되었으니
자다가 깰때 가 되었으니

강성찬 HIT 25

롬13장11절로14절 자다가 깰때 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두 오심(advents)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롬 3:21-26)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재림하시는 종말의 때를 바라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의 종말을 정하셨는데,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는 것은 우리가 그 날을 향하여 하루하루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하나님의 그 마지막 구원의 순간으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그 날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시기\'는 어떤 특별한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특히 시대가 얼마나 위기적인지를 너희가 알기 때문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시기가 위기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라 자칭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난리와 난리 소문이 들리고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며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며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짐을 의미합니다(마 24:3-12).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가 몇 년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종말은 매우 중요하며, 소망의 날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지 못하며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즉 종말에 대한 소망과 기대감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매일 삶에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기대하며 산다면 그 삶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다가오는 그 날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최후의 그 날이 순간순간 다가오고 있음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마 24:37-38).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그 때가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오늘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이‘그 날’을 아신다고 강조합니다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세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의 간섭에 대한 그 어떤 관심도 없이 사람들은 매일의 삶을 살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그 값을 치루고 말았습니다
(창 6:11-13)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인자의 오실 때가 그와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혼하고,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하며 살 것입니다
(마 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나 인자의 임하심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 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렇다면 무엇이 구원함과 버려둠을 결정하합니까?
성경 전체는 이에 대해서 “그 날에 믿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특별히 복음서는“주님의 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구원함을 받을 것임을 말씀합니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들은 마치 내일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이들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요, 그분이 온 인류의 역사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임을 믿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알려지지 않고, 예기할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요, 인자의 다시 오심을 깨어있어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마 24: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사야 선지자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에 앞서 어려운 시기에 본 비전이 사2: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남왕국 유다는 앗시리아 제국의 확장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방국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맹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는 배신과도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다가올 아름다운 산과 성전에 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그 성전은 더 이상 솔로몬 왕이 세운 구조물도, 성전 산으로 잘 알려진 산도 아니었습니다. 그 산은 모든 산들의 꼭대기에 세워질 것이고, 그 성전은 모든 나라들이 모여들 뛰어난 성전이 될 것입니다(사2:2절).
유다가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하여 현명하지 않은 동맹들과 함께 전쟁을 준비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율법이 세워질 것이요, 그로 인한 평화를 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열방을 판단하실 것이고, 그 율법은 시온으로부터 나오며,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오는 주님의 가르침은 바로‘평화’라고 말씀합니다(사2:3절).
여기에서 평화의 개념을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전쟁을 위한 칼과 창은 땅의 추수를 위한 도구들로 변할 것입니다.
야곱의 집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우주적 주님되심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들끼리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어두움과 분노의 그림자에서 나와 주님의 빛 아래서 걷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사2:5절).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종말의 시기를 바라보고 알아야 하며 깨어 근신하며 주님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합니다.
구원의 때가 더욱 단축되어졌음을 말합니다
역사는 하루하루 최후의 그 날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언제쯤 재림하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마 24:1-51; 계 3:1) 주의 날이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며 심지어 자신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4:36).
그렇지만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말함으로 매일매일 한순간 한순간이 지날수록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더 가까워 옴을 일깨워 줍니다
(엡 5:14-17)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또한 알아야 할 것은 \'구원\'에 관해서입니다.
이 \'구원\'에는 세 가지 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믿는 그 순간에 이미 구원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두 번째는 신자에게 있어서 구원은 점진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루어진 것인 동시에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세 번째는 미래의 구원입니다. 이 세 번째가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 된 구원입니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이 구원을 이루며 동시에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이것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만이 완벽한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과거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분명히 가까워졌으며 그러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깨어 근신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때\'라는 것은 \'시기\'와는 달리 \'어떤 시점\'을 의미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다가 깰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잔다\'는 것은 늦어지고 부주의하며 무관심한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나태함을 의미합니다.
그 예를 우리는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은 신랑이 생각보다 더디 온다고 해서 게을러지고 부주의해서는 안 되며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하여 기다려야 합니다(마 25:1-13).
또한 바울도 깨어서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그 이유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도적이 올 때 전혀 예고 없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의 날, 즉 그리스도의 재림도 어느 날 홀연히 임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주를 바라보며 의를 행해야 하며 주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자다가 깰 때는 주님의 다시 오심의 순간을 말합니다. 이 때는 인류의 종말의 때를 가리킵니다.
2천 년 전에 초림하신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때가 될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그 때에 셈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으며 그 때에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3)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까? 아니면“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는 무서운 심판의 선언을 들을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때를 준비할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때가 악하므로 우리가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로서 세월을 아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엡 5:15-16)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리고 본문에서 우리가 그 때를 준비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 자다가 깰때가 되었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어두움의 일이란 어두움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일, 낮에 드러내기에는 부끄러운 일 등을 가리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것들은 13절이 말씀하는 방탕한 삶, 술취함, 음란, 호색, 쟁투, 그리고 시기 등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기 이전에 세상에서 살면서 거리낌없이 행하던 이러한 과거의 모든 어두운 일들을 이제는 온전히 벗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잠옷을 훌훌 벗어버리듯 이 어두움의 행위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 자다가 갤때가 되었으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이 빛 가운데 사는 사람답게 거룩한 아름다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단정히(유스케몬)는 좋은 모양, 행실, 태도 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또 다른 표현에 의하면 \'낮에와 같이 단정한 삶’은“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님은 바울을 통해 자다가 깰때가 되었으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성도들은 항상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거룩함과 의로움과 구속함이 되십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그분으로 덧입혀져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같이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30년이 넘도록 방탕한 삶을 살던 어거스틴은 어느 날 아이들의 노래 가사“집어 들고 읽어라”라는 가사를 듣다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때 그는 오늘 본문 롬 13:13-14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육신의 일을 벗어버리고, 영적인 잠을 깨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읽은 순간을 이렇게 고백한다.“나는 더 이상 읽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순간 선고가 끝나는 것처럼 내 가슴은 빛에 의해서 어둠이 걷히고 안도감이 느껴지듯 의심이 어두움에 사라져 버렸다.”영적 잠을 자고 있던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통해 잠을 깨었습니다.
우리도 어거스틴처럼 육신의 일을 버리고 영적인 잠을 깨야 하지는 않겠습니까?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더욱 임박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을 맞이 하기 위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무뎌진 영적 감각을 날카롭게 하고,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잠시 후에,“얼마 후에”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간이 바로“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교회절기로 대강절 또는 대림절이 됩니다. 대림절은 우리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을 감사하며, 또한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그 무게 중심을 둡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에서 다가오는 그 날을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점점 가까워 지고 있으니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다고 합니다.
자다가 깰때가 되었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주 에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주어진 사명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