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15장28절 소원을 이루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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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15장28절 소원을 이루는 길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참가한 선수들이 모두 메달을 따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참가 했으나 다 메달을 따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흔히 절망하게 됩니다. 다행히 옆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그의 아픔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그나마 견디어가지만 심각한 문제에 짓눌리고 다른 모든 관계도 무너질 때 흔히 사람들은 절망하게 됩니다. 절망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키엘케골은‘절망’을 가리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은 이겨나갑니다. 영적 거인들이 들려주는 조언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글이 있습니다(존 맥스웰-거인들의 인생법칙) .노아의 인생 법칙은 내 인생이 하찮게 여겨질 때는 나 한 사람의 힘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한다. .에스더의 인생 법칙은 내 인생의 목적이 회의가 들 때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자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요셉의 인생 법칙은 내 삶이 계획한 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주님이 주신 꿈을 기억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모세의 인생 법칙은 두려움을 느끼거나 주저하게 될 때는 망설이지 말고 현재의 안전지대에서 박차고 나와 나의 신앙 지대로 들어간다. .리브가의 인생 법칙은 남들이 도움을 요청해 올 때는 그들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 돕고, 베푼다. .아브라함의 인생 법칙은 하나님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항상 옳다는 것을 믿고 순종한다. .느헤미야의 인생 법칙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협력’의 힘을 체험한다. .하인 소녀의 인생 법칙은 내가 하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을 때는 내 작은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다윗의 인생 법칙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잠재력을 믿고 한계를 뛰어 넘는다. .요나단의 인생 법칙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을 때는 나보다 더 많은 잠재력과 더 적절한 자질을 가진 사람을 기꺼이 돕는다. .가나안 여인의 인생 법칙은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걸어 가 긍휼의 주님께 구하여 가정을 세운다. 소원을 이룬다. 두로와 시돈 지방 어디에서 살고 있던 이 여인은 어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고칠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고, 딸의 병세는 더욱 심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딸을 포기하고 팽개쳐 둘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딸을 고쳐야 했습니다. 예쁜 딸을 악한 귀신에게 맡겨놓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흉악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절망과 좌절 가운데 서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악한 영에 의해 몸과 마음, 심지어는 영혼까지 노략질 당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깊은 절망감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고, 사랑하는 딸이었지만 딸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절망에 놓여 있습니다. 딸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갔고, 낫게 할 방도가 없어서 그 엄마는 안타까움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고 예수님께만 희망이 있음을 알고 예수님을 나아와 소리질러 간청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마 15:22) 이 고백 속에는 에수님이 메시아시라는 고백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자기 인생이 세워진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인은 지금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고백과 신앙 정신은 바로 이 외침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의 차가운 냉대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십니다(마 15:23)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외면하고 가시는 그분,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그분이 과연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럴수록 절박하여 더 간절하게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그분은 묵묵부답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학교 생활관에 신입생이 들어왔다합니다. 그분은 기침을 몹시 심하게 하고 있었고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으시던 분이었습니다. 조그만 언덕이나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고, 오랜 기간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려한 외모를 가졌고, 인품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당시 아주 좋은 직장으로 알려진 항공 회사에 입사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도 했고, 국내외를 누비면서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었던 때 어려움이 닥쳤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시작된 천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결국은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했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은 다 다녀 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진단하기는 이상 체질에서 오는 것이라 이렇게 살다 죽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구실도 못하고, 아빠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지 3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신앙 생활은 했지만 워낙 머리로만 믿는 신앙이어서 기도원에도 가 보라고 해서 가 보았지만, 이질 집단으로 느껴져 며칠을 못 참고 내려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올라가기를 6개월을 했다고 합니다. 자살도 생각해 보았지만 젊은 날에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해서 죽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의 목사님을 보다가 신학교를 들어가면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신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다 병원에다 갖다 바치고 부인이 벌어오는 작은 월급으로 네 식구가 매달려야 하는데, 어렵지만은 여기에 오면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실 것 같아 이곳에 왔다고 했습니다. 병을 고침 받고 감격해서 주의 종이 되겠다고 온 사람은 보았어도, 병을 고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온 사람은 처음 보았다합니다. 당시 생활관 방에는 연탄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공기에 워낙 민감하신 분이어서 연탄 가스 냄새를 못 이기고 결국 밖에 방을 얻어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질병은 부부 관계도 갈라놓았고, 직장에서도 쫓겨났으며, 아이들과는 제대로 소풍이나 산책도 나갈 수 없는 아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고 기도에 응답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곁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들어 줍니다.“너무 시끄럽습니다. 선생님 뭐라고 한 마디 하셔서 돌려보내시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차가운 한 마디에 온 가슴이 다 얼어붙고 맙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 인종차별이요 민족 차별입니다. ´좋은생각´이라는 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쩜 나 혼자 이런 시련을 당하고 있는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를 돌아 본다면 우리는 참 많은 시련을 잘 이겨내어 왔답니다. 처음 우리가 세상을 볼때를 기억하나요. 아마 아무도 기억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큰 고통을 이기고 세상에 힘차게 나왔습니다. 한번 다시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시련을 지금까지 잘 견뎌 왔는지요.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그때는 그랬지라는 말이 나올겁니다. 가슴에 저 마다 담아둔 많은 사연과 아픔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련을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얼굴이 굳어진 채로 지낸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달라 진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술을 다 마셔 지금 상황이 달라진다면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시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딘가에 화를 내고 누구와 싸워서 지금 상황이 달라 진다면 백만 대군과도 싸움을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가진 시련이 달라지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런 상태일수록 그런 아픈 마음이 많을 수록 하늘을 보고 웃어보세요. 그렇게 웃으며 차근히 하나씩 그 매듭을 풀어보세요. 너무나도 엉켜있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 뿐이지 절대로 그 매듭을 못 푸는 것은 아닙니다. 수없이 엉킨 매듭이 지금 당신의 앞에 있다면 그 매듭 앞에 앉아 보세요, 마음은 많이 답답해질 겁니다. 언제 그 많은 매듭을 다 풀지라고 생각을 한다면 더 답답할것입니다. 생각을 너무 앞질러 하지 마세요, 다만, 앉은 채로 하나씩 풀어보는 겁니다. 그렇게 문제와 당당히 마주 앉아 풀어보면 언젠가는 신기하게도 그 매듭이 다 풀려져 있을겁니다. 그때가 되면 찡그리거나 그 앞에 했던 고민들이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시련이라는 단어를 붙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갈것입니다. 당장 찡그리거나 가슴아파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그렇게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힘차게 웃으며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풀벌레 소리와 시원한 큰 나무 밑에서 편안하게 쉬며 웃고 있을 당신을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도 얼마간의 여유가 있을 때입니다. 처참한 차별과 절망의 순간에 부딫치면 이러한 일도 생각 나지 아니함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절하면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15:26) 라고 더욱 간절하게 외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들려온 주님의 말씀은 도무지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시련으로 거대하게 다가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15:26) 사람취급도 아니합니다. 개와 같다고 합니다. 더 이상 말도 못 꺼낼 만큼의 안타까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언제나 이런 시련이 있기 마련입니다. 신앙 생활을 더 할수 없도록,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이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차피 장애물 경기와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한길을 막으시면 다른 한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100m 달리기 선수는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나 200m 장애물(허들) 경기를 하는 사람은 무조건 달리지 않고 앞에 장애물이 나오면 슬쩍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것을 넘고 나면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럴 때는 슬쩍 또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 때인가는 목표에 도달하게 됩니다. 뛰어넘어야지 회피해서도 안 되고, 뒤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긍휼과 인자를 확신하면서 더욱 간절하게 외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15:27) 여인은 믿음의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더 깊은 자리로 나아갑니다. 주님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물가에 있는 사람은 많은 파도를 만나지만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은 파도를 덜 만납니다. 깊이 잠수하는 사람은 웬만한 폭풍도 느끼지 못합니다. 1만 미터 이상 높이로 비행하는 비행기는 웬만한 비나 눈,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습니다. 찰싹거리는 파도를 만나거든 포기하지 말고, 뒤돌아서지 말고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인은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간구합니다. 가나안 여인의 마음은 솔직히 그러합니다. 부스러기라도 좋사오니 내 딸을 살려주옵소서! 이것이 그녀의 간구하는 바입니다. 자신에게는 은혜를 받을 조건이나 자격이나 아무 것도 없지만, 그저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만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인도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 123:1-2] 그녀는 지금 겸손의 깊이를 더해갑니다. 처음 나아올 때도 그런 마음이었지만 그녀의 고개는 더 숙여지고, 더 무릎 꿇는 자세로 나아옵니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주님이 긍휼이 여겨주시면 사탄에 의해 능욕 받고 있는 사랑하는 딸이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될 것을 그녀는 확신합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주님을 긍휼하신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주님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마15:28) 유대 지도자들과 제자들의 믿음이 종지기 같은 믿음이었다면, 이 이방 여인의 믿음은 큰 항아리 같은 믿음임을 주님이 보십니다. 가나안 여인은 긍휼의 주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외면하시는 듯한 바로 그 시간은 그녀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다리시는 시간임을 깨달으며 더욱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아이가 아파할 때 부모의 가슴은 더 찢어지듯이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아파할 때 하나님은 말도 못하실 만큼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외면당하는 것 같은 날에도, 버림받은 것 같은 날에도 담대하게 나아가는 가나안 여인의 외침은「숭고한 기도」입니다. 기왕 신앙 생활할 바에는 이런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깊은 호수와 같은 믿음이 있는가 하면, 종지기 물과 같은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인정입니다. 주님은 그녀를 바라보시며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 이는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져라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선언이요, 희망의 선언입니다. 승리의 선언이며, 회복의 선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선언은 계속됩니다. 이 말씀이 주어지자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마 15:28) 회복시키시는 주님이 말씀하시니 모든 아픔들이 물러갑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악의 영에 붙들려 살아야 할 딸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십니다. 갈라지게 만들고, 마음을 상하게 했던 그 저주스러운 단절의 벽을 허무시고 화평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 주님은 오늘도 주의 백성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가나안 여자’로 지칭되는 그 여인은 흉악한 귀신에 들린 딸을 고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함으로 간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대답지 아니합니다. 이방인으로 대합니다. 짐승 취급합니다. 그러나 더욱 은혜를 구하는 믿음을 보시고 오 네 믿음이 크도다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할 때, 딸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인내, 은혜의 보좌를 향한 그녀의 믿음은 그녀가 이방인이었든, 죄인이든 상관없이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고 그의 소원대로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 각자의 소원을 아뢰고 믿음을 인정받고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며 소원을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