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름이 무엇이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세기 32:24-32

어떤 불한당이 정직하기로 소문난 사람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1천 파운드에 사고 싶습니다” “왜 내 이름을 사려는 건가요?” “당신의 이름만 있으면 1만 파운드를 벌 수 있거든요”라고 했습니다. 악당이 정직한 사람의 이름을 사간다고 자기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만이 그 이름에 합당할 뿐입니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존경도 받을 수 없고 그의 말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진실한 말을 한다 해도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신용을 잃고 맙니다.

이름 속에 그 사람의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습관’이고 ‘인격’입니다. 그 이름은 그의 생각이요 그의 행동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27절) 부모가 야곱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것은 태 중에서 나올 때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창25:26)라고 했습니다. 야곱이란 ‘붙잡는 자’라는 뜻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네가 누구냐? 너는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씨름하는 자입니다. “야곱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24절)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전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중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 형의 발꿈치를 잡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성자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씨름판에서는 부자지간이라도 이겨야 한다”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붙잡혔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붙잡혀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씨름이 승부가 안 납니다. 엎치락뒤치락합니다. 25절에 보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하였습니다.

씨름이라는 말이 ‘먼지를 일으키다’ ‘단단히 붙잡다’ ‘껴안다’라는 뜻입니다. 씨름은 필사적인 몸싸움입니다.

씨름하는 야곱에게서 열정, 열의, 집념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밤새도록 씨름하는 야곱을 상상해 보세요. 비지땀을 흘리며 헐떡거립니다. 옷이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한판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또 싸우자고 덤빕니다.

인생이란 결국 씨름입니다. 상대를 붙잡고 정복하려는 투쟁입니다. 있는 힘을 모두 쏟으며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삼대 액체는 땀과 눈물과 피입니다. 몸에서 나오는 액체의 분량이 인생을 만듭니다.

26절을 보세요.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밤새도록, 날이 새기까지 씨름하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씨름하고 있습니다. 밤새워 공부하고, 밤새워 일해야 합니다. 누군가 해낸 것은 누구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농구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조던은 어려서부터 농구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농구 선수로 선발되지 못하여 목을 놓아 울었던 일도 있었답니다. 농구는 적합하지 않으니 공군사관학교에 가라는 권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조던은 농구가 좋았습니다. 농구 선수가 되려고 공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수가 되기 위해 공을 던지고 공을 잡았습니다.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조던은 “최고가 되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만한 땀을 흘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던은 공을 잡고 씨름하여 농구 황제가 되었고, 야곱은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여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불꽃같은 사람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같은 열정가입니다.


󰊲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자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자입니다.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가려거든 내놓고 가라 절대로 그대로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복일까? 여러분은 무엇을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으며,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입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의를 얻은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시24:4-6). 하나님의 임재가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의 영광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브니엘’은 하나님과 대면하였다는 뜻입니다(30절).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러분도 야곱처럼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배고픈 자입니다. 하나님의 복에 굶주린 자입니다. 그의 이름은 믿음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도요 간구입니다.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집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기질이 있습니다. 끈기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의 본능은 성공체질입니다. 사람에게 훈련이 왜 필요합니까? 본능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편하게 쉽게 살고 싶은 것이 본능입니다. 그 본능을 누르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기도하고 훈련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자신에게 명령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가르치고, 내가 나를 꾸짖고, 내가 나를 징계해야 합니다.

축복을 받고 싶은 것이 야곱의 본능입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면서라도 복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본능적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자기는 둘째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장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축복입니다. 기도입니다.


󰊳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입니다.

일본전산은 전 직원이 아침마다 구호를 외칩니다. 작은 회사였을 때부터 큰 회사가 되기까지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질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엔 기필코 이긴다”는 생각입니다. 구호를 외치면서 “나는 박사도 아닌데 그런 것을 어떻게 만들어”하는 심리적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구호를 외칠 때도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박력 있게 외쳐야 동력이 생기고 에너지가 배가됩니다.

할수 있다! 할 수 있다! 외치는 순간 할 수 있다는 회로가 심어집니다. 안된다는 회로를 몰아내는 것이 할 수 있다는 구호입니다. 할 수 있다는 구호가 포기 집단을 이기는 집단이 되게 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이긴 자입니다. 이기는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의 착각 중에 하나가 “시간이 성장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나이 먹고 세월이 가면 달라지고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 먹으면 나아지는 것 아닙니다. 더 고집스러워집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합니다. 옷도 갈수록 낡아지고 얼굴도 갈수록 늙어갑니다. 나의 성장, 나의 발전은 나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집요한 자기 관리 자기 규제가 성공원리입니다. 자기 발전과 향상을 위해 자신을 훈련하지 않고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로 더불어 이겼음이니라”(28절)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끈질긴 자가 결국은 이깁니다.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자가 이깁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씨름해서 이긴 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축복은 이름을 빠꾼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이름은 그 개인의 성품과 지위와 미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힘든 작업은 사람 바꾸기입니다. 변화가 어렵습니다. 나를 이기는 자로 바꿔야 합니다. 지는 자로 살아온 나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기려면 “시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시도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곧 시도하는 것입니다. “논리는 감정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행동은 감정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간디는 말했습니다. “천 번의 기도보다 한 번의 행동이 낫다.” 인생에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실천입니다. 몸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힘입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오는게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실 때 한 여자가 내 딸이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답 없이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여인은 말하기를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즉시 딸이 나았습니다(마15:21-28). 그 여자는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가나안 여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소리지른 여자”입니다. 개라는 소리를 듣고도 상처받지 않은 여자입니다. 그의 이름은 “믿음이 큰 여자” “목소리가 큰 여자”였습니다.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나를 괴롭게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 이르이 무엇이냐?” 내 이름은 군대입니다. 예수께서 군대 귀신을 내쫓으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막5:1-19).

군대라고 대답한 그 사람은 귀신이 지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예수님이 지배하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큰 일을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씨름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이스라엘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이긴 가나안 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