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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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평생의 은총


본  문  :  시편30:1-12


설교일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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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총인데, 평생의 은총입니다.  오늘 5절 말씀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평생의 은총”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시편 30편은 성전낙성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시편을 읽으면서 때로는 원수를 저주하고, 하나님이 심판해달라는 기도문을 읽어보면서 은혜의 시대를 사는 오늘에는 잘 맞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시편에서 용서와 화해보다는 저주와 심판을 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편을 보면 원수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에 있어 원수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저는 원수가 하나도 없습니다.  원수라는 말을 하니, 우리가 잘 사용하는 말 중에 ‘철천지원수’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원수지간,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도 생각이 났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원수(怨讐)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집단이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말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원한을 사면 가장 어려울 때 그 보복을 당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남에게 못할 일 하시면 인생의 말년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에는 사회생활이 원만해지고, 성숙해지면서 인간관계에 있어 그렇게 원수를 질 만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관계가 조금 소원해진 사람들, 선의의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원수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늘에는 원수질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원수가 많이 있었습니다.  원수란 말은 대적,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현대의 인간관계는 서로가 원수를 만들려고 하지 않으니 원수가 되지 않는 것뿐이지, 요즘에도 원수지간으로 발전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자기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원수로 하여금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다는 것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원수들이 많았습니다.  원수들은 다윗이 넘어지기만 고대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어려움에 빠지면 고소해하고, 비웃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시인 다윗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더 빠져 들어가는 수렁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은 수렁이었고, 스올이었습니다.  스올이란  말은 죽은 자들이 들어가는 거처요, 죽음을 말합니다.


다윗이 처한 어려움을 말하는 단어들이 모두 다 어둡고 암울하고 딱딱합니다.   원수, 스올, 무덤, 노염, 저녁, 울음, 근심, 슬픔, 베옷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은 내다버리고 싶은 단어들입니다.  정말 사용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인데, 그런 단어들이 나의 일기장을 장식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런 문제를 놓고 어떻게 이겨나갈 것입니까? 


오늘 다윗은 인생의 난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해명하고 지지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사람의 방법입니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접근하다보면 문제는 점점 더 꼬이고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오늘 본문을 몇 부분으로 나누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찾아내야겠습니다.


1.  구원받은 것을 찬양합니다. (1-3)


다윗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죽음의 자리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고치셨습니다.  스올, 죽음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살려주셨습니다.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하던데, 그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사고다, 질병이라 하지만, 그런 사고와 질병이 나에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심방하고 다녔지, 내가 심방 받을 줄 몰랐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찾아와서 마지막으로 보는 듯이 바라봅니다.  마지막이다 싶은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무서운 질병입니다.


요즈음에는 참으로 무서운 질병도 많습니다.  길거리에 다녀보면 모두가 얼마나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모두다 선남선녀들입니다.  옷들도 다 잘 입었고, 건강미가 넘치고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합니다. 그런데 병원에 심방가보면 그렇게 대학병원에 입원할 병상이 없습니다.  각종 질병으로 환자들이 만원입니다.  암 병동에 심방해보면 항암치료를 너무 여러 번 받아 머리가 다 빠진 사람들을 봅니다.  종합병원에는 각종 환자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 다니는 것만도 죄송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이 많은 어른들만 입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 학생들, 청년들, 청장년들 가릴 것이 없습니다. 


다윗의 대적자들과 원수들은 다윗이 심한 질병에 몸져누웠으니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아파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앞에서만 ‘정말 안 되었다’고 하고, 돌아서면서 욕하고 고소해하고 심판이니, 저주니 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면 못된 성품입니다. 주님의 성숙한 마음과 성품을 가지고 그를 대해야 합니다.  진정 아파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되었다고 느껴지면 손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힘을 얻게 됩니다.


다윗은 문제에 봉착하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로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어려운 질병, 헤쳐 나올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부짖어 기도하였습니다.   2절 말씀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50:15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칼빈선생님은 기도의 원칙을 세우고 기도했습니다.  칼빈은 개혁교회를 이룩하신 종교개혁자입니다.  개혁교회에서 우리 장로교회도 나왔습니다.  칼빈은 4가지의 기도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경외심을 가진 기도였습니다.  


경외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 두려움은 노예적인 공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노예적인 공포에는 존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중에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데,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집중하는 기도여야 하고, 우리의 간구는 절제가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2)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척 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악한 행실을 회개하는 겸손한 마음의 기도입니다.


3) 용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회개하는 기도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전적으로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자기의 영광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기도할 때마다 회개하는 기도와 함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온전히 맡기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4) 확실한 소망을 가진 기도였습니다.    칼빈은 우리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된다는 확실한 소망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다윗은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고 풍성합니다.


엡3:20-21에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꼭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더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2.  찬양에 참여하십시오. (4-5)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건짐을 받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였습니다.    이제, 4절에서 “주의 성도들아”라고 주의 성도들을 불러내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참여하라고 하십니다. 


4-5절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찬양은 혼자서 부르는 것보다는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힘이 생겨납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다른 성도들과 함께 나누면 더욱 큰 은혜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한 주간 살아가면서 받은 은혜를 다른 성도들과 함께 나누면, 그 은혜는 정말 그의 것으로 자리 잡고, 확실한 은혜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묵상의 말씀을 서로 나누는 것은 받은 은혜를 보다 확실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다른 성도들과 함께 나눈 은혜스러운 말씀은 5절의 말씀입니다.


5절 말씀은 다윗이 다른 성도들과 나눈 말씀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노염과 은총입니다.  그런데 반응하는 시간, 기간을 비교해보아야 합니다.  노염은 잠깐이요, 은총은 평생입니다.  잠깐과 평생이라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잠시 진노하시고 노여워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노염을 잠시 잠깐 뿐이고,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평생에 걸쳐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잠깐이란 말은 지나가고, 끝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녁이 될 때에 하나님의 진노로 느껴지고,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의 날이 밝아옵니다.  하나님의 노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노염을 바꾸어 은총이 되게 하셨습니다.  울음이 깃들이는 저녁을 지나가게 하시고 기쁨의 아침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노여워하시는 것은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노염이란 사람들로 죄를 회개하게 하고, 버리게 하시는 것으로 실상은 은총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것은 우리를 버리는 심판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6-10)


6-10절입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면서, 계속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시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간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중심으로 살아가면 하나님도 외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성령에 충만하여 살아가야 능력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악한 원수 사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만 내 고집을 꺾을 수 있고,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은혜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자랑하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4.  찬송과 감사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11-12)


11-12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셨습니다.    잠잠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성전 삼아도 부족하신 분이신데, 우리의 작음 마음을 성전 삼으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홍수처럼 밀려와 모든 것을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우리의 평생에 슬픔이 떠나지 않을 것 같았고, 일생 베옷을 입고 통곡할 줄 알았는데, 주님은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고,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셨습니다. 


저는 젊어서 무서운 폐병에 죽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고쳐주시었고, 하나님의 종으로 불러주시고 일생을 소중한 사람으로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 모두가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 좋은 성도들, 좋은 동역자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잠잠할 수 없습니다.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춤을 추게 하시는데, 어떻게 잠잠할 것이며, 베옷을 벗겨버리고 기쁨의 띠를 띠우시고 보니, 이대로 주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고침 받고, 은혜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이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의 300만원이란 돈은 다른 잘 사는 사람의 3천만 원보다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 하나님의 주시는 은총을 생각하면 그냥 잠잠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저는 무명으로 드리는 중등부 의자 300만원을 드리신 성도를 잘 압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처음에는 180만원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소예배실 의자 하나가 5만원이 간다는 것을 아시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추가로 120만원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300만원은 정말 큰 돈인데, 그것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시는 것입니다.   의자는 다음 주간에 들어올 터인데, 중등부 학생들은 그 의자에 앉아서 예배하고 공부하면서 이런 의자를 구입해주신 성도님의 그 뜨거운 마음과 열정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감사가 항상 계속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온전히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어야겠습니다. 


이 시는 성전 낙성가로 불렀습니다.   성전에 올라갈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악이란 질병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원수들의 조롱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고 우리의 가진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노염을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오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고, 우리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습니다.  잠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영원히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