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키시는 것을 기뻐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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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본 문 : 에스겔33:7-11


설교일 : 2008. 9. 7(주일설교)


설교자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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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10월 26일에 새생명축제, 총동원 초청전도대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새로운 전도지를 만들고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전도용품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로 새생명축제 주일까지는 50일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새생명축제 50일선포주일”로 그리고 “태신자작정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대형 전도행사를 가져야 하는가, 이런 큰 전도대회가 과연 필요한가?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이유는 주님이 마지막 부탁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을 “주의 지상명령”이라고 하는데, 마28:19-20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해야 하지만, 주님의 최후의 명령인 전도는 그 어떤 명령보다 최우선으로 응답해야 할 절대 명령인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남겨주신 말씀이 사도행전1:8의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한다는 거룩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의 성장을 위함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이기에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화하거나, 자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요,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 교회요, 퇴보하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한 10년 전부터 NCD(Natural Church Development)라고 하여, “자연적 교회성장”이라는 이론이 발표되었습니다. 크리스찬 슈바르츠(Christian A Schwarz)라는 분이 전 세계 모든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인을 찾기 위하여 유럽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의 약 1000개의 교회를 조사 연구하여 정리한 성장 이론입니다.


교단이나 문화나 교회 규모에 상관이 없이 교회가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세계 모든 지역의 교회들 중에 성장하는 교회들을 8가지의 공통적인 성장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8가지 성장원리는 1)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2) 은사중심적인 사역 3) 열성적인 영성 4) 기능적인 조직 5) 영감 있는 예배 6) 전인적인 소그룹 7) 필요 중심적인 전도 8)사랑의 관계입니다. 요약해보면 8가지 원리는 지도력, 사역, 영성, 조직, 예배, 소그룹, 전도, 관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65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 8가지 분야에서 모두다 65점이 넘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최소치 요소라는 원리도 발표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성장 요인 중에서 어느 한 가지가 아주 점수가 낮으면 그곳으로 물이 새어 흘러나가기 때문에 물통에 물이 담기는 것은 아주 적어진다는 원리입니다. “가장 짧은 널빤지가 그 통에 얼마나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8가지 원리 중에 가장 점수가 낮은 것 최소치의 점수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굴지의 교회에서 NCD 협회에 의뢰하여 교회를 진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부끄럽게 전도 분야에서 형편없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 교회답지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수평 이동하여 몰려오는 교인들이 없었다고 하면 교회는 문 닫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풍성한교회’는 NCD가 교회를 진단한 이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교회건강수치 107점을 받았다고 하여 그 교회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한 부분을 위해 강점을 사용하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의 관계”에 있어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하고, 최소치는 “필요 중심적인 전도”라고 하면, 가장 강한 사랑의 관계를 전도에 접목을 시키고 집중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도하여 들어오기만 하면 사랑의 용광로에 녹이는 것입니다. 영주교회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라고 소문내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 모두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새생명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을 돕는 일을 곧 자기가 사는 길입니다. 남을 돕는 일 중의 가장 도움은 전도하는 일이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전도할 때에 개인적인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나아가 교회 전체가 성장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가서 제자 삼는 일”에 생명을 던져야 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어느 동네 공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공터 한 켠에서 전도사가 전도지를 들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약장사가 목청을 높여 약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기 않는데, 약을 파는 약장사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리 정리랄 것도 없는 전도사님은 전도지를 챙겨 넣었습니다.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약장사를 찾아갔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서 약을 잘 팔 수 있었습니까?” 전도사님의 질문에 약병을 챙겨 넣던 약장사는 그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하였습니다. “전도사님, 사실 이 약은 가짭니다. 하지만 난 이 가짜 약을 진짜처럼 팝니다. 나 같은 약장사도 가짜를 진짜처럼 파는데, 당신은 진짜를 어떻게 그렇게 확신 없이 파십니까?”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짜인 복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능력을 얼마나 담대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을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군인 생활할 때에 가장 힘든 것이 보초서는 일입니다. 보초서다가 당직 사령관이 순찰할 때에, 졸기라도 하면 그날로 영창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군대에서 축구시합이라도 한 날에 보초병으로 나가게 되면 여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서서 조는데, 무리하게 행군하던지, 단체 시합이 있었던 날에, 보초서다가 줄줄이 걸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적군이 우리 사정을 보아가면서 쳐들어오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졸거나 한눈파는 사이에 쳐들어오게 침투하여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오늘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파수꾼이라는 철저한 사명의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베풀어주신 물질적인 은총에 취하여 전도자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졸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수많은 영혼들이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불러 세우고, 구원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영혼의 잠을 자는 자들에게 외쳐야 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외치고, 잠자는 자에게 일어날 때가 벌써 되었다고 전해주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영혼의 파수꾼으로 세움을 입었다는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파수꾼으로 “삼았다”는 말은 히브리어의 “나탄”이라고 하여 “삼았다, 세웠다 지명했다, 위임했다, 붙들어놓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민족의 파수꾼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파수꾼으로 위임을 받았습니다.


파수꾼은 악인들에게,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쳐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파수꾼은 적의 침략에 나팔을 불어야 하는데, 적이 쳐들어오는데, 나팔을 불지 않아서 망하거나 사람들이 죽게 되면 모든 책임을 파수꾼이 져야 합니다. 물론 나팔을 불었는데도 피하지 않거나 나와 싸우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고 하면 나팔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은 백성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파수꾼이라면 적의 침략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경계근무를 서야 하고, 만일에 적군이 쳐들어올 때면 경고의 나팔을 불고, 외적이 쳐들어온다고 봉화를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악인이 있는데,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해야 하는데, 파수꾼이 망한다고 말하기가 두렵고, 싫은 소리하기 싫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 악인이 회개하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하면, 모든 책임은 파수꾼이 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정상적으로 경계령을 발동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고 하면, 악인이 회개하고 살던지, 회개하지 않고 죽든지 하는 모든 책임을 악인 스스로 져야만 합니다. 나팔수라고 하면, 나팔을 불기만 하면 됩니다. 파수꾼은 외치기만 하면 그의 책임은 완수하는 것입니다. 내가 민족을 다 구원한다고 할 것도 아닙니다. 나는 다만 한 구석에서 나팔을 불면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법과 도덕과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합니다. 법과 이웃하고, 가까이 있어야 하는 규범이 있다면, 도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과 도덕의 관계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학이론 중에 “법은 최소한으로, 도덕은 최대한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이 잘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사실상 법이 필요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웃으로 살면서 윤리와 도덕을 생활화한다면 시비가 일어날 것이 없고, 법정 다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선한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겼습니다. 예전에는 옷이 귀하고 값나가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유를 빼앗아가고 뒤좇아 오지 못하게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습니다. 마침 그 때에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에 거기 이르러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어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그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그 사람을 맡기면서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거반 죽게 되었는데, 그 때에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주고, 인공호흡이라도 시켰으면 충분히 소생할 수 있었는데 못 본척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면 그를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이 ‘사마리아인의 법’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입법화되지 못하고 법안만 제출해놓은 채 논의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일에 잘 끼어들려고 하지 않고, 공연히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본다는 생각이 있어, 섬김의 기회를 놓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본체만체한 사람을 처벌합니다.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조해도, 자기는 위험에 빠지지 않는데도 구조하지 않을 경우에 3개월-5개월의 징역이나 360-15000프랑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응급구조를 강제하는 법인데, 범법을 규정할 때에, 사람을 해롭게 한 것이라고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는 적극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선진국가로 가면 법을 적용하는 것도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남을 도와야 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선한 사마리아 인의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죽은 책임을 본인 당사자가 져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이웃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에게 전도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복음을 제시하였는데도 믿지 아니하고 고집스럽게 죄악 세상에서 살겠다고 하다가, 그가 죽음에 처해졌다고 하면, 그의 생명에 대한 책임은 그가 지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에게 예수 믿어보자고 말도 붙여보지 않고, 우리 지역에서 그렇게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우리들이 함께 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피값을 묻는다고 하셨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알아듣기 쉽게 번역하여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히브리어로 피라는 말, “담”이라고 하여 분명히 피를 묻는다는 말씀입니다. 피는 생명이었습니다.


지금 파수꾼의 이야기를 빌려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에 대하여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결론적인 권면입니다.


10-11절입니다.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여기서 우리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자신의 심정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와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으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베드로후서3:9의 말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시간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헛되어 하지 않으려면 영혼을 찾아 구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고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18:9에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과 마크 미텔버그가 쓰신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1장의 제목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소중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장은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에게는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하면 전도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기한 체험을 하는데, 우리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입을 열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쓰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구원한다고 할 때에 놀라운 성취감의 은혜를 주십니다. 영적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되는 놀라운 영적 확신을 주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빌 하이벨스와 함께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를 쓴 마크 미텔버그라는 분은 65세 된 유대인 남자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65년간 유태 문화와 신앙에 젖어 있던 사람과 대화하면서 전도하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기도를 올렸을 때에, 마크는 마치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우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65세의 그 남자가 신학교에 다니며, 예수님을 영접한 1년 후에 영적인 돌을 축하면서 자기에게 전도해준 사람을 초청하였는데 그 때 전도자의 가슴에 밀려드는 기쁨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저도 2명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왔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열려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모릅니다. 전에 전도하였던 사람도 다시 전도하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일생 예수 믿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나누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잡고 사용하기는 기쁨, 영적확신, 영적 성장의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